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고양이 없어" 하다가 '고양이 출판사'까지 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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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화점2021-06-28 09: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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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전문 출판사 '야옹서가' 고경원 대표 인터뷰
“길고양이를 찍으러 다니다 보면 낯선 골목길로 따라 들어가게 되기 일쑤다”
‘고양이 전문 작가이자 출판사 대표’라는 직함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고경원 야옹서가 대표(46)는 2007년 첫 집필한 자신의 고양이 책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의 첫 장에 이런 서문을 적었다.

길고양이를 따라 낯선 어느 골목에 들어서듯이, 고 대표는 ‘고양이가 좋아서’라는 이유로 다니던 직장을 뒤로 하고 생전 처음 출판사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고양이에 대한 글을 쓰고, 5년째 고양이 서적을 전문적으로 출판하고 있는 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19년차 고양이 전문작가이자,
고양이 전문 출판사 야옹서가 대표 고경원입니다.”
고경원 대표. ⓒ고경원 대표 제공
2002년부터 고양이 사진을 찍고, 2007년 첫 ‘고양이 책’을 내셨죠. 2017년에는 ‘야옹서가’를 창업하셨어요. 십 수년째 고양이 책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계신데요. 열정을 이어가게 만드는, 고양이만의 매력은 뭘까요?

"어떤 순간에도 의연한 존재라서 좋아요. 개와 고양이의 차이점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있는데요. 개는 반려인을 보면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걸 보니, 이 사람은 신인가 보다” 생각하고, 고양이는 “나한테 이렇게 잘하는 걸 보니, 내가 신인가 보다” 하고 생각한대요. 사고의 중심이 늘 자기 자신이고 뻔뻔할 정도로 매사에 당당한데, 좋아하는 사람에겐 은근히 다정한 게 매력이죠."
‘고양이 전문’입니다.
최근까지 지원 사업 서류 작업으로 바쁘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사업인지 살짝 여쭤봐도 될까요? 야옹서가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출판사를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들이 가끔 올라오고요. K-스타트업 사이트에도 창업 7년 미만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이 있어서, 출판 쪽으로 지원해볼 수 있는 사업은 거의 다 넣어보고 있어요. 1년에 2개 정도만 선정되어도 많이 힘이 되죠.

지금까지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 서울인쇄소공인특화지원센터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길 위의 인문학' 인문교육콘텐츠 개발지원사업 1~2단계, DDP디자인페어 등에 선정되어 제작비를 지원 받았어요. 또 2021년 '인생나눔교실' 예비멘토 양성교육사업에 선정되어서, 6월부터 자서전 집필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 기자로도 짬짬이 일하고 있고요."

오래된 일이지만, 창업 전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회화를 전공했고, 프리챌 헌책방 커뮤니티 '숨어있는책' 운영자로 활동했습니다. 2001년 웹진 기자로 일을 시작했고, 웹진보다 종이책을 만들고 싶어 잡지사로 이직해 다양한 매체에서 12년 정도 일했어요. 도중에 출판사로 이직해 편집자로 2년 반 정도 일하기도 했고요.

그동안 5권의 고양이 책을 단독 집필하고, 공저로 2권의 책을 썼습니다. 출판사 창업 전에는 텀블벅에서 독립출판으로 3권의 책을 만들었고요. 작가, 기자, 편집자로 두루 일했던 경험, 기획자이자 제작자로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던 경험이 출판사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었죠.”
고 대표가 찍은 길고양이 사진. ⓒ야옹서가
고 대표는 기자로 일하던 2002년부터 고양이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고양이를 기르지 못했기 때문에 취미로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글을 쓴 것. 2005년부터는 포털사이트 다음을 통해 ‘블로거뉴스’를 발행하며 애묘인 동지와 팬을 늘려갔다. 길고양이를 ‘도시의 무법자’ 같은 존재로만 보던 당시 사회의 시선 속에서 그의 블로그는 “(길고양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생한 의견이 용광로처럼 충돌하는 현장”이 됐다고 한다.

단순히 고양이가 좋아서 찍기 시작한 사진과 글에 목표가 생긴 것도 그 즈음이었다.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받는 길고양이를 보듬고 대변해주고 싶은 마음에 고 대표는 첫 책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를 썼다. 기자로 일하던 그에게는 글과 사진이 가장 이야기를 잘 전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고양이 전문 작가가 되었고, 고양이 전문 출판사의 대표가 되었다. 단순히 귀엽고 예쁜 고양이로 가득한 책이 아닌, "반려인에게 필요하지만 아직 없는 고양이 책을 직접 만들기 위한" 출판사다.
"출판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 첫 책"
야옹서가에서는 지금까지 몇 권의 고양이 책을 출판하셨나요?

“2017년 10월 출간한 첫 책 <히끄네 집>을 시작으로, 올해 1월 출간한 고양이 간병·임종케어 만화 <괜찮아, 함께할 시간이 아직 있잖아>까지 총11권을 펴냈습니다. 출판사를 하기 전에는 '1년에 한 권은 내 책을 만들 시간이 있겠지' 생각했는데, 혼자 일하다 보니 다른 작가님들 책 만들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더라고요. 정작 야옹서가에서는 제 책을 못 내고 있네요. 올해 하반기에는 제 책이 두 권 나올 예정이에요. ”
야옹서가의 책 <히끄네 집>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표지.
야옹서가의 책 중 베스트셀러는 <히끄네 집>인가요?

“출판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 첫 책이라고 생각해서 '성묘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제일 먼저 내고 싶었어요. 다 큰 고양이는 입양되기 힘들거든요. <히끄네 집>은 제주도로 도망치듯 떠나온 3포 세대 청년과, 집 없는 길고양이 히끄가 가족으로 함께 보낸 3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출간하자마자 교보문고에서 2017년 10월 4주 국내 도서 종합 1위를 기록했어요. 알라딘에서는 '2018올해의 책' 3위까지 올랐고요. 출간 한 달 만에 5쇄, 1만 5000부를 찍을 만큼 큰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 약 1만 8000부 판매된 야옹서가의 스테디셀러죠.

야옹서가 창업 후에 일본 문예춘추 온라인 한국 주재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 인연으로 문예춘추사에 <히끄네 집> 일본어 판권을 수출했어요. 일본에서는 2020년 3월에 < しあわせはノラネコが連れてくる>(행복은 길고양이가 가져온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어요.”

출판사를 운영하시면서 수많은 고양이 애호가들을 만나셨을텐데요. 기억에 남는 분이나, 이야기가 있을까요?


“<히끄네 집> 필자인 '히끄 아부지' 이신아 작가님이요. 전문 작가가 아니고, 민박업이라는 본업이 있던 터라 (책을 내자는 제안에) 바로 확답을 주지 않으셨어요. 저에 대한 활동자료도 검색해 보고 나서 '이 사람이라면 히끄 책을 같이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느낌을 받으셨나 봐요. 저와 계약한 후 대형 출판사 여러 곳에서 출간 제안이 왔는데 거절하셨대요. 큰 출판사 제안을 받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 계약 해지를 유도하는 필자도 가끔 있는데, 끝까지 함께해주셔서 힘이 됐죠.

이신아 작가님이 서툰 초보집사였다가 히끄를 만나 성장해가는 모습도 찡했고요. 편집 막바지에 서문을 받아 읽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기자로 일하면서 유명한 분들도 많이 만났지만 '이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까지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작가님을 만나고 나서 '히끄랑 아부지가 제주에서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싶었어요. 책이 나오고 독자 후기를 보니 비슷한 내용이 많아서 놀랐죠. 진솔한 글에는 그만큼 강한 힘이 있다는 걸 보여준 작가님이라서 오래 기억에 남아요.“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
고경원 대표의 반려묘 '하리'. ⓒ'고경원의 야옹서가' 인스타그램
과거에는 고양이를 기르지 못해서 고양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셨다고 했는데, 지금은 반려묘 ‘하리’와 함께 하고 계시네요. 하리와 식구가 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머니가 고양이를 무서워하셨고, 아버지는 '동물은 집 밖에서 키워야 한다'고 믿는 분이라 고양이 사진만이라도 갖고 싶어서 길고양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죠. 그러다 2006년 여름 '스밀라'를 임시보호하게 되었는데, 저희 집에 눌러앉으면서 첫째 고양이가 됐어요. 부모님도 막상 고양이를 보니 큰 거부감이 없으셔서 다행이었죠.

독립하면 고양이와 자유롭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2014년쯤 독립하면서 오히려 고양이와 헤어지게 됐어요. 스밀라가 만성신부전이어서 늘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본가에서 계속 키우기로 했거든요. 1년 반 정도 혼자 지내다가, 2016년 동물구조단체에서 보호 중인 하리를 임시보호하게 됐어요. 성묘인데도 2.3kg밖에 안 되는 데다 왼쪽 송곳니가 부러진 모습이 스밀라랑 너무 똑같은 거예요.

스밀라는 새침한 편인데 하리는 붙임성이 너무 좋아서 놀랐어요. 오자마자 무릎고양이를 하더니 밤에는 침대로 올라오더라고요. '다른 집에 보내면 다시 못 보겠지' 생각하니 도저히 안 되겠어서 결국 6일만에 입양울 결심했어요. 처음 올 때 회충, 안충, 링웜(곰팡이 피부염)까지 감염된 상태였고 부러진 송곳니는 나중에 발치해야 했지만,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가족이죠."
지난해 '한국 고양이의 날'을 기념해 열렸던 구조 고양이 사진전 '너라는 기적'. ⓒ야옹서가
고양이에 대한 애정으로 ‘고양이의 날’ 행사도 하고 계신다고요. 어떤 활동을 하는 행사인가요?

"거리에서 태어나고 죽는 고양이들의 삶은 집고양이에 비해 짧아요. 1년에 하루만이라도 주변 고양이들의 생명을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2009년 9월9일에 '한국 고양이의 날'을 만들었어요. 9월 9일이라는 날짜는 '고양이 목숨은 아홉 개'라는 민간속담처럼 강한 생명력을 뜻하는 '아홉 구(九)'와, 고양이가 주어진 삶만큼 온전히 오래 누리다 가길 비는 '오랠 구(久)'의 음을 따서 정한 날짜입니다. 이렇게 두 글자에 담긴 뜻이 모여 '구할 구(求)'의 의미를 담길 바랍니다.

고양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계몽적인 방식보다, 문화운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중 속으로 스며드는 편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양이가 주인공인 작품을 전시하고, 강연회나 영화 상영회를 열고, 기념 출판물을 만듭니다. 기념일을 만든 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이 행사를 매년 이어가겠다는 다짐입니다. 실제로 작년까지 통산 12회, 한 해도 빠짐없이 행사를 열었어요."
"고양이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책 만들 것"
요즘에도 길고양이 사진을 찍으러 거리를 돌아다니시나요?

"한참 취재에 재미를 붙였을 때는 일본의 고양이 섬이라든지, 타이완의 고양이 마을을 시간 내어 찾아가기도 했는데요. 코로나 여파로 외부 취재가 조심스러운 요즘은 일부러 출장을 다니기보다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고양이를 찍고 있어요. 올해는 바빠서 찍어두기만 했던 사진을 주제별로 정리하고 책으로 엮는 작업을 슬슬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다음에는 어떤 책을 만들고 싶으세요?

"'고양이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성묘 입양, 육아 육묘, 길고양이 이야기 등을 주로 기획해요. 또 전자책이 보편화된 시대에 종이책 소장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책이었으면 해서, 주로 시각적 요소가 강화된 책을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면 사진에세이, 그림에세이, 그림책, 만화책 등이요. 아마 앞으로도 야옹서가에서는 글만 있는 책은 나오지 않을 거예요.

올해 하반기에는 야옹서가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그림책 시리즈의 첫 권이 나옵니다. 제가 글을 쓰고, 그림작가를 섭외해 공저로 제작하는 방식이예요. 또 7월경에는 길고양이·유기묘 입양 만화를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할 예정이고, 11월에는 고양이를 그리는 한국화 작가 15명의 인터뷰집이 출간됩니다."
야옹서가의 책들. 고 대표는 "앞으로 반려인들은 단순히 귀엽고 예쁜 고양이 책보다, 내 고양이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책을 더 많이 찾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야옹서가를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나,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전시와 출판, 교육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동식물을 테마로 지역 내 '작은도서관'을 열어서 어린이들을 위한 생명교육도 하고, 고양이 작가님들의 전시도 열고, 글쓰기 수업도 진행해보고 싶어요. 모두 제가 경험해 왔던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해서요. 서울에 만들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고양고양이'의 도시 고양시에 그런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지역 내 유휴공간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고양이 책이 있을까요? 야옹서가의 책 1권, 그리고 다른 출판사의 책 1권씩 추천을 부탁드려요.

"야옹서가 책 중에서는 고양이 간병과 임종케어 노하우를 담은 만화 <괜찮아, 함께할 시간이 아직 있잖아>를 추천해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14살 고양이 모스케와 반려인 스즈키가 함께한 마지막 두 달간의 투병기를 스토리 만화로 풀어내면서, 약 먹이기, 식욕 돋우는 방법부터 노묘를 위한 인테리어, 임종 전후의 대처, 펫로스 극복에 이르기까지 실용적인 정보를 담은 만화책이예요.

다른 출판사의 책 중에서는 히구치 유코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책방>(북뱅크)를 추천할게요. 고양이가 운영하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책방의 판타지를 히구치 유코의 일러스트로 감상할 수 있어요. 저도 언젠가 이런 책방을 만들어보고 싶네요."

황지혜 기자 hwangj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