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외교부 산하 패션쇼장에 선 유일한 민간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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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화점2022-01-17 09: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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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일보XJOB화점 / 도전하는 사람들] FOMA 한국 팀 기획한 양다영 기자
2021년 12월 2일 오후 5시, 호주 시드니시티 해양박물관에서 열린 FOMA(Fabrics of Multicultural Australia) 패션쇼장에 유난히 큰 박수갈채가 울려 퍼졌다. 런웨이에서 한복 맵시를 뽐낸 다운증후군 모델 송예나(20) 씨의 차례였다.

호주 외교부 산하 행사인 FOMA 패션쇼는 세계 여러 나라 디자이너들이 각 문화 전통복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송 씨를 비롯한 한국팀은 본래 총영사관과 문화관 등 공관만 참가할 수 있는 FOMA행사에 유일하게 민간 자격으로 참가했다.
이스라엘 대사관, 중국문화원, 칠레 대사관, 아일랜드 총영사관, 몰타 총영사관, 요르단 대사관 등 각국 공관 주요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주목받은 한국팀은 어떻게 꾸려지게 됐을까. 팀원을 모으고 행사 참여 전 과정을 기획한 양다영 기자(호주한호일보)는 “다사다난했지만 값진 경험이었다”며 ‘팀 코리아’가 결성되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안 되는 것도 되게 만들었다, 포기를 모르는 한국 팀
본래 공관만 참여할 수 있는 행사인 만큼 민간 자격으로 참가를 허가받기까지의 과정은 길고 험난했다. 양 기자는 “2019년에는 한국문화원이 FOMA에 참가했는데, 그 행사에 호주 한복업체 ‘임정연 한복’의 시드니 지점을 맡고 있는 정소윤 원장님과 함께 구경을 갔던 게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처음 정소윤 원장님과 함께 FOMA 무대를 봤을 때 '우리도 저런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2021년에도 같은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문화원에 문의를 했더니 이번에는 사정상 참여가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민간 자격으로 참여할 수 없을까 해서 FOMA측에 직접 연락을 했지만 원래 공관들이 참여하는 행사라 당연히 거절당했습니다. 그냥 포기할까 싶기도 했지만, 시도도 안 하고 포기하기보다는 한 번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임정연 한복의 포트폴리오를 정성껏 준비해 FOMA에 보내자 놀랍게도 ‘통과’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살린 포트폴리오가 통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산 넘어 산, 해결해야 할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런웨이에 설 모델들도 FOMA측에서 결정하여 각 공관에 통보하는데, 한국팀은 다운증후군 모델 송예나 씨와 함께하겠다는 계획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 기자는 ‘다문화 행사에 장애인 모델이 서면 더 의미가 있을 것이고, 송예나 씨는 이전에도 모델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는 설득을 통해 주최측의 마음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혹시나 모를 안전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여러 서류들도 수 차례 제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팀은 참가 팀 중 유일하게 예나, 성오, 아비 3명의 자체 모델을 런웨이에 올릴 수 있었다.

“기왕 하는 김에 완벽하게 하자”
민간 팀으로서 패션쇼 참가권을 따낸 것만 해도 쾌거라 할 수 있었지만 한국 팀은 ‘기왕 하는 김에 제대로’ 라며 열의를 불태웠다. FOMA에는 패션쇼 외에도 작품 전시 파트가 있는데, 이 파트에도 참가 신청을 했다. 이쯤 되면 예측이 가능하다. 또 거절당한 것 아닐까.

“네, 거절당했어요(웃음). 기왕 하는 김에 작품전시도 참여하고 싶다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하셔서… 그래도 또 일단 포트폴리오를 내 봤습니다. 전태림 선생님의 조각보 작품으로요.”

조각보는 다양한 색의 천조각이 함께 어울려 하나의 완성작이 되는 작품이기에 호주가 중시하는 다문화 가치와도 일맥상통하고, 자투리 천을 재활용해 예술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생활용품으로 재탄생시키는 특성에서 한국 전통문화와 조상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결국 주최측은 또 한 번 설득되었고, 심지어 작품전시 파트의 참가비까지 면제해 주었다.

현지 교민과 기업이 뭉쳐…
어렵게 참가권을 따냈지만 또 다른 시련도 한국팀을 힘들게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행사가 세 차례나 연기돼 혼선이 생긴 것이다. 일정이 자꾸 밀리는 와중에 주최측이 모아 두었던 한국팀 자료가 사라지는 사고도 일어났다. 각 나라 공관들과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니 문제가 없었지만 한국 팀은 유일한 민간 팀이라 연락망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사고였다.

양 기자는 “한복 포트폴리오부터 다시 제출해야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눈앞이 아찔하고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 많은 서류들을 다시 준비해서 제출하느라 코피를 쏟을 정도였지만,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마음으로 모두 함께할 수 있던 자리라 뿌듯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임정연한복을 비롯한 현지 교민 기업들이 한국팀을 적극 지원했다. 모네스가든과 베이비스범이 한국 전통가옥 느낌으로 부스를 꾸몄고 관광공사에서 제공한 한복만들기 키트, 엘레멘틀(종근당 호주)이 협찬한 샘플제품과 노트/펜 패키지도 한국팀 부스를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외에도 동방식품, 킹스엔젤스아카데미, 조아라 헤어&메이크업, 이서, 난주 사진작가가 손을 보탰다.

한국팀 부스에서는 관람객들을 위한 한복 입기 체험도 진행됐다. 전시에 출품된 전태림 작가의 대형 작품 ‘Intergraduation’ 은 한국 전통예술 작품 최초로 호주디자인센터 입구 전면에 걸려 더욱 의미가 깊었다.

“호주는 다문화 국가, ‘어울림’을 최고 가치로 여겨”
봉사자들이 기꺼이 시간과 열정을 들여 빚어낸 한국 팀의 퍼포먼스와 전시는 모두의 인정을 받았다. 처음에는 민간 참여 요청에 난색을 표했던 FOMA의 소니아 간디(Sonia Gandhi) 대표도 행사 뒤 “공관이 아닌 팀과 처음 작업해 본 것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한국팀은 이번 행사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멋진 팀이었다. 참여해 주어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을 정도였다.
연습 중인 송예나 씨.
특히 한국팀 자체 모델 송예나 씨는 팀의 주인공이자 나아가 2021 FOMA의 주인공이었다. 다운증후군 장애인인 송 씨는 2년 전 정소윤 원장이 장애인 학생들을 위한 한복체험 봉사를 하다 인연이 닿았다. 표현력이 뛰어나고 한복 이해도도 높아 좋은 모델이 될 가능성이 엿보였다고. 그 뒤로 전문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해 잡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송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모델 직업훈련을 신청하여 관련 분야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예나가 런웨이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걱정도 많았지만 완벽하게 무대를 소화하더라고요.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자마자 긴장이 한번에 풀려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곧 감정을 추스르더니 ‘다음에 더 잘 하겠다’며 의욕을 보였어요.”

이들은 앞으로도 호주에서 꾸준히 ‘어울림’이라는 가치를 보여 줄 예정이다. 양 기자는 “많은 분들이 자원봉사로 함께 하고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다”며 “예나는 (모델로 서 달라는) 요청을 받아 2월에 열리는 호주 내 다문화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진=호주한호일보 양다영 기자 제공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