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 편의점주 "평생 바코드 찍는 아줌마로 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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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22-02-24 16: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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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에서 GS25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규옥 씨. 그는 “편의점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나는 천생 장사꾼”이라고 말했다. 박규옥 씨 제공
40대에 문예학 박사 학위를 땄다. 이를 살려 중국 시장 조사 업무를 하는 1인 기업을 세워 운영하기도 했다. 남들 앞에 자랑하기엔 회사를 운영하는 일, 박사 학위를 지닌 건 폼 났다. 하지만 책상 앞에 앉아 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편의점이었다. 몸을 조금씩 움직이는 육체노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단골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크게 두렵지 않았다. 남들 시선에 연연하기보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 편의점 점주로 살기 시작했다. 18일 에세이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몽스북)를 펴낸 박규옥 씨(55) 이야기다.

그는 1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엔 늦게까지 공부해서 박사 학위까지 받아놓고 ‘겨우 장사나 하려고 그랬느냐’는 주변 시선을 의식했다”고 했다. 1991년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학원 강사로 일하다 가족 때문에 중국에 10여 년 머물렀다. 뒤늦게 다시 공부를 시작해 2006년 중국 선양 랴오닝대에서 중국 근·현대문학 석사, 2010년 같은 대학에서 문예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2016년부터 경기 성남시에서 전업으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회사 일도 했지만 작은 가게에서 단순한 일을 하는 게 낫다 싶었어요. 일터로 나오는 것이 즐겁고 즐거운 일을 하니 남들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게 됐죠.”

지적인 업무에만 익숙하던 그가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 일을 하는 게 만만치는 않았다. 새벽에 들어오는 물건을 나르다 근육통을 앓기도 하고, 밤마다 행패를 부리는 ‘진상 손님’과 마주칠 때도 있었다. 편의점 일을 버티기 위해 그는 지나치게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본사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는 과도한 친절은 일을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에게도 상식선에서 친절하면 된다고 알려준다”며 “편의점에서 밤낮 없이 일하면서 부당하게 욕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침마다 우유를 사가는 대학생, 퇴근길에 간식거리를 사는 회사원…. 그는 가게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과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서류와 싸움하는 회사 일보다 자영업자가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소소한 소통이다. 힘들게 얻은 박사 학위가 아깝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세상의 축소판인 편의점에서 삶의 교훈을 배우고 있기에 후회하지 않아요. 평생 바코드 찍는 아줌마로 살고 싶습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