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때문에 쉬러 왔다가 '호주 간호사'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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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화점2022-02-03 14: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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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한호일보XJOB화점/도전하는 사람들] 한국 간호학생이 호주 간호사에게 묻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며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세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확진자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어 수많은 의료진들이 신체적/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적은 인원으로 많은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료진의 과로와 탈진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한국 의료계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호주에서 22년째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장겸주 간호사 역시 한국에서 5년간 일하다 번아웃 때문에 호주로 터전을 옮겼다. 쉬면서 영어를 배울 생각으로 호주에 왔다가 쭉 일하게 됐다는 장겸주 간호사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호주행을 결심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면허를 취득하고 서울의 빅 5 병원에서 약 5년 정도 응급실 경력을 쌓고 유학을 왔습니다. 한국에서 너무 많은 환자를 보면서 화장실도 못 가고 식사를 할 시간조차 없이 일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게다가 응급실이었기 때문에 끔찍했던 사망을 너무 많이 봤고, 제가 아끼던 소아과 환아들이 제 앞에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너무 많이 봐서 번아웃(burn out)이 심하게 왔습니다. 한동안 쉬면서 전공 영어나 배워가자는 마음으로 호주 유학을 왔죠.”

응급실 근무가 고될 텐데, 호주에서도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학생 때 드라마를 보면서 응급실에서 일하면 멋지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응급실에 지원했고 응급실로 발령이 났습니다. 일 분 일 초가 중요한 현장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이 정말 보람되다고 생각했어요.

호주에 와서도, 호주의 응급실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에이전시를 통해 시드니에 있는 병원들을 다니며 응급실 경험을 해보았고 지금 다니고 있는 병원이 마음에 들어 지원해 22년째 다니고 있어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일하면서 호주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엄청난 케이스를 정말 많이 경험했는데 그 경험 덕분에 호주에 와서 일 잘하는 간호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간호사 면허 취득을 위해 학사 학위와 1000시간의 임상 실습, 국가고시 합격 등의 조건이 필요한데요. 호주에서 간호사 면허를 따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25년전에는 한국에서 간호학과를 졸업한 경우 GE(Graduate Entry)과정을 1년만 더 공부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GE과정을 2년동안 이수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간호학과를 졸업하지 않은 경우라면 3년의 학사 과정과 모든 과목을 패스하고 800시간 이상의 실습을 마치면 받는 공인 간호사(Registered Nurse-RN)를 호주 간호 및 조산사 위원회(The Nursing and Midwifery Board of Australia-NMBA)에 등록하면 정규 간호사가 될 수 있어요.”


"교과서에서 배운 ‘전인 간호’ 실천할 수 있는 근로환경이 장점"
장 간호사는 호주 간호사 생활의 장점으로 환자의 신체는 물론 정신적 건강까지 아우르는 ‘전인 간호’를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간호사 1명당 3~4명의 환자를 돌보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그만큼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 개개인에게 집중할 수 있어 직업 만족도가 높다고.

간호사로서 존중 받으며 일한다고 하셨는데, 호주 간호사들의 업무 환경은 어떤가요.

“호주의 간호사들은 존중을 받고 협력하는 분위기로 간호사가 의사의 조수라거나 비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간혹 나이 든 의사들이 그런 태도를 보이면 굉장히 전근대적이라고 생각하고 대응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런 태도에 대해서 옳지 않다고 말을 하기도 해요.

간호사 환자 비율이 대부분 지켜져서 한국보다는 덜 힘들다는 것과 정년퇴직이 없다는 것도 장점인 것 같아요. 같은 직장 수간호사님이 76세이신데 아직도 풀타임으로 일하고 계세요. 그래서인지 호주에는 자녀들을 키워놓고 간호사에 도전하시는 분도 많은 편입니다.

환자 개개인에게 신경 쓸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전인 간호를 실천할 수 있게 되는 점이 장점인 것 같아요. 환자를 위해 가능한 모든 간호를 제공합니다. 그럴 때마다 호주의 환자들이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 엄마도 이런 간호를 받으면 너무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국의 경우 간호사 1명당 10~20명의 환자를 돌보기도 하는데요.

“호주의 경우, 각 주마다 다르지만 일단 제가 거주하고 있는 뉴사우스웨일즈 기준으로 응급실과 소아과는 1:3(간호사:환자), 내과나 외과 병동은 1:4예요. 물론 이렇게 규정은 하고 있지만 공립병원도 노인 요양 병동이나 일반 병동 같은 경우 12-14명 정도의 환자를 돌보기도 하고 Senior RN, Junior RN, AIN이 함께 일하기도 하는 등 간호사:환자의 비율이 잘 지켜지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을 텐데요. 근무하시면서 느낀 호주 간호사 생활의 단점은 무엇인가요.

“호주 간호사들은 한국처럼 국가고시를 치르지 않기 때문인지 개인별로 실력 차이가 많이 납니다. 대체로 취업 후에 일하면서 끊임없이 공부를 하며 실력을 쌓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지식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간호사가 되는 사람도 있어요.

또 호주의 의료 자체가 한국에 비해 기술적으로 많이 뒤처져 있는 듯한 면이 있어요. 현재 공립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공립병원의 경우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해서 의료 장비가 많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요. 외상 센터에 MRI 기계가 한 대 뿐인데 그것도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외상 전문인데 CT 기계 또한 겨우 3-4대 있어요.”

한국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느낀 한국 간호계의 개선해야 될 점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은 간호사라는 고급인력과 그들이 가진 기술을 기업 병원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병원이 훨씬 많기에 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는 것이 기업인데 이 방법을 바꿀 이유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여전히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를 엄격히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괴롭히는 일)’ 때문에 간호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착잡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었던 26년전과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서요.”

호주 병원에도 ‘태움’이 있나요.

“한국에서 말하는 ‘태움’같은 것은 딱히 없지만 직장 내 왕따나 은근한 인종차별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법규와 지식을 통해 잘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예비 간호사, 현직 간호사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간호사는 전문 직종이며 세계 어디에서도 일할 수 있습니다. 세계는 똑똑하고 성실하며 윤리적인 한국인 간호사를 원하고 있어요. 해박한 간호 지식과 기술은 직업의 기본이니 전공과 더불어 영어까지 섭렵하겠다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전공과 영어를 같이 준비해서 국제 간호사에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의 임상 경력 또한 해외에서 취직할 때 유리하게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호주한호일보 장소희 인턴
JOB화점 dla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