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마스크, 의자가 되다. ‘Stack and Stack’과 ‘VEIL ST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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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1-08-26 11: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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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환경적인 메시지를 담다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코로나19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 나라마다 대책은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스크 착용’이 개인을 지키는 방역법 중 가장 기본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마스크가 인류를 바이러스로부터 지켜내고 있는 한편,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에 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이 매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환경적으로 심각한 사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 개에 달하는 마스크 사용은 장기적으로 볼 때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버려지는 마스크. 재활용 가능성을 찾기 위한 다양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픽사베이
최근 마스크를 효과적으로 재활용하고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서로 다른 두 디자이너의 작업이 흥미를 이끄는데, 이들은 ‘폐마스크 증가’라는 하나의 문제점을 통해 전혀 다른 의자를 완성해낸다. 팬데믹으로 인한 혼란 속에 두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시도와 작업을 살펴봤다.


김하늘 디자이너의 스택 앤 스택(Stack and Stack)

재활용 가구 디자이너 김하늘은 ‘폐마스크로 제작한 스툴’을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했다. 그는 버려지는 마스크를 재활용해 스툴을 디자인했으며 ‘스택 앤 스택 (Stack and Stack)’컬렉션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하늘 디자이너
사실 디자인과 재활용은 언뜻 보아서는 직관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느껴진다. 최근에는 친환경 디자인과 지속가능성을 지닌 상품 개발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시도는 새로운 영역인 듯하다. 김하늘 디자이너가 처음 디자인과 재활용 문제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게 됐던 계기가 궁금했다.

“작년에 저는 가구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던 학생이었고, 동시에 사회 전반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릴 적부터 뉴스를 많이 보곤 했는데, 그 덕분에 작년부터 심각해진 코로나 이슈에 대해서 접하면서 환경적인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버려지는 마스크가 환경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인데, 그렇다면 폐마스크 또한 재활용될 수는 없을까? 라는 막연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작업입니다.”
'폐마스크도 재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 사진은 마스크 수거 과정 모습이다. 현재는 사용된 마스크가 아닌 마스크 공장에서 버려지는 원단을 받아 작업한다고 밝혔다 ⓒ김하늘 디자이너
막연한 호기심에서 탄생한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완성도가 상당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의자는 플라스틱 재활용 매뉴얼을 통해 완벽한 모습을 갖췄고 내구성 면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 의자를 만들기 위해 작년 3월부터 폐마스크를 모으고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으나 효율적인 제작 방식을 찾는 것에만 2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사실 새로운 소재를 도입해 하나의 작품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하늘 디자이너 역시 이를 직접 몸소 경험하며 스택 앤 스택 시리즈를 제작해나갔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형의 스툴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시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했다.

“될 것 같았어요. 마스크의 소재가 플라스틱이라고 하는데, 수년 전부터 한창인 플라스틱 재활용 사례를 보고 당연히 가능한 일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시에는 학생 신분으로 연말에 열릴 졸업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성공해내고 싶은 경쟁 욕구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라이터를 이용해 마스크를 지져보기도 하고, 끓는 물에 삶아보기도 하면서 다양한 방식에 부딪혀봤던 것 같아요.”
스택 앤 스택 제작 과정ⓒ김하늘 디자이너
열을 통해 마스크를 녹여서 굳히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김하늘 디자이너
새로운 소재를 도입한 가구라는 점에서도 대중의 많은 이목을 끌고 있는 김하늘 디자이너의 작업은 팬데믹 시기를 겪는 모두에게 큰 영감을 줬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의 작업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버려지는 소재를 사용해서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스택 앤 스택은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대중들에게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Simple is the best’라는 말이 있듯, 그의 작품 역시 환경을 고려한 작품이기에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 속에서 심플한 아름다움을 찾았다. 그는 의자의 형태에 있어 최소한의 기능에 초점을 맞췄으며, 의자의 색상 역시 채색이 아닌 다양한 컬러 마스크에서 답을 찾았다. 장식적인 부분보다는 메시지와 기능을 핵심으로 생각한 것이다.

“의자에 디자인에 대해서는 봐주신 그대로가 전부인 것 같아요. 심플한 디자인. 조형적으로 더 아름답고, 훌륭한 디자인이 많겠지만, 저는 스택 앤 스택 시리즈에서 의자가 가진 최소한의 기능만 갖추길 바랐어요.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디자인에 쏟아야 할 힘을 많이 덜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컬러 마스크를 이용해 다양한 색의 스툴을 제작했다 ⓒ김하늘 디자이너
심플한 디자인. 메시지와 기능이 강조됐다. ⓒ김하늘 디자이너
메시지와 기능에 초점을 맞췄기에 작품 제작에는 의자로서 역할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가구의 내구성에 관한 궁금증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스택 앤 스택은 전시를 통해 대중이 직접 의자를 체험해보는 기회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폐마스크로 제작한 자신의 의자에 대해 일반 플라스틱 의자의 내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자이다 보니 당연히 실제로 앉을 수도 있다. 그에 의하면 90kg 정도 체중이 나가는 디자이너 자신 역시 거뜬하게 버틸 정도이니 웬만한 대중에게도 거뜬한 내구성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고 한다.
튼튼한 내구성, 실용성 또한 스택 앤 스택의 장점이다 ⓒ김하늘 디자이너
김하늘 디자이너의 ‘스택 앤 스택’은 그의 대학교 졸업작품이다. 한마디로 작가로서 데뷔하면서부터 많은 주목을 받은 셈인데, 작년 한 매체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관심을 얻게 되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 매체까지 그의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시의적 상황에 대한 고찰이 담긴 그의 작품은 단순한 재활용 디자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필요한 메시지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림미술관 '기묘한 통의 만물상' 전시에서 김하늘 디자이너의 흰색 스툴 시리즈. 주원료인 원단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마스크 제작 공장에서 버려지는 폐원단) /윤미지 기자
대중의 높은 관심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브랜드와 협업 소식 또한 전해지고 있다. 스택 앤 스택 시리즈를 기반으로 다양한 협업과 전시를 진행한 바 있는 김하늘 디자이너는 새로운 업사이클 소재 개발에 관한 협업 소식에 대해 언급했다.

“이니스프리와 협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버려지는 마스크가, 녹이고 새롭게 굳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업사이클 소재가 된 사례와 이니스프리에서 버려지는 화장품 공병들을 함께 혼합해서 또 다른 텍스처를 개발하고 있는데요. 가구 종류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공부하고 있고, 10월 중 소격동에 위치한 이니스프리 공병 공간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연주의 뷰티 브랜드인 이니스프리와의 협업 소식이 더욱 반갑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작업이 앞으로도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이어질 것이라는 결론을 떠올리게 해서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여러 협업을 통해서 버려지는 폐마스크 재활용 작업을 선보인 그의 앞으로 계획이 궁금했다.

“어느 정도는 저만의 캐릭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대중이 저에게 준 역할을 책임감 있게 생각하고 작업하고 싶어요. 마스크가 재활용되어 새로운 것으로 탄생한 것처럼, 또 다른 소재가 재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탐구, 연구를 끊임없이 해나갈 예정입니다. 하반기에는 독립적인 활동을 병행하면서 동시에 팀원을 꾸려 하나의 브랜드를 구축하고자 하는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조 슬래터(Joe Slatter) 디자이너의 베일 스툴(VEIL STOOL)

버려지는 폐마스크를 가지고 의자를 만든 디자이너는 또 있다. 바로 영국 기반의 디자이너 조 스래터(Joe Slatter)다. 팬데믹 시기에 버려지는 충격적인 양의 폐마스크는 환경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재사용 가능한 대안이 있음에도 마스크는 결국 매립지로 향하고 버려지는 쓰레기가 된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문제에서 출발했다.
ⓒJoe Slatter, Behance
우선 조 슬래터 디자이너는 런던 거리에서 버려진 마스크들을 얻었다. 수집된 마스크들은 오존 스프레이로 소독하고 햇빛 아래에서 4주간 격리한 후 작업의 재료가 됐다. 3겹으로 되어 있는 안면 마스크는 촘촘한 폴리프로필렌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는 녹을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실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발견에서 베일 스툴(VEIL STOOL)이 완성된다.

마스크는 의자로서의 의미를 완성하기 위해서 먼저 분리되는 작업을 거친다. 이를 촘촘하게 빗어 해체하고 하나의 새로운 소재로 완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과정이 필요하다. 의자의 기틀부터 외형까지 마스크를 재료로 하지 않은 부분은 없다. 3겹으로 된 마스크를 분리한 후 녹이거나, 부드러운 털로 만들어서 의자의 재료를 준비한다.
ⓒJoe Slatter, Behance
ⓒJoe Slatter, Behance
베일 스툴은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어진 의자 형태로 최종 완성된다. 실로 전환된 마스크는 스미르나 기법으로 의자의 표면을 장식한다. 몸체는 곡선 형태로 단순한 디자인을 가졌으며 3개의 다리가 돋보인다. 역시 마스크를 녹여서 기틀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다리를 제작했다.

의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히 접하는 일회용 마스크의 색상을 가지고 있다. 위쪽부터 아래까지 하늘색과 흰색의 그러데이션으로 의자가 완성된다. 의자를 가까이서 보면 손으로 직접 짠 실의 재질이 눈에 띄는데 마스크였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Joe Slatter, Behance
다른 재료를 추가로 덧붙이지 않아도 의자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 의자가 가진 메시지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마스크를 분리하고 재료로서 재정비하는 과정을 통해 부드러운 실을 만들고, 오직 재활용한 폐마스크라는 재료를 통해서 최소한의 기법을 적용해 의자를 제작했다.

조 슬래터 디자이너의 작업에서 우리는 버려지는 것이 하나의 작품으로 구현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폐마스크는 쓰레기일 뿐이지만 생각의 전환을 통해서 재사용되고, 다시 인간의 일상에서 존재하는 가구로의 의미를 획득했다. 쓰레기가 예술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으면서도 장기적으로는 환경적인 문제에도 기여할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Joe Slatter, Behance
이러한 의미는 베일 스툴의 이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베일이라는 이름은 마스크가 얼굴을 가리는 물건이라는 특성에서 가져온 것이다. 조 슬래터는 베일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아름답다는 인식을 이름 속에 투영했다. 마스크는 버려지는 대상으로 쓰레기일 뿐이지만, 종종 그런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베일 스툴의 메시지는 존재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한다.


디자인, 환경적인 메시지를 담다

두 디자이너의 작업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슬기롭게 나아가는 예술적 시도이며 장기적으로 환경적인 디자인을 주목하게 하는 하나의 사례라고 여겨진다. 대부분 폐마스크를 재료로 제작한 두 의자를 보면 놀라운 아이디어라는 찬사를 보낸다. 전반적으로 마스크를 영리하게 처리하는 방식이라는 점에 대해 동의하는 이들이 다수다.

하지만 종종 마스크 폐기는 정해진 매뉴얼 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아무래도 감염병에 관련한 사안이다 보니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하루에도 쏟아지듯 버려지는 폐마스크가 매립되거나 소각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환경 문제에 대해서 장기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번 버려진 마스크는 땅에 매립할 경우 썩어서 없어지는 데에 수백 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를 분리 배출하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으며 소각 시에는 온실가스 배출에 의한 환경 오염이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이미 수많은 환경단체에서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으며 현재 각 지자체에서도 폐마스크 증가에 대한 문제를 고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바이러스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마스크. 환경적인 문제도 고려되어야 할 때이다. /Artem Podrez, Pexels
김하늘 디자이너 역시 수거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우려하여 현재는 사용된 마스크를 수거하는 방식이 아닌 마스크 제작 공장에서 버려지는 폐원단을 지원받아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조 슬래터 디자이너는 오존 스프레이를 사용하고 마스크를 4주간 격리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을 단순히 버려지는 마스크에서 영감을 얻어 가구를 제작했다는 방식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팬데믹으로 인해 그만큼 마스크 사용이 증가하고 있고 버려지는 마스크는 환경 오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인 만큼, 또 다른 재활용 대책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쓰레기 재활용 방안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또한 실사용이 가능한 실용성 있는 물건으로까지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힘을 가진 시도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