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씩 7일 동안 세상에 없던 버터를 개발한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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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STREET2020-09-17 17: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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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외길 15년을 걸어온 요리연구가도 7일 밤낮을 꼴딱 지새워 만들었다는 버터가 있다. 이름도 생소한 ‘블렌딩 버터’. 해외에선 ‘컴파운드 버터’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외국에선 셰프들이 버터에 자신이 배합한 여러 향신료를 넣고 잘 섞어 요리할 때마다 사용한다. 그냥 일반 버터에 허브 좀 넣고 주걱으로 섞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 만들기도 까다롭고 보관은 더욱 까다로운 버터라고.

이런 블렌딩 버터를 분자구조부터 보관 온도까지 연구해 만들어낸 남매가 있다. 가락몰 먹거리 창업센터에 입정해 있는 식품 스타트업 ‘요리노리’의 박정수, 박지영 남매다. ‘셰프의 요리는 무엇이 다를까? 간단하게 다양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면?’이라는 궁금증으로 시작해 분자구조까지 연구하게 된 ‘요리노리’ 박정수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사진 = '요리노리' 제공
남매가 사업을 하면 어떨까?
Q. 남매가 함께하는 사업이라니… 공과 사 구분이 잘 되나요? 

동생(박지영 공동대표)과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에도 두 가지 사업을 진행했어요. 그때 여러 대표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개발과 마케팅이 따로 진행되며 겪는 불화가 많다는 거예요. 저희 같은 경우엔 동생이 15년 이상 요리를 연구해 온 경험을 기반으로 제품의 맛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저는 맛에 있어선 소비자 측면에서 피드백을 주는 정도일 뿐이에요. 그 외에 마케팅을 제가 담당합니다. 영상이나 사진 같은 콘텐츠를 만들죠. 공과 사의 구분이 없이 일할 때도 있지만, 급하게 처리할 일들이 생기면 어떤 시간에도 일을 진행시킬 수 있어요. 이건 아무리 가족같은 회사라고 해도 힘든 일이죠. 저희는 회사 자체가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Q. 사업 아이템으로 블렌딩 버터를 선정한 이유가 있나요? 

저희가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건 [요리노리 제품을 사용하면 셰프 요리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입니다. 100만 뷰를 넘은 스테이크 조리법 영상 같은 경우에도 셰프가 마지막에 버터를 넣고 밑에 허브를 깔아요. 래스팅 과정(구운 고기를 실온에 두어 육즙이 다시 고르게 퍼지게 하는 것)에서 고기 안에 허브의 향과 버터의 풍미를 깊게 입히는 거죠. 이런 과정을 거친 후 맛을 보면 유명 스테이크 전문점과 같은 맛이 나요. 일반 한식 요리와 달리 스테이크 경우는 ‘이건 뭔가 다른데. 고급스러운데.’ 하는 맛을 결정짓는 요소가 이런 과정입니다.
이를 위해 소비자들이 스스로 컴파운드 버터를 만들 수 있겠죠. 그런데 솔직히 집에서 스테이크를 얼마나 자주 해 먹는다고 허브랑 향신료를 전부 사놓겠어요. 버터 유화해서 재료들 섞고 다시 냉동 시키는 과정은 또 어떻고요. ‘우리가 직접 최적의 맛을 개발하고 제품으로 만들면 소비자들이 간단하고 맛있게 음식을 즐길 수 있겠다.’ 그렇게 출발하게 됐어요.
박정수 대표는 가장 기본이 되는 원재료인 버터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고 전했다. 이미 많은 소비자들이 좋은 버터를 선별해 사용하고 있는데 제품을 만들면서 아무 버터나 사용할 순 없었다고. 고급으로 알려진 프랑스산 고메 버터를 기본으로 제품을 만든다고 한다. 현재 개발을 완료해 판매 중인 블렌딩 버터는 '갈릭 허브 버터', '토마토 허브 버터', '메이플 시나몬 버터'다. 
그냥 섞는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Q. 세 가지 맛을 개발하는 게 쉽진 않았다고 들었어요. 박지영 대표가 7일 밤을 새웠다던데.

블렌딩 버터를 만드는 과정은 버터에 각종 재료를 넣고 섞는 겁니다. 굉장히 간단해 보이는데 주의할 점은 버터를 크림화할 때 온도를 너무 높이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는 거예요. 온도가 높아 수분이 분리되면 분자구조가 망가지면서 다시 굳지 않거든요. 최적의 온도가 어디인지 블렌딩 후 다시 고체화하기 위한 온도는 어디인지 많은 연구를 거쳤습니다. 원물들마다 보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냉동하는 온도도 다르거든요. 토마토 버터 같은 경우엔 영하 10도, 다른 버터 같은 경우는 영하 7도 까지는 내려가야 합니다. 이렇다 보니 냉동고마다 설정 온도가 달라요. 이걸 개발하기 위해 동생이 밤을 일주일 정도 지새웠죠.

Q. 온도가 그렇게 중요하다니 배송도 만만치 않겠는데요?

다행히 저희 공방 근처에 드라이아이스 업체가 있어요. 매일 새로운 드라이아이스를 받아서 배송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배송할 때 사용되는 얼음팩보다 더 많이 넣어서 배송합니다. 드라이아이스도 큰 걸 넣고 펠렛 드라이아이스도 더 추가하고 있고요. 추후에는 아예 냉장 배송할 수 있는 콜드 체인을 활용해 배송 가능하게 계획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배송 관련으로 컴플레인을 받은 부분은 다행스럽게도 없었습니다.

Q. 다른 버터에 비해 유통기한이 짧은 것도 제조 과정 때문인가요?

천연 재료만 사용해 만들다 보니 버터 자체의 유통기한은 조금 짧아요. 그런데 버터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받자마자 소비를 하시더라고요. 블렌딩 버터다 보니, 빵에 바로 발라서 드시기도 하고 고기 구울 때 바로 버터를 추가하기도 하고요. 한 번에 쓸 만큼인 20g씩 3개로 나누어져 있으니 바로바로 소비할 수 있는 거죠. 
이건 여담인데 저희가 처음에 론칭 한 상품인 ‘블렌딩 소금’을 구매한 분이 패키지가 예뻐서 관상용으로 그냥 둔다는 말을 했어요. 그만큼 패키징이 예쁘다는 걸 칭찬하신 거죠. 근데 전 그 말이 굉장히 가슴 아팠어요. 저랑 동생은 소비자분들이 맛있는 음식에 많이 활용하셔서 맛있을 때 빠르게 드셨으면 좋겠는데 진열만 하고 안 드시니까… 버터는 소금보다 빠르게 소비하셔서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됩니다. (웃음)

Q. 20g은 어떤 기준으로 정한 거죠?

소비자분들이 저희 버터를 받아보고 가장 손쉽게 먹어볼 방법은 빵 위에 스프레드해 먹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베이글 한 쪽에 충분히 발랐을 때가 20g이었습니다. 스테이크 1인분을 구울 때는 반 정도만 사용해도 좋습니다. 나중엔 정기 구독 서비스도 론칭할 계획입니다. 버터 소진 시기에 맞춰서 신선한 블렌딩 버터를 보내드리는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어요.

사진 = '요리노리' 제공
Q. 직접 만드셨으니 활용 방법도 제일 잘 아시겠죠. 버터별 맞춤 요리는 무엇일까요?

갈릭 허브 버터는 개발 단계부터 스테이크를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스테이크 굽기의 마지막 단계에서 요리노리 갈릭 허브 버터를 넣어서 풍미를 더하는. 그게 가장 큰 개발 목표였습니다. 빵에 발라서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에 돌리면 시중에 파는 마늘빵이랑 거의 똑같은 맛이 나기도 합니다. (웃음)
토마토 버터는 에그 스크램블과 같은 달걀 요리에 넣었을 때 정말 맛있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집에서 그렇게 많이 해먹어요. 대신 팁이 있다면 우유를 많이 넣지 마세요. 우유도 유제품이다 보니까 버터의 풍미를 죽일 수 있어요. 우유 대신 물을 조금 넣고 버터 향과 토마토 향이 자연스럽게 밸 수 있도록 조리하면 더 맛있습니다.
메이플 시나몬 버터는 빵에 바로 발라먹을 수 있게 디저트 버터로 개발한 제품이에요. 요즘에 방탄 커피도 유명하잖아요. 메이플 시나몬 버터도 커피에 들어갔을 때 시나몬 향이 커피 향과 잘 어울려요. 평소와는 다른 색다른 커피 맛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Q. 그래도 가장 애정하는 버터가 있으시죠?

동생이 가장 애정하는 버터는 토마토 버터에요. 굉장히 실험적인 제품이거든요. 토마토만의 감칠맛이 있는데 [토마토의 감칠맛과 크리미함이 섞이면 어떤 맛이 날까?]를 출발점으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분들도 토마토 버터를 맛보시고 ‘정말 새로운 경험이다’라고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저희가 드리고 싶은 가치와 맞는 버터기도 합니다. 토마토 버터가 인기가 많으면 동생이 정말 좋아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조금 익숙한 맛이지만 시나몬 버터를 가장 좋아합니다. 단 걸 좋아해요.
사진 = '요리노리' 제공
Q. 앞으로의 목표 

비판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 정말 자극적인 방법으로 광고하는 업체들이 많이 있어요. 광고에서 보이는 모습이 현실에서 재현되기는 어렵거든요. 저희가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우리 제품을 받았을 때 소비자가 지불한 가치보다 더 큰 효익을 느끼게 하자. 이게 저희 상품의 출발점이자 지속적인 목표입니다. 
두 번째는 소비자가 제품을 받았을 때 이미 가지고 있던 미식 경험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는 게 목표예요. 어떻게 보면 저희가 컴파운드 버터라는 문화를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는 단계인 거잖아요. 이렇게 세계 여러 나라의 미식 문화를 소개하고 함께 향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소비자들이 저희 제품으로 요리하고 새로운 미식 경험을 통해 즐거움을 찾는 거죠. 

박정수 대표는 식사라는 행위가 더 이상 생존을 위해서인 시대가 아니듯, 요리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재밌는 소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전했다. 브랜드의 이름이 ‘요리노리’인 이유도 요리와 놀이를 합쳐 지은 것이라고. 요리가 놀이가 되고 ‘요리노리’의 제품은 재밌는 장난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남매. 두 사람이 앞으로 만들 장난감은 무엇일지 기대가 된다.

에디터 JEONG情 letitgo1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