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부업'" 1억8천 모금한 96년생 한복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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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화점2021-03-12 14: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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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취미라고 하기엔 인생을 쏟아 부은 것 같아요. ㅎㅎ
원단 유통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김하늘 씨는 최근 펀딩 플랫폼에서 1억8000만원짜리 ‘한복 잭팟’을 터뜨렸다. 한복 판매 첫 도전에서 장저고리 제작 프로젝트로 1억8200만원이 넘는 금액을 모은 것. 그야말로 요즘 세대가 만든, 요즘 세대가 좋아하는 한복이다.

앳된 얼굴로 “한복에 인생을 쏟아 부었다”며 웃는 그는 현재 원단 유통 스타트업에 근무 중인 26세 여성이다. 아직 젊은 나이의 김 씨가 이미 성공한 한복 디자이너냐고 묻는다면 답은 No가 아니라 Not yet에 가깝다. 직장인 김하늘로 출근을 하고 ‘청현’이라는 이름으로 한복 디자이너에 도전하는 그를 이메일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직장은 '부업', 한복은 '본업이자 인생'
- 언제부터 한복 디자이너를 꿈꾸셨나요?

"원래는 중학교 졸업 이후 바로 대학에 갈 생각이어서 검정고시를 보고 고등학교 과정을 패스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고교 검정고시를 합격하니 진로에 대한 고민이 생겼어요."

청현 디자이너는 한복 디자이너의 꿈을 꾸기 전 미술을 공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입시를 준비하며 점점 미술이 자신의 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들었다고. 미술에서 눈을 살짝 돌렸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한복이었다.
어릴 때부터 패션과 역사를 좋아했어요. 그 두 가지를 더하니 한복이더라고요.
청현 제공
중학교 졸업 후 검정고시를 통해 고교 졸업장을 땄을 때가 17살. 대학 입학을 미룬 그는 "일단 패션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며 대학 진학 대신 의류 매장 아르바이트를 택했다. 가장 기초가 되는 판매부터 배워보겠다는 생각이었다.

- 쇼핑몰 CS부터 MD, 디자이너, 동대문 의류 도매, 원단 유통까지. 패션 업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17살 때 아르바이트했던 의류 매장에서부터 시작했어요. 꿈을 이루려면 밑바닥부터 시작해야한다고 하잖아요. 가장 기초적인 판매부터 배워보려 했죠.

그 다음부터는 그저 물흐르 듯 계단을 밟아가는 과정이었어요. 매장에서 일을 해봤으니 다음은 옷을 파는 회사에 들어가서 운영체제를 봐야겠더라고요. 고객을 관리하는 CS부터 배워서 다음 단계로 상품을 기획하는 MD가 됐죠. MD일을 하다 보니 동대문의 도매 거래처와 자주 연락을 하게 됐고, 그 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도매 시장은 어떻게 돌아가나 궁금해져 도매 시장에서 일했어요. 그 다음으로는 그 많은 옷들의 탄생 과정을 알기 위해 생산에 관여하는 디자이너도 해보고요.

지금은 한국 원단을 해외 브랜드로 유통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편인데, 스와치(원단 샘플)를 만지는 업무를 하고 있어 원단에 대한 이해도를 늘릴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 그럼 한복 공부를 제대로 시작한 건 언제였나요?


"19살에 배화여자대학교 전통의상과에 입학했습니다. 한복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대학교를 찾아봤는데 전국에서 유일한 한복 학과라고해서 고민 없이 지원했어요.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배우기 전엔 디자인 스케치를 많이 했어요. 할 수 있는 게 그 것 밖에 없었거든요. 그 때 해 둔 디자인들은 창의력이 떨어진다 싶을 때 종종 참고 자료가 됐어요."

매장 아르바이트로 패션 업계에 발을 들인 청현 디자이너는 19세가 되던 해에 대학에 진학해 한복을 공부했다. 하지만 졸업 후에는 계속 한복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일반 패션 관련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 전부 한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직장는 아니네요? 한복 제작은 '취미'라고 봐야할까요.

"취미라고 하기엔 한복에 인생을 너무 쏟아 부은 것 같아요(웃음). 한복은 진로로 선택한 이후부터 언제나 제 본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일한 직장들은 본업을 먹여 살리기 위한 부업이었어요. 계속 한복을 공부하고 만들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니까요."

아직 20대인데 '인생'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있느냐는 다소 꼰대스러운 기자의 질문에 청현 디자이너는 "아직 젊은 건 맞지만 한복에 꽂힌 덕분에 공부하고, 패션 회사에서 일도 배우고, 판매에도 도전하고 있다. 한복으로 인해 나의 인생 10년이 만들어 졌다"고 덧붙였다.

- 부업인 직장과 본업인 한복 제작을 병행하기 힘들진 않으신가요.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솔직히 회사가 끝나고 무언가를 한다는 건 정말 많은 정신적, 체력적인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그렇지만 힘들어서 안 한다는 건 제 인생을 포기한다는 것과 똑같기에 느리더라도 한 벌 한 벌 꾸준히 만들어왔어요. 또 일이 너무 힘들어서 한복 제작을 전혀 할 수 없다면 그 일을 그만뒀어요. 제 본업은 한복인데 부업이 본업을 방해해서는 안 되니까요.

하루 일과는 보통 새벽이나 아침 일찍 시작해요. 퇴근 후에는 숟가락 드는 것도 힘들잖아요. 그래서 가장 정신이 맑은 아침을 활용하는 편이에요. 일이 적은가 많은가에 따라 새벽 3~4시에 일어날 때도 있고, 늦어도 6시에는 일어나서 한복 작업을 해요. 생각해둔 디자인을 스케치하거나 원단을 고르는 등의 간단한 일을 해두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본격적인 작업은 주말을 통째로 갈아 넣습니다."
청현 디자이너는 펀딩 플랫폼에 '전통한복 그대로, 어디에나 입기 좋은 오버핏 장저고리' 프로젝트를 오픈했다. 출처 청현 텀블러
그는 ‘한복디자이너 청현이라고 부르면 되느냐’는 질문에 “부끄럽다”고 대답하면서도 “한복 제작을 취미라고 말하긴 힘들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 청현 디자이너가 한복에 애정을 갖고 목표를 갖게 된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한복이 예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저 어릴 때는 볼레로 스타일의 한복이 굉장히 유행이었는데 (제 눈에는) 그게 그렇게 싫더라구요. 전통 한복은 정말 예쁜데… 발끈 하는 마음에 내가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얼마전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인터뷰를 봤다는 청현 디자이너는 “까칠하고 민감한 지점, 감탄과 어이없음이 공존하는 분야가 자신의 적성”이라는 인터뷰 내용에 공감했다고 했다. 자신이 보았던 현대식 한복이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한복을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의미다. 그 때문일까? 청현 디자이너는 한복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으로 “한복다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복다운 한복을 만들고 싶다"
- 한복을 만들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한복다울 것. 그것 딱 하나만 신경 써요. 완성이 되었을 때 전체적인 실루엣이 누가 봐도 한복이었으면 해서 무분별한 변형이나 응용은 지양하고 있어요. 깃이나 팔자주름, 혹은 입는 순서 같은 뼈대 포인트를 잡고 이후에 최대한 한복의 기본 실루엣 안에서 디자인을 움직여요."

그는 ‘한복’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수많은 의복 종류가 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변화하기도 했지만 크게 변하지 않은 공통 요소가 ‘동정과 깃’ 같다고 말했다.

- 최근 판매되는 현대식 생활한복 중에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깃을 낮추거나 동정을 생략한 옷이 많은 것 같은데요. 청현 님의 저고리는 오히려 깃과 동정이 포인트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동정이 있으면 더욱 한복 같으니까 부담스러움을 줄이기 위해 생략하는 거겠죠. 저도 '너무 한복 같아서 동정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문의를 종종 받아요. (단순한) 깃 형태는 이웃 국가의 전통의상에도 있는 요소입니다. 저는 한복을 차별화할 수 있는 진정한 요소가 동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외면 받는 게 조금 안타까워요. 높은 깃이 불편하다는 건 아웃 라인만 보고 생긴 편견 같아요. 높은 깃이 정말로 불편했다면 오랜 역사 동안 계속 입어왔을 리 없고 진작에 낮은 깃으로 변형되었을 거에요."
출처청현 텀블러
한복으로 1억8000만원 펀딩.. "데일리 코디 제시한 덕"
-평소 생활하실 때도 한복을 입으시나요?

"자주 입지는 않지만 직접 만든 두루마기 원피스 한 벌은 편해서 종종 입어요. 대학생 때는 공강 시간에 한복 원단으로 두루마기를 만들어 캠퍼스에서 입고 다니곤 했어요. 어느 날 교양수업에 들어갔는데 타과 학생들이 한복입고 다니는 사람 봤냐고 하더라구요.(웃음) 그게 저였는데…

최근 시도하는 일상 한복은 오히려 이런 에피소드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게 목표예요. 정말 일상복이라면 사람들의 이목을 너무 끌어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한복을 일상복처럼 멋스럽게 입을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팁이라면 한복을 그냥 평범한 아이템으로 대하는거에요. 본인의 코디 스타일을 살펴보고, 셔츠를 자주 입는다면 셔츠 대용으로 입어보거나 아우터 걸치는 걸 좋아한다면 아우터 대용으로 입어 보기도 하고. 한복에 스타일을 맞추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에서 아이템 하나 대체한다는 마음으로 입어보는 걸 추천해요.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아이템들과 매치한다면 훨씬 자연스럽고 잘 어울리는 착장이 될거에요."
다양한 일상복과 매치한 장저고리. 청현 디자이너는 일상에서 한복을 멋스럽게 입는 방법으로 "한복을 그냥 평범한 아이템으로 대하라"고 조언했다. 출처청현 텀블벅 페이지
- 최근 마감한 크라우드 펀딩 아이템 역시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장저고리였죠. 달성률 36561%, 1억8280만원 넘는 금액이 모였어요. 호응을 얻은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한복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정말 많다는 게 이유겠죠. 많은 분들이 한복을 찾아주셔서 정말 기뻐요. 그리고 또 하나, 한복의 활용성을 다양한 코디와 함께 제시했기 때문에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제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찾아와 주시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옷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의상이 마음에 든다는 말만큼 기쁜 말이 없는데 요즘은 그 좋아하는 말을 잔뜩 듣고 있어요.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서도 응원과 도움을 받기도 하구요. 정말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 펀딩 페이지에 "일련의 사건들로 전통은 즐기지 않으면 빼앗길 수도 있음을 실감했다"고 설명하셨는데요.


"중국 사극에서 한복이 중국의 옷으로 등장하고, SNS에서는 한복이 중국의 것이라 말하고 다니며, 중국의 댄스 예능 프로에서는 무대의상으로 한복을 입은 채 아리랑을 부르고, 게임에서 한복이 중국 옷으로 등장해서 항의를 하자 되려 한국 서비스를 중단하기도 했죠.

우리가 잃어버리는 물건은 보통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에요. 없어졌는지 아직 거기에 있는지 신경조차 쓰이지 않죠. 찾지 않는 물건은 주인도 모르게 사라져요. 문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찾지 않고 쓰지 않으면 안 보는 사이 누가 몰래 가져가거나 사라지는 거죠."

기자가 ‘요즘에는 설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도 한복을 입는 사람이 적어졌다’고 말하자 청현 디자이너는 영화 '파운더' 속 ‘공급을 해야 수요가 생긴다’는 대사를 언급했다.
전통을 즐기지 않는 분위기보다는, 공급을 다시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부족하다는 게 아쉽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한복 보여드리는 게 꿈"
청현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한 아디다스, 도미노피자 컨셉의 한복. 컨셉 한복 역시 패턴, 바느질 순서, 제작 방식 등을 전통 방식으로 만든다. 도미노피자 컨셉 한복의 색조합 또한 전통 양식이라는 설명이다. 출처쳥현 인스타그램, 유튜브.
- 운영 중이신 유튜브도 봤어요. 일상복인 장저고리 외에 특이한 컨셉의 한복들도 만드시네요.

"판매할 수 있는 일상 한복 제작을 본업이라고 한다면 컨셉한복은 취미활동에 가깝습니다. 무엇을 보든 언제나 한복으로 구현하면 어떨지 상상해보는데, 컨셉이 있다면 좀 더 즐거워요. 거짓말 같겠지만 아침에 눈 떠서 밤에 눈 감기 직전까지 시선을 끄는 형태나 색감을 무조건 한복으로 디자인하면 어떨지 상상해요. 주제가 명확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디자인을 설득시키기도 쉽고 구상하는 과정도 재미있어요.

다만 직장생활을 병행하기 때문에 한정적인 시간과 재화의 제한이 있어요. 그래서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한복이 너무나 많네요."

-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어서 새로운 다음 의상을 보여드리는 것! 몇 년 동안 수 없이 쌓아온 정말 많은 한복 디자인이 준비되어 있어요. 이번을 스타트 삼아 속도를 내서 더 빨리, 더 많이 보여드리는게 목표입니다. 사람들이 필요한 한복을 만들고 싶고, 제가 세상 다양한 것들에서 감명을 받았듯이 많은 분들 또한 제 한복을 통해 새로운 자극과 감명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한복은 제가 저를 세상에 표현하는 창작의 수단이에요. 한복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세상에 저를 표현하지 않겠다는 거겠죠? 그 날은 제가 죽는 날이 될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계속 할 계획입니다."

황지혜 기자 hwangj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