"똥자루가 굵은 걸 보니 장군감이로구나!" 성별 고정관념 깨는 교육

여성동아
여성동아2022-04-18 15: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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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엄마와 살림하는 아빠가 이상하지 않은 21세기다. 그런데 여전히 상당수 그림책은 여자는 핑크색, 남자는 파란색 같은 고정관념에 기반을 두고 제작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올바른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유아 그림책 큐레이션 플랫폼 ‘우따따’에 SOS를 청했다.
똥자루가 굵으니 장군감이로구나!
“똥자루가 굵으니 덩치가 클 것이요. 나라의 든든한 장군감이 분명하니, 여봐라, 똥 임자를 찾아라!”

영유아 그림책 큐레이션 플랫폼 ‘우따따’ 추천 도서 ‘똥자루 굴러간다’의 한 부분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군사 무리를 이끄는 대장. 그는 마을 시냇가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똥자루를 보고 그 주인공을 찾아 부장군을 삼기로 마음먹는다. 물어물어 겨우 도착한 오두막집, 댕기 머리 장사가 힘찬 도끼질로 장작을 패고 있다. “여봐라, 네가 시냇가의 똥자루 주인이렷다!” “그렇습니다만….” 돌아서는 똥 임자를 보니 젊은 처녀다. 그는 “여자인 게 뭐 어떻습니까? 나라만 잘 지키면 되지 않겠습니까!” 호탕하게 말하며 ‘큰 똥을 눌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바탕으로 부장군이 된다.

책장을 쭉쭉 넘기다 크게 웃었다. 일단 재밌다. ‘큰 똥을 싼 장군감이라면 당연히 남자겠지’ 하는 편견을 유쾌하게 비틀어주는 점도 매력 있다. 돌아보면 기자가 어린 시절 여자 친구들은 “어떤 디즈니 공주가 제일 좋은지” 줄곧 물었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을 로망으로 삼는 그들에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건, 동화 속에서 매번 위험에 빠져 왕자님이 구하러 오기만 기다리는 공주 캐릭터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따따(wooddadda.com) 유지은(34) 대표는 “공주를 좋아하는 것 자체는 죄가 없다”며 “세상에는 오토바이를 타는 공주, 핑크색이 싫은 공주도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했다. 유 대표는 이런 책을 어린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우따따를 만들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상식을
우따따에서 판매하는 그림책과 워크북 세트
우따따는 영유아 교육 전문 기업 ‘딱따구리’가 운영하는 서비스. 인권·환경·직업·가족·성평등·여성 롤 모델 등을 주제로 한 그림책 200여 권을 큐레이션하고 있다. 서비스 대상은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이들이 볼만한 그림책을 주제별로 큐레이션하여 양육자 가이드북, 그림책과 관련해 다양한 체험 및 학습 활동을 할 수 있는 워크북 등을 판매한다. 우따따라는 이름은 딱따구리가 나무를 뚫는 소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현재 누적 이용자 수는 3000여 명이다.

유 대표는 조카와 함께 유명 애니메이션 ‘뽀로로와 친구들’을 보던 중 성차별적 요소를 발견하고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2019년 1월 딱따구리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딱따구리는 그림책 서비스 외에도 여성가족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 등을 위한 성인지 교육 교재’ 기획·집필, 전국 유치원 성인지·성교육 전담 교사 대상 연수 등을 진행하고 있다. 3월 8일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여성 창업 지원 공간 ‘스페이스 살림’에서 유 대표와 마주 앉았다. 그는 각종 동화책과 워크북 열 권 정도를 꺼내 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씩씩한 엄마, 달콤한 아빠’ ‘올리비아는 공주가 싫어!’ 응 책 제목이 하나같이 흥미롭네요.

전형적인 남성·여성상에서 벗어난 스토리가 담겨 있는 그림책이에요. 성평등 교육을 한다고 하면 “공주 얘기를 안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공주는 왕의 딸일 뿐이에요. 공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가 공주를 그리는 방식이 잘못된 거죠. 결혼을 거부하는 공주, 스스로 성을 탈출하는 공주처럼 다양한 공주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네가 되고 싶은 공주는 누구야?”라고 물어봐야죠. 남자가 주인공인 책도 마찬가지예요. 적을 무찌르는 천방지축 캐릭터가 대부분 등장하는데 남자도 눈물을 잘 흘리고,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잖아요.


성평등 그림책에 대한 ‘니즈’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나요.

론칭 전에 시장 조사를 많이 했어요. 그 무렵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내가 동화책을 보던 시절에서 30년은 흘렀는데 책 시장은 바뀐 게 없더라” “내가 보고 자란 책을 아이가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한 친구는 책을 보다가 내용이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고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하나도 없어서 출판사에 항의 전화를 했대요. 지금 어린 자녀를 둔 부모 대부분이 198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예요. 이들은 성평등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강하고, 자신이 배운 걸 자녀에게 가르쳐주고 싶어 하죠. 그래서 ‘성평등 그림책에 대한 니즈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요성을 안다 해도 아이 한글 깨치기, 영어 조기 교육에 더 급급하잖아요.

많은 양육자가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려 하죠. 하지만 영어만 배운다고 글로벌 인재가 되는 게 아니에요. 내뱉는 말이 글로벌 시대에 걸맞아야죠. 제가 “차별주의자면 하버드에 합격해도 떨어진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강의를 한 적 있어요. 2017년 하버드대가 신입생 10여명의 합격을 취소한 사건을 소개한 건데요. 그 학생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성차별적인 메시지를 포스팅한 게 문제가 됐어요. 아무리 똑똑해도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면 모든 게 소용없어지는 시대입니다.


어린이 책 시장은 특히 대형 출판사의 영향력이 강하다고 들었어요. 신생 회사가 평가와 추천에 나서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 출판사에서 일하던 팀원이 저희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얘기해줬는데 다들 “쟤네 뭐야” 했대요. “자기들이 뭔데 책을 큐레이션하고 평가하느냐” 한 거죠. 우리나라 도서 환경에서 이런 서비스를 오래 하지 못할 거라는 말도 들었어요. 하지만 성평등의 가치를 아이들한테 알려주고 싶어 하는 분이 많아지면서 지금은 출판사들이 먼저 협업을 제안하는 회사로 성장하게 됐어요.


우따따를 찾는 분 가운데 어린이집·유치원 선생님도 많으시다고요.

개인 차원에서 우리 서비스를 구매하는 분이 계시고, 원장 선생님이 먼저 연락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교육 현장에 계시는 분들은 어린 시절부터 성평등 교육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잘 아세요.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남자답게” “여자답게” 같은 말이 성과 관련해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기반이 될 수도 있거든요. 성평등 교육은 아이 본성을 거스르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다양한 정보를 주고 그 안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갈 수 있도록 옵션을 제공하는 거죠.
현재 우따따 서비스 이용 후기는 긍정적이라고 한다. 엄마가 무심코 “소방관 아저씨”라고 말하니 아이가 “여자 소방관도 있잖아”라고 답했다는 내용 등이 올라와 있다. 한 아이는 우따따가 추천해준 그림책을 읽은 뒤 “공주도 왕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성에서 탈출할 수 있어”라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했다고 한다. 유 대표는 “아이는 자신이 본 것을 바탕으로 세상을 판단하기 때문에 어른보다 더 강한 고정관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영유아 시기에 성인지 교육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어릴 적 대표님은 어떤 여자아이였나요.

목소리가 크고 시끄러웠대요. 몸으로 노는 걸 좋아했고요. 부모님이 크게 제지하지 않아서 ‘천방지축’으로 자랐죠. 남자애들이 여자 친구들을 괴롭히면 팔을 꺾으면서 “내 친구 왜 괴롭히냐” 혼쭐내는 성격이었어요. 학교에서 ‘조폭 마누라’라고 불리는 여자애들 있잖아요(웃음).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런 행동이 여자답지 못하다는 일종의 억압을 받았어요. 철봉 하는 걸 좋아했는데 (교복) 치마를 입으면서 자연스레 못하게 됐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억누르게 되더라고요.

예전 인터뷰에서 “내가 어렸을 때 이런 그림책을 읽고 자랐더라면 덜 방황하지 않았을까”라고 말씀하신 걸 봤어요.

저는 20대 초반에 미국에서 1년, 아프리카에서 6개월 정도 장기 체류 봉사를 했어요. 그때 제가 그동안 가진 고정관념의 실체를 봤고 속 시원한 감정을 느꼈어요. “무거운 건 남자가 들어야지” “운동하면 근육 생기잖아” 같은 인식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안 거죠. 저는 그때까지 인권이나 환경, 성 정체성, 가족의 다양성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거든요. 쉽게 말하면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었던 거예요. 적절한 애티튜드를 공부하고 제 생각과 행동을 고치는 데 많은 시간을 썼어요. 그때 ‘어릴 때부터 배웠으면 덜 헤맸을 텐데’ 생각했죠.

어린 시절 닮고 싶은 여성 롤 모델이 있었나요.

나이팅게일이요. 위인전집 읽는 걸 좋아했는데 그 시리즈에 여성이라고는 나이팅게일밖에 없었어요. 위인전집에서 다양한 여성을 볼 수 있었다면 나이팅게일만 롤 모델로 삼았을까 싶어요. 그런 생각이 우따따 서비스를 구성할 때 영향을 미쳤죠.

유 대표는 딱따구리를 설립하기 전에도 한 달에 5만원씩 기금을 모아 여성, 난민, 비혼부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원하는 ‘소셜 투자 계(契) 모임’을 결성하는 등 사회 사각지대에 관심을 뒀다. 이때도 여성 관련 프로젝트에 특히 마음이 갔다고 한다.

이후 성평등 가치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영유아 콘텐츠 기획 및 추천 서비스를 선택하신 거군요.

성인 여성이 가부장제 안에서 겪는 차별에 대한 논의는 많은데 어린이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해 책에 관심이 많았고, 미국으로 출장 다녀온 친구가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을 합해 부르는 단어) 서점’ 이야기도 해줬어요. 때마침 “교실 내 혐오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혐오를 학습하면서 자랄 수 있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성별 고정관념이 만 3세부터 생긴대요. 나중에 그걸 깨려고 노력하기보다 애초에 안 배울 수 있게 해주면 좋잖아요.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자라야 할까
유 대표는 독일, 스웨덴, 영국 등 선진국에서 영유아 콘텐츠를 제작할 때 참고하는 ‘성평등 가이드’를 바탕으로 우따따만의 책 선정 기준을 만들었다. 캐릭터를 성별 고정관념적으로 그리지 않았는지, 등장인물 성비가 동등한지, 외모나 체형·피부색을 희화화하지 않는지 등 17가지 항목을 체크해 성평등 그림책을 선별한다.

우따따 책 중에서 대표님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은 무엇인가요.

‘최애’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저희가 번역하고 해설도 쓴 책 ‘여자 놀이, 남자 놀이? 우리 같이 놀자’요. 책이 되게 귀여워요. 어느 날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 외계인 아이가 떨어진 거예요. 외계인 아이가 “나랑 같이 놀자” 하니까 애들이 “남자 어린이야? 여자 어린이야?” 물어봐요. 그러면서 “남자애라면 축구를 하겠지?” “네가 여자애라면, 조용하게 놀아야 해”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죠. 외계인 아이는 “근데…”라는 같은 대답을 반복하면서 다르게 노는 이유를 궁금해하죠. 사실 그건 어른들의 고정관념이지 실제 아이들이 그렇게 놀지 않잖아요. 나중에는 술래잡기하면서 놀다 끝나는 책인데 ‘근데’를 반복하는 게 재미있어요.

성 고정관념을 고착화한다고 생각하는 그림책, 동화책은 어떤 게 있나요.

전래동화요. 가부장제 시대에 만들어져 유교적 사상을 그대로 담은 내용이다 보니 캐릭터 특성이나 이야기 전개 방식이 아이들한테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미쳐요. 하지만 유해하다고 아예 안 가르칠 수는 없죠. 전래동화에서만 배울 수 있는 ‘권선징악’ 같은 한국 문화가 있으니까요.

국내 성평등 그림책 현황은 어떤가요. 오늘 가져오신 책을 보니 다 해외 작가 작품이네요.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성평등 동화책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책이 없다기보다 그러한 시각에서 발굴을 안 해 눈에 띄지 않았던 거죠. 여성가족부가 2019년에 ‘나다움어린이책’이라는 그림책 사업을 하면서 출판계에서 관련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편집자들도 “육아 장면에 아빠를 같이 그려주세요” “핑크색, 파랑색 말고 다른 색을 사용해주세요” 같은 피드백을 해서 최근 진짜 많이 바뀌었어요.

초반에 말씀한 것처럼 제가 어린 시절 읽고 자란 책이 아직도 베스트셀러로 서점에 놓여 있어요. 명작이라 그런가요, 아님 어린이 책 시장 변화가 워낙 더딘 건가요.

이쪽에서는 창작 그림책보다 전집 시장이 훨씬 커요. 전집은 과학, 인성, 수학 이런 식으로 주제가 정해져 나오잖아요. 한 권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공이 창작 그림책을 한 권 만드는 것보다 훨씬 적어요. 또 출판사 관점에서 보면 같은 책을 그대로 다시 인쇄해 판매하는 게 돈을 아끼는 방법이죠. 시대에 맞춰 성인지 감수성 요소를 반영하겠다고 일러스트나 텍스트를 고치지 않아요. 그러니 저희가 어렸을 때 본 내용을 아이들이 똑같이 배우고 있는 거예요. 물론 좋은 전집도 많아요. 근데 국내에서는 책을 즐기기보다 공부 목적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아 목적성 있는 전집이 잘 팔린다는 문제도 있어요.

그래도 성평등 인식을 지닌 양육자가 늘고 있다고 하셨죠.

여전히 우리나라는 여성 인권이 낮은 나라에 속해요. 그런 걸 안타까워하는 분도 많이 계시지만 개인이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국가 차원에서 끌어줘야 하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현재 초등학교 이상 교원은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필수로 받아야 해요. 반면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는 필수가 아니에요. 그런데 말씀드렸다시피 만 3세부터 성별 고정관념이 생기거든요. 영유아 때부터 성평등 교육이 필요한 거죠.

미국, 유럽과 비교하면 아직 격차가 큰가요.

우리나라가 10년 정도 뒤처져 있다고 봐요. 독일에 비해 10년, 성평등 선진국으로 불리는 북유럽 국가에는 30년 정도 뒤처져 있어요. 한국이 ‘어떻게 하면 안 좋은 것을 아이들에게 안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스웨덴·노르웨이 등은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자라야 하나’ ‘아동의 권리는 어디까지 일까’ 등에 대해 논의하는 수준입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교사 성비와 인종을 다양하게 하고, 가부장제적 요소가 남은 활동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더라고요.

유치원 등 교육기관에서 아무리 성평등 교육을 한다 해도 미디어 노출 과정에서 성 고정관념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과거 팀원 가운데 캐나다 어린이집에서 일했던 분이 있어요. 그분께 “거기는 아이들이 애니메이션을 안 보느냐” “애들이 각종 콘텐츠나 그림책에서 성별 고정관념을 습득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나라는 기본적으로 양육자가 직접 육아하는 시간보다 아이가 어린이집·유치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대요. 우리는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미디어 노출이 많은데, 선진국은 여러 사회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서 아이한테 미디어를 자주 보여줄 필요가 없는 거예요.

부모들이 그래도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콘텐츠는 괜찮겠지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EBS 등 교육 전문 방송사에서 만든 콘텐츠라고 모두 다 건전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어린이 콘텐츠 제작자에게 “이런 것 좀 만들지 마시라” “아이한테 유해하다” 하면 “우리는 콘텐츠 제작자이지 교육자가 아니다”라고 해요. 어린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직업윤리를 가져야 하는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걸 찾아 자극적으로 그리는 분들이 있는 게 현실이죠. 복합적인 문제예요. 사회적 도움 없이 가정에서 아이를 길러야 하는 환경이 다방면으로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봅니다.
미디어 콘텐츠 시장이 성장하면서 특히 유튜브 영상에 노출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어린이집·유치원에 다녀와서, 밥을 먹을 때, 잠자기 전 “유튜브, 유튜브” 칭얼거리는 아이를 둔 양육자는 매번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유 대표는 “우리나라 어린이의 미디어 시청 시간이 그렇게 긴 편은 아니다. 문제는 걸러지지 않은 유튜브 콘텐츠”라며 한숨을 쉰 뒤 말을 이었다.

“한국에는 질 좋은 어린이 콘텐츠가 많이 없어요. 산업 구조의 문제인데, 어린이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가 대부분 대기업이거든요.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어린이 콘텐츠를 바탕으로 장난감을 만드는 게 불법이에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다들 만들잖아요.”

대형 마트에 가면 인기 만화 내용을 배경으로 하는 장난감이 정말 많던데요..

맞아요.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요술) 봉 있잖아요. 회사에서 장난감을 먼저 만들어요. 그 봉을 애니메이션에 넣는 거예요. 콘텐츠가 잘될지 안될지 어떻게 알고 미리 장난감부터 만들겠어요. 대기업이니 할 수 있는 일이죠. 장난감이 광고처럼 계속 영상에 등장하죠. 그 영상 자체가 대기업 입맛에 맞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아이들이 더 많이 보게 하려고 혐오적 발언을 농담처럼 건네기도 하죠. 이런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

부모는 성평등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해도 아이들에게는 또 그들의 사회가 있잖아요. 인기 있는 콘텐츠 소비를 무작정 막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핼러윈이나 생일 파티만 봐도 여자아이들은 공주 드레스, 남자아이들은 스파이더맨 슈트 같은 정형화된 코스튬을 입는 경우가 많고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굳이 막을 필요는 없어요. 다만 아이가 그런 옷을 입고 싶어 한다는 건 그런 정체성을 자기한테 부여하고 싶은 거잖아요.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할 때 자연스럽게 성별 고정관념을 갖고 있거든요. “난 공주니까 공주 옷을 입고 왕자를 기다릴 거야” “나는 스파이더맨이라서 힘이 세” 이런 거요. 그러면 안 되죠. 아이가 그 옷을 입는 바탕에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해서 조금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좋죠.
양육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성인지 교육을 하면 좋을까요.

아이한테 다양한 보기를 준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셨으면 좋겠어요. 테마파크 ‘키자니아’에 직업 체험을 하러 가잖아요. 동물원도 가고요. 그렇게 별의별 곳을 다 가는 건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자녀 데리고 해외여행 가는 것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결국에는 경험을 위한 거고요. 성평등 교육도 똑같아요. 아이들한테 경험을 시켜주는 거예요. 어린 시절 다양성을 경험하지 않으면 차별주의자로 자랄 수밖에 없어요. 조금만 더 자라면 자기 스마트폰을 갖고 틱톡·유튜브를 마음껏 볼 텐데 어떻게 일일이 다 가려주겠어요.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심어줘야 심각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요. 자녀가 조금은 덜 차별주의자로 자랄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시면 좋겠어요.

#성평등교육 #딱따구리 #여성동아

글 이진수 기자 ·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딱따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