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출두요" 펀딩 열자마자 1억 돌파한 '마패 교통카드'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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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화점2022-03-31 17: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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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마패 교통카드’라는 색다른 물건이 등장했다. 손에 들고 “암행어사 출두요”를 외쳐야 할 것 같은 이 독특한 상품은 공개되자마자 수만 명이 관심 프로젝트로 지정할 정도로 주목받았다.

마패 교통카드는 두 차례 발매 일정 연기를 거쳐 3월 26일 정식 펀딩을 시작했다. 모금이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억 2천 만 원 이상이 모이며 생산 가능 물량 소진으로 조기 마감됐다.
사진=김중현 씨 제공
마패는 암행어사 등 조선시대 공무원들이 공적인 일로 출장을 갈 때 역참에서 말을 빌려 타기 위해 보여주던 일종의 증명서다. 교통수단을 쓰기 위해 제시하던 물건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교통카드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이너 김중현 씨와 이메일 인터뷰를 나눴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대중(crowd)으로부터 자금(fund)조달을 받는다는 의미로, 자금이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가 사업 계획을 공개하고 모금활동을 벌이는 것. 상품제작을 위한 펀딩이 성사되었을 경우 후원금을 낸 사람은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
왜 ‘마패’ 였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마패 교통카드 디자이너이자 열심히 디자인을 공부중인 학생 김중현입니다. 반갑습니다!”
사진=김중현 씨 제공
전통적인 소재 중에서도 ‘마패’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나요.

“마패 교통카드를 구상하기 전부터 우리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2019년에는 한국의 멋을 패턴 디자인으로 풀어내어 제7회 대한민국 국가상징 디자인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고, 2021년에는 마패 교통카드로 제9회 서울상징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대상과 시민인기상을 받았습니다.”

김중현 씨는 서울상징 관광기념품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잊고 살지만 서울의 상징이 될 만 한 것’을 떠올리는 데 골몰했다. 뻔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납득할 만 한 서울의 상징이 무엇일지 고민하던 그는 서울의 편리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생각해 냈다.

자가용이 없어도 대중교통으로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는 도시이니 이와 관련된 기념품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발상에서 이어진 것이 바로 마패였다. 그는 “조선시대 공무원들이 역참에서 마패를 보여주고 말을 빌려 탔던 것이 오늘날 우리가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교통카드 찍는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사진=김중현 씨 제공
펀딩 사이트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았는데, 처음 프로젝트를 올렸을 때 이 정도로 인기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공모전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기에 상품화가 된 뒤에도 인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할 따름이고, 많은 분들께서 우리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에 관심을 가져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열심히 하면 우리 문화를 더 사랑받게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패 교통카드는 모금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생산 가능한 물량이 전부 채워져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김 씨는 펀딩이 완료된 뒤 온·오프라인 판매처에서 마패 교통카드를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설명했다.
“패션 아이템으로도 쓸 수 있도록 구상”
마패 교통카드가 멋지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쓰는 납작한 교통카드와 달리 큼직해서 갖고 다니기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편하게 쓰는 방법이 있나요.

"마패 교통카드는 본래 서울에 방문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구상한 제품입니다. 마패 교통카드를 쓰는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가 암행어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서울의 명소를 탐방하면 좋겠다는 시나리오를 구상했기에 실제 마패 크기와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관광객 입장에서의 편의성, 실용성, 도난·분실로부터의 안전성 등에 신경을 썼습니다. 노리개 부분에 O링 고리가 부착되어 있어 백팩이나 캐리어에 쉽게 탈부착할 수 있어요. 크로스백이나 파우치, 허리춤에 달아도 힙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일상 패션 아이템으로 사용하셔도 좋은 기념품이고요. 일반 티머니 교통카드처럼 서울 외의 타 지역에서도 쓸 수 있고 교통수단 이용뿐만 아니라 편의점, 카페, 식당, 영화관 등 다른 편의시설에서도 결제할 수 있어요."
마패 교통카드를 가방에 달아 액세서리로 활용한 예시. 사진=김중현 씨 제공
제작 도중 어려웠던 점이나 ‘이 부분은 특히 공을 많이 들였다’ 하는 부분이 있나요?

"실제 마패처럼 ‘낡은’ 느낌을 구현하는 것이었어요. 진짜 마패는 금속으로 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녹슬고 마모된 느낌이 나지만, 마패 교통카드를 금속제로 만들면 금속 성분이 교통카드에 전파방해를 일으킬 수 있거든요. 그래서 플라스틱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플라스틱을 사용하면서도 오래된 금속 같은 느낌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오래 고민하고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진짜 마패가 가지고 있는 세월의 흔적을 비슷하게나마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 하나하나를 구현해 나가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오랜 시간을 들인 만큼 잘 된 것 같습니다."
사진=김중현 씨 제공
한때 고루하다고 여겨졌던 전통문화가 ‘힙’하고 세련된 것이라는 인식을 얻게 된 요즘, 생활한복이나 액세서리 등 전통문화를 활용한 굿즈들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김중현 씨는 시각적으로 개성 있고 멋진 굿즈도 좋지만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물건에 더 관심을 두고 싶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한국 전통 육아용품 포대기가 인기를 얻은 것처럼 옛 생활문화에 담긴 재치와 실용성에 주목하겠다는 것이 김 씨의 포부다.

디자이너로서 추구하는 가치나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이야기가 담긴 디자인’을 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멋진 디자인이라도 그 안에 담고 있는 이야기가 없다면 큰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움 안에 이야기가 담겨 있고 진심이 전해져야 합니다.

마패 교통카드가 사랑받을 수 있던 이유도 단순히 마패 모양의 교통카드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봐요. 마패가 말을 빌리는 수단이었다는 점, 한양의 상서원에서 발급했던 마패에서 오늘날 교통카드를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는 점 등 마패 교통카드만의 이야기가 있기에 많은 분들이 재미를 느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정말 뜻 깊은 작품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가 담긴 디자인을 하고 싶습니다.”

JOB화점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