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철 입고 버리고…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시즌 신상' 안 만드는 패션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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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화점2021-06-16 16:3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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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오버랩’은 시즌마다 나오는 신상품을 완전히 없앴어요. 5년 뒤에 다시 찾아 오셔도 같은 제품을 사실 수 있을 겁니다.”

철마다 유행이 바뀌며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 그 중에서도 패션은 유달리 유행이 빠르게 바뀌는 분야다. 튼튼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보다 한 철 입고 버릴 수 있는 저렴한 옷을 만들어 자주 파는 것이 이득이기에, 패스트패션 브랜드(주문하면 바로 나오는 패스트푸드처럼 제작과 유통을 빠르게 하는 브랜드)들은 계절마다 신상품을 내놓는다. 

음식점으로 치면 회전율이 좋은 셈이지만 환경에는 당연히 좋지 않다. 많이 만들고 많이 버릴수록 제조공정에서 오염이 발생하고 쓰레기는 늘어난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을 따지면 약 7000리터. 이 정도면 4인 가족이 5일 정도 쓸 수 있는 양이다. 쓰레기와 탄소발생 문제도 만만치 않다. 환경부에 따르면 2008년 의류폐기물은 하루 평균 162톤 수준이었으나 2016년에는 259톤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이만큼의 의류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는 120톤에 달한다.
작년에 산 옷이 헌 옷 되는 '신상품의 굴레'
사진=오버랩
친환경 업사이클링 브랜드 ‘오버랩’을 이끄는 박정실 디자이너는 “우리는 시즌별 신상품을 출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잘라 말했다. 신상품 출시는 소비자의 관심을 꾸준히 잡아두기 위한 수단인데, 아무리 친환경을 지향한다고 해도 이익을 포기하는 모양새가 아닌가. 패러글라이더 천, 글램핑 텐트, 서핑 돛 등 버려지는 레저용품 재료를 이용해 가방을 만든다는 박 디자이너와 이메일로 대화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업사이클링 브랜드 오버랩 대표 겸 9년차 디자이너 박정실입니다. 원래 여성복 디자인을 하다가 업사이클링 디자인으로 분야를 바꾸게 되었어요.”

분야를 바꾸기로 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오랜 꿈이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꿈꾸던 일을 시작했는데, 정해진 시스템 속에서 트렌드를 좇으며 큰 고민 없이 빠르게 생산되는 옷들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뭐가 ‘아닌’지는 콕 집을 수 없었지만 과하게 화려했고, 과하게 가격 거품이 있는 게 불만스러웠던 것 같아요.”

스스로도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허무함을 느끼며 일하던 박 디자이너는 점차 디자이너의 본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제품을 예쁘게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패션 산업이 돌아가는 구조 전반을 봐야 하지 않겠냐는 의문이 마음 속에 떠올랐다. 

어디서 온 재료로 원단이 만들어지는지, 누가 어떤 환경에서 옷을 만드는지, 소비자는 옷을 얼마나 오래 입는지, 재고들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이 모든 과정들이 미래에 큰 책임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업사이클링’에 관심을 갖게 됐다.
사진=오버랩
버려지는 원단을 활용해서 만든 가방이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 브랜드 ‘프라이탁’을 떠올릴 것 같아요. 프라이탁 등 다른 업사이클 패션 브랜드 제품과 오버랩 제품은 어떻게 다른가요.

“보통 업사이클링, 친환경, 지속가능성 이런 단어는 그다지 재미가 없다는 이미지죠. 저도 그랬어요. 좋은 건 알겠는데, 하긴 해야겠는데, 거창하고 어렵고… 이런 편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액티비티(레저스포츠) 장비를 재활용해서 만드는 가방인 만큼 즐거운 기억들이 제품에 녹아있었으면 해요. 가격도 저렴하게 책정했고요. 마침 레저소재들은 무게도 가벼워서 데일리 가방으로 적합합니다. 방수포 한 종류를 사용하는 프라이탁과는 달리 오버랩은 ‘레저스포츠 소재’라는 카테고리에서 각 항목별로 특징을 분석하고 최적화된 디자인을 한다는 게 특징이에요.”

저도 패션을 좋아하지만 솔직히 패션과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양립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무리 친환경 제품이라도 영원히 쓸 수는 없으니 언젠가는 버리고 다시 사야 하고요. 다른 산업들도 그렇지만 특히 패션은 끊임없이 신상품을 내놓으면서 소비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분야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이런 딜레마에 대한 고민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기성 브랜드에서 일할 때 과생산과 과소비를 부추기는 시스템이 과연 필요할지 생각하게 됐어요. 친환경 브랜드라고 하면 소비를 부추기는 프로세스 자체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버랩은 시즌마다 나오는 신상품을 완전히 없애기로 했습니다.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신중하게 하나씩 추가하려고 해요. 과한 소비를 자극하지 않고 제품 자체에 집중하려고요. 5년 뒤, 10년 뒤에 다시 찾아와도 내가 샀던 제품이 단종되지 않고 더 업그레이드 돼서 그대로 있도록요.”
사진=오버랩
패러글라이더 원단 같은 소재는 왠지 튼튼하니까 오래오래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2년 정도밖에 못 쓰고 버려진다는 설명을 보고 놀랐습니다. 재활용되지 않은 소재들은 어떻게 처리되나요.
“패러글라이더는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지지만, 대체로 2년 정도 사용하다 보면 원단이 늘어나서 신축성이 생겨요. 신축성이 생기면 하늘에서 방향을 조절할 때 치명적이라 버려지게 됩니다. 글램핑텐트는 세탁하기 힘들어서 3년 정도 쓰면 버려지고요. 이런 장비들은 일반쓰레기와 똑같이 매립되거나 소각됩니다.”

제품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이냐고 묻자 박정실 디자이너는 ‘소재와 잘 어울리는 제품으로 만드는 것’과 ‘실용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충동구매한 다음 옷장에서 나오지 못 하는 제품이 아니라 매일매일 써서 닳을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새로 시도해보고 싶으신 작업이 있다면?
“지금은 레저스포츠 장비에서 패브릭(천) 부분만 사용하고 있어요. 장비를 해체하면 패브릭 말고도 뼈대 등 남는 부분이 꽤 되는데요. 플라스틱을 녹여서 가방 부자재를 만들거나, 이 재생 플라스틱으로 보드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가방이나 옷 등 패션 카테고리를 넘어서 ‘라이프스타일’ 제품들로 확장해 보고 싶어요.”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