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 오빠 따라다니던 '축덕' 취업기.. 인천FC→토트넘 '손흥민존'→K리그

동아일보
동아일보2021-08-23 14: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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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에세이 펴낸 '2002 월드컵 키즈' 양송희 씨
2002년 한일 월드컵. 전북 전주시에 사는 열세 살 소녀는 축구와 사랑에 빠졌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Be The Reds’라고 쓰인 붉은 옷을 입고 다녔다. 틈날 때마다 버스를 타고 K리그 경기장으로 달려갔다. 어른이 된 소녀는 K리그 선수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됐고, 멈추지 않는 축구 사랑은 그를 영국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까지 이끌었다. 20일 에세이 ‘저질러야 시작되니까’(시크릿하우스)를 펴내는 양송희 씨(32) 이야기다.
2013∼2018년 K리그 구단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일한 양송희 씨. 그는 “경기장관리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직접 발로 뛰는 일을 했다”며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경기장에 잔디를 직접 심고, 한겨울엔 잔디 보호를 위해 넓은 그라운드를 덮는 차광망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양송희 씨 제공
축구장에 한 번 간 적 없었던 여중생이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가수 ‘god(지오디)’보다 축구선수 김남일 오빠를 더 좋아하게 됐어요. 축구선수를 좋아하는 마음에 K리그 경기장을 다녔던 게 축구 사랑의 시작입니다.
연예인은 TV 안에만 존재하는데 축구선수는 경기장에 가면 실제로 볼 수 있잖아요. 운이 좋으면 사인도 받고, 함께 사진도 찍고, 싸이월드 일촌이 될 수 있었어요. 축구야말로 소녀 팬이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을 파고드는 행위)을 하기에 가장 완벽한 대상이었죠.
2010년 전국의 아마추어 여대생들이 출전하는 축구대회에 나간 양송희 씨. 그는 “대학 시절 직접 축구 경기를 하며 팀워크와 도전정신을 배웠다”고 했다. 양송희 씨 제공
‘월드컵 키즈’인 그는 고등학생 땐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축구 경기장에 달려가곤 했다. 국제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축구 중계를 보며 밤을 새웠다. 2008년 한국외국어대 국제스포츠학과에 입학하고선 대한축구협회가 여는 여대생 축구 대회에도 나갔다.

대학 졸업 후 2013년 K리그 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사했다. 남자 직원이 대다수인 직장. 처음엔 당황했지만 축구에 대한 사랑만으로 점차 업무를 배워갔다. 전기 건축 소방 설비 잔디관리 등 경기를 지원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경기 포스터와 칼, 테이프를 넣은 보따리를 보부상처럼 이고 지고 다니면서 인천 시내 전역에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모르는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 ‘포스터를 붙여도 될까요’라고 부탁한 뒤 구단에 대한 팬들의 생각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5년 동안 일하면서 더 큰 무대에서 축구에 대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자라났다. 2018년 여름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무작정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EPL의 여러 구단에 지원서를 넣었고 한 달 만에 런던 토트넘 홋스퍼에 채용됐다. 한국의 정규직 대신 얻은 타국의 7개월 계약직, 구장을 밟는 대신 선수들의 유니폼이나 기념품을 파는 ‘팬스토어’에서 일했지만 손흥민 선수가 뛰는 명문 구단에서 일하게 된 것.

그는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을 사이즈별로 파는 일명 ‘손흥민 존’에서 일하거나 몸으로 뛰는 다른 현장직 업무를 겸했다”며 “철저하게 팬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EPL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한국에서 하지 못했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또 “월급이 한국 돈으로 200만 원이 채 되지 않아 경기가 없는 날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며 버텼지만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성장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지난해 1월부터 한국프로축구연맹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다. 일부러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진 않았지만 결국 그가 살아온 길이 재취업에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축구와 관련된 일을 계속하고 싶은지 묻자 그는 해맑게 답했다.

“너무 오랫동안 취미로 좋아했고, 이젠 직업이 된 이 일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어요. 어쩌면 저처럼 축구를 사랑하게 될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꿈꾸는 일을 찾아 어디든 떠날 거냐고요? 슛을 쏴야 골이 들어가듯 뭐든지 저질러야 꿈이 시작되죠.”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