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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만 알던 두 남자가 3초면 완성되는 육수를 완성한 사연

29STREET 2020-09-14 07:00
델리스가 개발한 고체육수 '순간', 장수문 이사 인터뷰

경북 청송에서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델리스의 김희곤 대표와 장수문 이사. 서로 잊혀진 존재로 살다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 후 같은 동네에 살며 한달에 한 두번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됐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IT업계에서 수십년을 근무했다는 것과 두 사람의 '부캐(부캐릭터)'가 '요리하는 아빠' 라는 겁니다.
서로 닮은 듯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친구로 오랜시간 신뢰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두 친구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집밥의 시작! 델리스의 고체육수 '순간'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델리스 주식회사 김희곤 대표(왼쪽)와 장수문 이사(오른쪽)/사진=델리스 주식회사 제공
Q.두 분이 원래 IT업계에 종사하셨다고요?
네. 둘 다 IT업계에서 일했죠. 벌써 25년 전 일이네요. 후에 회사를 나와 각자 사업도 했어요. 거기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품을 개발했죠. 하지만 아이디어가 상품이 되는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는데요. 좋은 제품이라고해도 성공적인 사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그 때의 경험이 지금의 사업과 제품개발에 눈을 뜨게 했다고 생각해요. 

Q.남자들에게 '육수'가 익숙한 요리재료는 아닐 것 같은데요.
글쎄요. 우리는 음식에 대해 배운건 아니지만 집밥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그런지 육수가 낯선 분야는 아니에요. 
어린시절 시골생활은 가족들이 모두 나가 일하고 그 중 일찍 귀가하는 사람이 저녁준비를 해야 했어요. 막내인 제가 일찍 귀가하는 날이 많으니 저녁준비를 많이 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요리를 익히게 됐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가정식에는 국이나 찌개가 항상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국물의 베이스인 육수가 낯설지 않았어요.
3초면 완성되는 '고체형' 육수
사진=델리스 주식회사 제공
Q.요즘은 파우더형 육수도 나오던데 고체육수와 어떤 차별점이 있나요?
1포씩 포장된 파우더형 육수는 원물을 갈아넣어 물에 풀면 뜨는 현상이 좀 있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맛의 깊이가 다르다고 보는데요. 원물을 갈아 넣은 파우더와는 다르게 저희 육수는 열처리를 거쳐 풍미를 더 끌어올렸어요.

이 열처리 과정에서 풍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소량의 설탕이 들어가는데요. 원재료에 열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당이 들어가면 마이아르 반응(당류, 특히 환원당과 아미노 화합물들에 의한 갈색화 반응)이 일어나요. 이 때 풍미가 확 살아나죠. 그런데 이 때 들어간 소량의 설탕때문에 당함량이 높다는 소비자들의 지적이 있었어요. 당연히 설탕이 왜 사용되는지 모르시니까 당함량이 높다고 인식하실 수도 있는데요. 결과적으로 현재는 당함량을 좀 낮춰 생산하고 있어요.

Q.고체형 육수를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저희 둘 다 IT업계에서 오래 몸담아 온 사람들이라 식품에 대한 정보가 깊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단순한 이슈들도 저희에겐 크고 작은 허들로 다가오더라고요. 제품의 맛부터 원료 수급, 제품 크기 등등... 그래서 모든 진행에 있어 더 꼼꼼하게 검토했어요. 돌이켜 보면 이게 약이 된 꼴이죠. 
작은 허들 하나도 저희에겐 도전이고 벽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크고 작은 이슈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있어요. 장점도 있지만 단점에 대한 부분들에 더 신경 쓰고 있고요. 그리고 지적 받은 부분에 대해 빠르게 개선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소비자와 만들어가는 '순간'
사진=와디즈 홈페이지 캡쳐
Q.소비자들의 지적을 바로바로 개선하시는 것 같아요. 이로 인한 변화도 있나요?
당연하죠. 실제로 소비자들의 지적 중에 새우육수와 버섯육수의 사용처가 모호하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판매량도 차이가 있었죠.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상품명으로 인해 요리의 범주가 좁아졌더라고요. 그래서 소비자가 다가가기 쉽도록 새우육수를 해물육수로, 버섯육수를 소고기버섯육수로 상품명을 바꾸기로 했어요. 어때요? 갑자기 요리의 범주가 확 넓어지지 않나요?

Q.소비자들의 지적이 있다면 분명 '순간'만이 가진 매력도 있을 텐데요?
대부분 '육수는 요리 초반에 내서 사용한다'라는 생각이 있어요. 그런데 저희 제품은 이 틀을 벗어났어요. 요리과정 중간, 마무리 심지어 먹다가 넣어도 되거든요. 아무렇게나 언제든 넣어도 깊은 맛을 낼 수 있죠. 이 점이 우리 제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저희는 점심시간에 하나씩 가지고 나가서 국물음식 먹을 때 하나씩 넣어서 먹기도 해요. 그만큼 별도 레시피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거든요.
열처리를 거쳐서 나온 제품이기 때문에 비린맛 없이 어우러져요.

Q.비건을 위해 채수를 개발하셨다고 하던데요?
맞아요. 먹거리 창업센터에는 비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사업을 운영하는 팀이 있는데요. 그 분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채식을 하세요. 그런데 우리나라 음식은 국이나 찌개가 많잖아요. 이 때 육수가 필요한데 국내 제품들은 어류, 육류 육수제품이 많아요. 그래서 채수에 대한 니즈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떤분들은 해외제품을 이용하기도 해요. 근데 해외제품은 독특한 향신료 때문에 뭔가 미묘하게 다르다는거에요.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채수를 개발했고 비건인증까지 받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지 매출과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이 가는 제품이에요. 채수는 독자적으로 기술을 다져서 만든 제품이거든요. 제 생각에도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하하하
해외에서도 반응하는 '순간'
델리스 주식회사 김희곤 대표/사진=델리스 주식회사 제공
Q.해외에서 먼저 '순간'을 찾았다고 하던데요?
코로나19 전까지 참여했던 전시회에서였어요. 그 때 만난 미국 선교사분이 최소 물량을 받아가셨죠. 반응이 좋아 3차까지 물량계약을 약속했어요. 그런데 코로나 19가 번지면서 진행이 중지된 상태에요. 현재 많진 않지만 3개 업체를 통해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데요. 앞으로 시국이 좋아져서 큰 전시회들이 개최되면 그 때 다시 만나 추진해보고 싶습니다.  

Q.해외 진출을 위해서 어떤 것들을 준비하고 계시나요?
코로나19 전 전시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샘플을 요구하신 분들이 꽤 있었어요. 그 때 해외 바이어들이 치킨육수는 없냐고 묻더라고요. 그 때 치킨육수를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제품이 모두 완성되면 5가지에요. 이 중 외국인들 입맛에 치킨육수와 채수가 부합할거라고 생각해요. 치킨육수는 처음부터 외국제품과 맛을 비교하면서 개발했거든요. 그리고 채소육수는 이미 외국인들이 많이 쓰고 있는 제품이고요. 

앞으로 시국이 좋아져서 다시 큰 전시회들이 개최되면 계속해서 수출을 추진해보려고 해요. 현재는 그 날을 위해 치킨육수를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 실제로 개발도 거의 다 됐고요.

Q.외국인들의 취향까지 반영하셨다니 맛이 궁금해지네요.
치킨육수를 개발하기로 하고 자료를 보니 국내 소비자는 소고기와 해물맛에 길들여져 있고 해외는 치킨맛에 길들여져 있었어요. 제품 판매량 역시 그렇게 나와있더라고요.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맛의 기준을 해외제품으로 정했어요. 해외 여러가지 제품들의 맛을 보면서 기준을 잡고 그와 같거나 더 좋게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어요.

Q.수출을 위해선 위생관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델리스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수출과는 관계없이 '순간'은 육수고 식품이기 때문에 위생과 청결은 당연히 중요해요.
저희 구성원들의 가장 공통되는 생각이 '우리가 싫으면 소비자도 싫어한다'인데요.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것처럼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마음을 가지면 어느 순간 큰 선을 넘어버리는 거거든요. 사소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청결과 위생은 마인드만으로 보여질 수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생각한게 해썹 인증(HACCP-)인데요. 식품을 얼마나 청결한 상태에서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가 평가기준이에요. 이 인증을 위해 수 개월 준비했고 드디어 이 달에 인증을 받게 됐어요.
'순간' 그리고 '인생의 화양연화'
델리스 주식회사 김희곤 대표(왼쪽)와 장수문 이사(오른쪽)/사진=델리스 주식회사 제공
Q.'순간'으로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준다면 누구에게 어떤 메뉴를 대접하고 싶으신가요?
부모님.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어요.
부모님이 대구에 사시는데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제가 막내지만 자주 찾아 뵙진 못하거든요. 그래서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 나네요.
부모님께 어린시절 우리 가족이 먹던 가장 익숙한 집밥을 해드리고 싶어요.

Q.'순간'으로 이루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순간'을 접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순간을 위해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요.
아직 제 인생에 화양연화는 오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오랜 시간 회사 안에서 부품처럼 일 했거든요. 이제 주도적으로 생각한 것들을 실행에 옮기고 결과물을 만들고 있어요. 처음부터 내 제품을 키우는 재미와 보람이 있어 행복합니다.

에디터 BANGDI doru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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