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에 호주행, 오자마자 지갑 털려 ‘국제거지’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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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p2021-03-03 09: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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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나이에 나름대로 큰 포부를 안고 호주 땅을 밟았다. 어머니가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주신 금목걸이를 팔아 비행기 표값을 마련했지만 호주에 도착하지마자 지갑을 도둑맞았고, 한동안 씻지도 못 하고 노숙하며 지내야 했다.

스카이 다이빙 회사 ‘1300SKYDIVE’ 선샤인코스트 지점 운영을 맡고 있는 백은성 스카이다이빙 교관의 과거 이야기다. 차 탈 돈이 없어 이틀 동안 걸어서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던 백 씨는 현재 호주에서 유일한 한인 스카이다이빙 교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재산 도둑맞고 노숙 시작
한국에서 요리업계에 종사하던 백은성 씨. 세계요리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미국 하와이 힐튼호텔에서도 일했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은 쉐프였으나 하루하루 퇴근만 기다리며 사는 삶에 점점 마음이 허전해졌다. 열심히 일해도 통장 잔고는 늘지 않았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백 씨는 2011년 3월 스물아홉 살 나이에 도전정신 하나만 가지고 호주로 향했다. 영어를 거의 못 하는 상태였지만 제2의 인생을 개척하려는 포부만은 넘쳤다. 하지만 일은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전재산이 든 지갑을 도둑맞아 ‘국제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진=Working on Air
“시드니 하이드파크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고 길거리를 배회하며 지냈습니다. 절망감에 한 순간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어요. 유서를 메신저로 보내놓고, 신발도 가지런히 벗어놓고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물이 너무 차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금방 다시 헤엄쳐 나왔습니다.”

그렇게 6주쯤 노숙자 생활을 하다, 실버워터의 한 물류창고에서 단기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꼬박 이틀 정도를 걸어갔다.

한 달 넘게 노숙생활을 했으니 몰골도 말이 아니었고 씻지 못 해 냄새도 지독했다. 물류창고 내 샤워시설에서 오랜만에 몸을 씻고 나오자 희망이 생겼다. 호주에서 처음으로 돈을 벌게 된 것이라 생각하니 저절로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됐다고. 그 노력을 인정받아 알바생에서 직원이 되었다.

이후 멜론농장에서 일하며 지게차 자격증을 땄다. 면허 덕에 과일 유통업계에서도 일할 수 있게 됐다. 생활이 안정되자 비로소 호주라는 땅 자체에도 눈길이 갔다. 곳곳을 여행하다가 스카이다이빙이라는 취미와 만나게 됐고, 한국인 스카이다이빙 교관(현재는 한국으로 돌아갔다)과의 만남을 계기로 ‘혹시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1000번의 점프, 모든 것을 걸었다
“교관이 되려면 1000번 이상 스카이다이빙을 해야 해요. 이렇게 교육받고 수련하려면 상당한 금액이 듭니다. 대학교 학비보다 많이 들어요. 학생비자를 유지해야 했기에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새벽부터 일하고, 또 훈련하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500번 이상 뛰면 ‘AFF 강사 자격증’을 딸 수 있어요. 이 때쯤 적성과 맞지 않아서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카이다이빙은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만 지도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체험자에게 심리적인 안정감까지 줘야 하기에 소통도 상당히 중요하다. 영어가 능통하지 않았던 백 씨는 강의 스크립트를 준비해서 외우고 또 외웠다. 돈을 벌고 학교도 다니며 열심히 하늘을 날다 보니 4년이 흘렀고, 드디어 ‘교관’이 됐다.
"계속해서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스카이다이빙을 전문적으로 배우면서 학교도 다니려면 상당한 돈이 필요했다. 백 씨는 ‘기왕이면 다이빙장에서 일하면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버스운전면허증을 따서 운전 일을 시작했다. 하루4시간 정도 손님 픽업장소와 다이빙장을 왕복하며 운전했는데 보수가 상당히 좋았다고.

“일하는 것에 비해서 돈을 많이 받는 것 같아 회사에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쓰레기통도 비우고 청소도 했습니다. 제가 알아서 한인 웹사이트에 광고를 올려 손님을 데려오기도 했고요. 점점 한인 고객들이 많이 늘어났고 고객 관리하는 과정에서 회계 등 전반적인 업무도 알게 됐습니다.”

자발적으로 일하는 백 씨를 눈여겨 본 사장은 2017년 선샤인코스트 다이빙 지점을 그에게 맡겼다. 이제는 리셉션 담당, 버스기사, 파일럿, 스카이다이빙 교관 등 20명 가량이 그와 함께 일하고 있다.

전재산을 도둑맞고 두 달 가까이 노숙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큰 성공을 거둔 셈이지만 백 씨의 ‘기회 만들기’는 계속됐다. 우연히 한 사이트에서 영화제작 스태프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 것.
그렇게 백 씨의 ‘호주 인생 이야기’를 담은 단편영화 ‘워킹 온 에어(Working on Air)’가 탄생했다. 영화는 미국 제7회 유니버스 멀티컬처럴 필름 페스티벌 경쟁작, 한국 제4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경쟁작 부문에 올랐으며, 미국 2019 써니싸이드업 필름 페스티벌에서는 베스트 촬영(cinematography), 베스트 포스터 상을 수상했다.

“익숙한 요리 일을 할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서 택한 이 호주에서 또다시 같은 일을 하기보다는 다른 길을 개척하고 싶었어요.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도전들이었지만, 하늘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희망이 느껴집니다.”

양다영 기자 yang@hanhodaily.com
호주대표 한인 모바일 앱, 아이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