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책 한 권 쓰고 100만원, 지금은 10배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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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화점2021-05-27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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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필작가 양성화가 목표" 임재균 대필작가협회 대표 인터뷰
“다양하고 독특한 인물과 함께 일했습니다. 대기업 회장 일가, 스타 목사, 연예인 같은 유명인사부터 사채업자, 구속 당한 정치인, 기업 비리 폭로자에... 반대로 글도 모르는 평범한 할머님까지요.”
12년 간 50권이 넘는 책을 출간한 임재균 작가(41)는 다른 사람의 이름 뒤에서 글을 쓰는 ‘대필작가’, 일명 유령 작가(ghost writer)다. 미국 등 서구권에서는 대필작가가 인정받는 직업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음지에 있다. 자신이 쓴 책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논문이나 공모작 대필 등 사회문제가 불거질 때는 불법적인 일이라는 비난도 받는다.

때문에 임 작가는 "대필작가의 양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협회도 개설했고, 대필작가라는 단어에 씌인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최근에는 개그맨 박명수 씨의 유튜브 채널 ‘할명수’에도 출연했다. "대필작가는 생각보다 유쾌한 직업"이라고 말하는 임 작가를 비대면 인터뷰로 만났다.
연봉 1000만원부터 월급 1000만원까지
임 작가는 자서전뿐 아니라 에세이, 기술전문서적, 칼럼, 자기소개서, 연애편지, 기업 신년사 등 다양한 글을 대필한다. 대필작가에게는 '특정 문야 전문'이라는 것이 없다고. 출처 임재균 작가 제공
임 작가가 전업 대필작가로 일하기 시작한 건 30세 때. 그 전까지는 말그대로 ‘갖가지 일’을 경험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높은 취업 문턱에 막혀 막노동, 컨설팅회사, 무역회사, 영어학원 등 다양한 직장에서 일했다. 그렇게 20대를 보내던 임 작가는 “월급과 주말만 기다리는 회사원 말고 내가 잘하는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 문단 작가가 아닌 대필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회사원이 아닌 전문직으로 나만의 독창적인 분야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 것이 ‘대필작가’였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대필이 항상 전문적인 분야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부심도 있습니다.

또 많은 등단작가들을 만났었는데 대부분 생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저당잡히면서 꿈을 이루는 건 제게 무리였던 것 같아요. 현실적인 부분을 직시한 거죠."
이것도 직업병인 걸까. “간단한 프로필을 알려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책 저자 소개에서 본 듯한 답변이 돌아왔다. ⓒ잡화점
- 대필작가에 대한 편견은 ‘받아 쓰는 작가’라는 것인데요.

"단순히 받아 적으면 100% 망합니다. 받아 적는 건 요즘 기술이 좋아져 구글이 더 잘합니다. 대필 작가는 사람의 감정과 뉘앙스를 포착해 목차를 정하고 구조화한 후 읽고 싶은 이야기로 만드는 작업을 해줍니다. 기획자와 작가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거죠. 이건 구글보다 인간이 더 뛰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인공지능 특이점이 도래해도, 대필작가가 더 독창적인 직업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필은 원저자가 말하는 걸 그대로 받아 적으면 뚝딱 끝나는 작업이 아니다. 인터뷰와 자료 분석을 포함해 한 권의 책을 대필하는데 2~4개월 정도가 걸린다. 때에 따라 6개월~1년이 소요되는 의뢰도 있다. 임 작가는 원고료가 적던 초창기, 생계를 위해 3~4개월동안 2~3권씩 대필한 경험이 있다며 "퀄리티를 맞추려면 잠을 줄여야 해 건강에 문제가 생기더라"고 덧붙였다.

- 원고료는 보통 얼마나 되나요. 작가 분들 마다 편차가 클 것 같아요.


"대필 작가는 글이 곧 수입으로 바뀌는 집필을 하기 때문에 수입 편차가 매우 큽니다. 초보의 경우 연봉 1,000만원 이하가 될 수도 있고요. 경력이 쌓이면 월 1,000만원 이상 벌기도 합니다. 저 역시 초창기에는 책 한 권에 100~120만 원을 받았습니다. 원고료라기 보다는 수고비에 가까운 돈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약10배 정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라 의지와 지구력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 계약을 많이 했다고 내년에도 많을 거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글쓰기를 주업으로 하는 1인기업 혹은 지식자영업자라고 할까요."
대필작가의 책상. 출처 임재균 작가 제공
- 기억에 남는 대필 작업이나 특이한 대필 의뢰가 있었을까요?

"대필 작업은 대부분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죠.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필은 캐나다 이민 1세대 한인 사업가의 자서전이었습니다. 빈 손으로 캐나다로 떠나 막노동부터 시작해 북미 시장에 중견 기업을 창업한 분인데요. 당시 일기, 사진 등의 자료를 꼼꼼히 살피고, 캐나다 시각에 맞춰 새벽 2시 인터뷰를 수 개월간 진행해 책을 썼습니다.

이 분이 인상적이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이 분 이야기는 MSG(일부러 꾸미는 이야기)가 필요 없었습니다. 또한 대필 작가인 저를 매우 인격적으로, 전문 작가로 대해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보통 하대하는 것이 일반적 정서였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대필작가의 이름을 빼고 심하면 원고료까지 떼먹던 그 시절에, 정해진 기일에 맞춰 원고료를 정확히 보내주고 대필 작가인 제 이름을 스스럼없이 책에 넣어 줬습니다.

나중에 제가 물었어요. 이렇게 이름을 넣어도 되는지, 그리고 왜 원고료를 안 깎는지 말이죠.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죠.

“미국에서는 다 계약서 대로 이렇게 하는기라! 한국이 이상한기다. 일시켜뿔고 계약대로 돈도 안 주는게 한국사람들 특기인기라, 내도 사업하며 많이 당했다!”

이분을 통해서 서구의 선진 대필 문화를 접하고, 협회 차원에서 불공정관행들을 개선하는 동기로 작용했습니다."
박명수 책 대필? 편견 깨려 던진 '무리수'
임재균 작가는 '할명수' 채널에 출연해 박명수 씨의 어록을 기반으로 한 자기계발서 <남보다 나>를 대필했다. 출처 유튜브 채널 '할명수' 캡처
- 얼마전 유튜브 ‘할명수’ 채널에 출연해 개그맨 박명수 씨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에피소드가 화제였어요.

"사실 예능에 출연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말주변도 없고 보여드릴 것도 없으니까요.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동안 미디어에서 인터뷰했던 것이 전부다 어두운 내용이었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이 참에 대필작가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어 무리수(?)를 두어 출연하게 됐습니다. 대필작가는 생각보다 명랑하고 즐겁고 유쾌한 직업입니다."

- 방송에서 “히트작이 없으면 대필작가”라는 농담을 하셨는데요. 짧은 해명을 부탁드립니다.ㅎㅎ


"해명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말 때문에 돌을 많이 맞았습니다. 예능이라 웃자고 한 말입니다. 히트작이 없는 사람은 저 밖에 없습니다. 협회에는 베스트셀러 작가나 등단작가들도 계시지만 생계문제 때문에 대필을 할 뿐입니다."
원고료 후려치기가 기본... 불공정계약 여전
임재균 작가 제공
임 작가는 “대필 시장은 무한 확장하고 있다 ”고 자신한다. 과거에는 시중에 출판되는 책 10권 중 6~7권이 대필 작업을 거친다고 했지만, 지금은 종이 책이 아닌 범위까지 대필의 영역이 넓어졌다. 하다못해 인터넷 기업 페이지에 올리는 소개글도 대필작가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필작가의 이름은 표지에 실리지 못한다.

- 대필 작가의 이름은 여전히 책에 실리지 못하는 것 같은데요. 이유가 뭘까요?

"한국 특유의 체면 문화 때문입니다. 북미권도, 유럽권도 대필작가는 모두 엄연한 전문직으로 원저자와 함께 이름에 실립니다. 하지만 한국은 대필이라는 단어자체에서 오는 부정적 이미지, 미심쩍음 때문에 체면 구김이 발생할까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간혹 ‘기획자’로 이름이 들어가기도 합니다만 대필작가라는 명칭으로 들어가진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편입니다. 대필문화는 점차 양성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죠."

- ‘대필’의 부정적인 이미지 이야기가 나와서 인데요. 과거에 “대필작가를 범죄자로 보는 시선도 많았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은 그런 시선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시대를 잘 만난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직업을 대필작가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미디어에도 당당히 얼굴을 드러냈고요. (그런 모습에) 다른 대필작가분들이 용기를 내줘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해줍니다. 물론 반대로 욕도 많이 먹습니다. 지금은 대필작가가 직업으로서 정착되는 과도기적인 시점이니까요"

- 일부 불법적인 대필 작업들이 보도되면서 안 좋은 시선을 받은 것 같은데요. 작가님도 그런 제안을 받은 적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불법 대필은 논문, 법률, 공모전 대필 등 다양합니다. 저도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못한다고 거절합니다. 솔직히 그런 분야를 대필할 능력이 없을뿐더러, 법적 규제도 엄격합니다. 법률문서대필은 변호사법위반, 논문은 업무방해죄등에 해당됩니다. 협회 내에서는 논문, 사업계획서, 법률문서 대필은 아예 못하도록 못 박았습니다."

- 대필작가가 직업으로 정착되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아직도 집필 과정에서 불합리한 일들이 있을 것 같아요.

"가장 대표적으로 원고료 후려치기가 기본입니다. 실제로 협회에 원고료 지급 문제로 소송 중인 작가님도 계십니다. 어떤 정치인은 보좌관, 비서관으로 채용해 줄 것처럼 일을 시켜놓고, 선거 뒤 모르쇠로 일관하며 원고비용조차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여성 작가의 경우 남성 의뢰자로부터 인터뷰를 빌미로 한 술자리 동석 요구도 빈번합니다. 황당하지만 자신의 집에 머물면서 글을 써달라는 상식 이하의 제안도 들어옵니다. 사안이 심각하죠."
'청와대' 진출이 최종 목표
임재균 작가 제공
대필작가가 감수해 온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계약과 관행들 때문에 임 작가는 2015년 ‘대필작가협회’를 만들었다. 대필작가라는 직업을 양성화하고 대필 작업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편견들을 없애기 위해서다. 현재 소속 작가는 약 500여 명으로 문단 작가는 물론 번역, 시나리오, 웹소설, 방송 분야 작가들도 전업 혹은 부업 대필작가로 일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베스트셀러를 출간했던 작가도 있다.

- 대필작가 양성화, 표준화를 위해 협회를 만드셨다고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처음에는 불공정문제를 주로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힘이 너무 부족해서 도와주시는 변호사, 노무사께도 죄송하더군요. 지금은 한국예술인재단으로 해당 업무를 이관해 큰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양성화의 핵심은 계약서, 세금입니다. 과거 대필은 대부분 현금으로 주고 받는게 관행이었는데 저는 사업자등록을 다하고 세금도 냈습니다. 세금계산서도 발행해줬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일 같지만, 당시 정서로는 이해 안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표준화는 지금도 고민합니다. 변호사 자문을 받아 대필에 대한 대필작가협회의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고, 민간자격증 등록도 하였습니다. 작업 결과와 수준의 표준화는 불가능하므로 대필 절차와 계약 절차의 표준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의 마지막.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 임재균 작가, 아니 임재균 대필작가협회 대표는 세 가지를 꼽았다. 첫 째는 협회의 해외 지부 설립이다. 그는 해외 대필 작가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국내에 비해 선진적인 북미, 유럽권의 대필 문화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또 협회 소속 작가들을 위한 1인 작업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도 있다. 7년간 사무실 없이 집과 도서관을 돌아다녔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작업 공간의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 번 째 목표를 묻자 그는 “청와대까지 가겠다”고 했다.
제 목표는 ‘청와대’까지 진출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 자서전 집필 작가를 최고의 작가로 여깁니다.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실력과 합법성, 콘텐츠에 대한 전문성과 영향력을 계속 쌓아가고 있습니다.
황지혜 기자 hwangj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