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교사가 추리소설도 쓴다! 추리도 곧 수학 문제라는 장우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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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STREET2020-08-2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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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무더운 날씨에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에어컨 시원하게 틀어놓고 뒹굴 거리는 것이 더위를 날리는 가장 좋은 선택이죠. 거기에다가 등골 오싹하게 만들어 줄 추리소설 한 권과 함께 한다면 그곳이 바로 지상낙원 아닐까요?

지난 8월 초 학교라는 독특한 배경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 단편집이 출간되었습니다. 현실적인 학교의 모습을 실감 나게 표현한 9편의 추리소설, 사실 현직 고등학교 교사의 데뷔작이라고 합니다. 추리소설 쓰는 수학교사 장우석 작가와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학교를 배경으로 추리소설을 쓰는 수학교사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장우석입니다. 숙명여고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수학 교양도서와 단편소설집을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고요."

사진=장우석 작가가 집필한 도서들
- 지난 8월 6일에 지금까지 발표한 소설들을 모은 첫 단편소설집 『주관식 문제』가 출간되었습니다. 어떤 작품인가요?
"『주관식 문제』는 오늘의 우리 학교 현실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입니다. 학교라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빛과 그림자가 있는 추억의 공간이잖아요. 학교를 배경으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소재를 통해 제 개인적인 고민들을 추리의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참, 주관식은 표제작 「주관식 문제」의 주인공 이름이니까 오해는 마시고요. (웃음)"

- 지금까지 수학 교양도서를 집필한 적은 있지만 소설 작품은 처음인 만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소설 집필은 수학 교양도서 집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집필 기간과 들인 에너지, 탈고 후의 즐거움까지 모든 면에서 소설 쪽이 훨씬 컸습니다. 내가 생각해내고 쓰기 전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잖아요.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시작하고 완결해내는 창조의 과정이 줄 수 있는 유쾌함이라고 할까요?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화를 만든 사람을 제작자라 칭하며 신성시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어설픈 단편 한 편을 만드는 과정에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영화 <주관식 문제> 스틸컷
이번 단편집의 표제작인 「주관식 문제」는 2014년 「계간 미스터리」 봄호에 실린 작가의 등단작이기도 합니다. 2017년에 이미 단편영화로도 제작되어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경선의 본선에도 진출하여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고요.

"지인 중에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이 한 사람 있습니다. 미스터리 습작을 하던 저에게 피드백을 주며 도움을 준 고마운 친구였어요. 제가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을 받아 데뷔하고 얼마 후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으로 「주관식 문제」를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먼저 제안해 주었습니다. 당연히 오케이죠."

이 기회를 통해 영상이 가진 힘과 매력을 알게 되었다는 장우석 작가. 소설이 가진 대중성의 한계를 영상과의 결합으로 확장하려는 것이라고 답변했는데요, 앞으로도 작품의 활발한 영상화, 기대해도 되겠죠?

- 실린 작품들은 모두 학교를 배경으로 한 학원물이라 아무래도 실제 교사로 일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많이 반영되어 있을 텐데요, 학교라는 배경에 특히 매력을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제가 가장 무리 없이 쓸 수 있는 소재라는 이유가 제일 큽니다. 교사와 학생들의 삶을 20년 넘게 경험해 왔으니까요. 독특한 캐릭터와 다양한 에피소드들, 그리고 디테일한 묘사 등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학교라는 공간이 가진 보편성 때문입니다. 학교는 누구나 경험한 공간이면서 모두 다른 기억을 가진 공간이기도 합니다. 아주 보편적이면서도 지극히 개별적인 기억을 가진 공간이기 때문에 어떤 소재라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능한 공간이죠."

추리도 곧 수학 문제다
사진=영화 <주관식 문제> 스틸컷
어린 시절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다는 장우석 작가. 수학 교사로 일하면서 추리소설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질문하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탐정이 논리와 이성으로 찾아내는 과정이 너무 스릴 넘치고 멋있고 또 재미있었거든요. 표면 밑에 흐르는 어떤 이야기, 숨겨진 맥락, 과거의 기억 같은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을 논리적으로 조합해서 전체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것에서 오는 희열이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답했습니다.

"추리소설에서 범인을 잡는 건 수학 문제 해결과 동일한 과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 상황(살인 사건)에서 자료(증거)를 모아서 내가 알고 있던 공식이나 개념(정보)를 통해 그것을 해석해 냄으로써 답(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이거든요."

- 교사와 작가를 병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병행이 쉽지 않아서 작가 쪽은 포기하고 교사 생활을 열심히 하자고 생각한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소설 작법서를 읽다가 유명한 작가들을 포함해서 작품 활동을 다른 직업과 병행한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특히 『변신』을 쓴 프란츠 카프카 역시 보험회사 직원이었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소설 창작이 '직업'이 아닌 '활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 두 가지가 꼭 일치해야 할 필요는 없겠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니까요. 나아가 수학교사라는 질서와 합리로 상징되는 밝은 세계와 추리 작가라는 상상과 자유로 상징되는 어두운 세계는 서로를 보완하며 제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주관식'도 작가 본인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을까? 사진=영화 <주관식 문제> 스틸컷
- 학원물 이외에도 쓰고 싶은 이야기나 주제가 있으신가요?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쓸 계획인지 간단하게 이야기 부탁합니다.
"특별히 쓰고 싶은 이야기나 주제는 없지만 하나의 독특한 소재로 긴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레즈비언 커플을 소재로 재밌고 긴 이야기를 들려준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 같은 소설이요. 19세기 초 중엽 조선에 실존했던 천문학자 이야기를 소재로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데… 잊지 않고 있다면 언젠가 쓰겠죠? (웃음)"

최지원 동아닷컴 인턴 기자 dla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