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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는 물건 새 주인 찾아주는 ‘당근 맛’에 900만 명이 중독됐죠”

주간동아 2020-08-18 14:38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 김용현 공동대표 인터뷰

“당근마켓에 중독된 아내를 둔 남편은 아내 심부름으로 포장된 물건을 들고 뭘 파는지도 모른 채 나가요. 그러면 뭘 사는 건지도 모르는 또 다른 심부름 하러 온 남편이 기다리고 있어요. 남편 둘이 만나서 ‘이거 뭐에요’ 하고 물어보면 ‘저도 몰라요’ 이래요.”

지난 6월 ‘당근마켓’의 무서운 성장세를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추천을 많이 받은 이 댓글은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의 주요 이용자가 누구인지 보여준다. 당근마켓은 중고 거래 시장에 ‘엄마’들을 끌어들인 1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고 시장을 연 건 네이버 중고나라지만, 그걸 키운 건 당근마켓이다.
당근마켓 김용현 공동대표. [박해윤 기자]
남이 쓰던 물건. 예전 같으면 모르는 사람이 쓰던 것이라 거부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에는 환경을 생각하고 알뜰한 소비를 하고자 중고 제품을 사는 경향이 더 강하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중고 제품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최근 들어 중고 거래는 더욱 활발해졌다.

당근마켓은 김용현·김재현 공동대표가 카카오에서 근무하던 시절 접한 사내 거래 게시판에서 영감을 얻은 서비스다. 2015년 7월 자본금 5억 원으로 창업한 뒤 ‘판교장터’를 출시한 이들은 같은 해 10월 ‘당근마켓’으로 서비스 이름을 바꿨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용인시 수지구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가다 2018년 1월부터는 전국 단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육아맘’이 키운 당근마켓
당근마켓은 서비스 시작 5년 만에 월간 순 방문자 수(MAU) 900만 명(2020년 7월 기준)을 넘겼다. ‘캐롯마켓’이라는 이름으로 영국에서도 서비스 중이다. 지금까지 누적 투자 유치액은 480억 원.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당근마켓 사무실에서 김용현 공동대표를 만나 성공 비결을 들었다.

후드티에 편안한 차림으로 기자를 맞이한 김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후 삼성물산을 거쳐 네이버, 카카오에서 기획자로 일했다. 회사에서도 “대표님”이 아닌 “Gary”라는 영어 이름으로 불리는 그는 “처음 만난 분들은 제가 대표인 줄 모른다”며 웃었다.

- 당근마켓을 써본 이들이 공통으로 ‘사용하기 쉽다’고 말합니다. 

“중고거래를 기존에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분들의 참여가 많아요. 가까운 곳에서 사례를 찾자면 우리 장모님이 있겠네요. 다른 중고 마켓은 택배를 보내고 송금을 하고, 안전결제를 하고 사기꾼인지 아닌지 판별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면 당근마켓은 직접 동네 사람을 만나서 거래하는 거라서 번거로움이 덜하죠.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지역 사람들과 거래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 당근마켓의 충성 고객은 누구인가요.

“핵심 고객층은 ‘엄마’들입니다. 가입자 비율로 보면 여성이 55, 남성이 45인데 사용률은 여성이 더 높아요. 아이를 키우는 ‘육아맘’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런칭 때부터 지금까지도 꾸준히 쓰고 계신 핵심 유저죠. 그러다 남편들도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고, 젊은 층과 노년층까지 이어져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이용자들이 당근마켓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 당근마켓만의 강점은 뭘까요.

“마을마다 특성이 있어서 파는 물건이 다 달라요. 캠핑카나 배도 팔고 수산물이나 흙, 벽돌, 심지어는 전원주택도 파시더라고요. 반려동물을 잃어버리면 분실물 카테고리에 올려서 동네 사람들에게 알림이 가게 해 놨는데, 그 기능을 통해서 잃어버린 동물을 찾은 사례가 많아서 흐뭇해요.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 대란이 일었을 때는 당근마켓 내에서 마스크 가격을 너무 비싸게 올린 게시물은 노출을 제한했어요. 자연스럽게 마스크 거래가가 형성돼서 한창 품귀현상이 일었을 때 유일하게 마스크를 거래할 수 있는 마켓이기도 했죠.”
수입원인 지역 광고 매출, 200% 증가
당근마켓 김용현 공동대표. [박해윤 기자]
- 불법 제품이나 성인물, 가짜 제품 판매 글은 어떻게 걸러내나요.

“24시간 돌아가면서 모니터링도 하고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인공지능(AI)이 술, 담배, 모조품 등 판매 금지 물품이나 일반인의 중고 거래글이 아닌 상업적인 글을 찾아내 게시글 노출을 막아요. 사용자들이 신고하면 그걸 접수한 뒤 검토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머신러닝을 활용하면 문제가 있는 글의 노출 반경을 줄이거나 노출하지 않는 등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게 저희만의 장점이에요.”

-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는데 수익은 무엇으로 내나요.

“당근마켓 서비스 초기에는 구 단위로 마케팅을 했어요. 당시 저희 직원이 6명뿐이었는데, 지역에 가서 물건 올리고 아파트마다 돌면서 전단을 돌리고 드론으로 현수막도 띄워 봤지만 비효율적이더라고요. 작은 지역 단위 마케팅이 굉장히 어렵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동네별로 구분해서 지역 광고를 하면 조금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 생각해서 지역 광고를 받기 시작했어요. 비용도 10만원 이내로 저렴하게 시작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해당 지역에서 물건을 팔거나 홍보하고 싶은 사업자를 연결해 주고 있어요.”

당근마켓은 지난해 거래액 7000억 원을 넘어섰다. 업체나 소상공인이 당근마켓에서 동네 주민을 대상으로 홍보하는 지역 광고 서비스 매출은 올 5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200% 가량 상승했다. 1000회 노출당 평균 비용(CPM)이 4000~5000원 선으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 카카오에서 나와 창업할 때 자본금 5억 원으로 시작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직원들에게도 창업을 장려하나요.

“창업하면 어떤 식으로든 5~10억 원 가량이 들기 마련인데, 카카오에 다닐 때 받은 스톡옵션으로 그걸 충당할 수 있었어요. 그때의 경험 덕에 직원들에게 주식을 많이 나눠주고 있어요. 잘 되면 창업을 하시라면서요. 직원을 채용할 때도 기업가 마인드가 있는 분들을 선호합니다. 그냥 월급 받고 일하는 분보다는 정말 회사에 들어와서 해보고 싶은 게 있는 분이 오셔서 새로운 서비스와 사업을 만들어내고, 그 경험으로 창업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회사의 성장을 직원들과 나누는 게 사풍(社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중고 거래 창구 넘어 지역 커뮤니티로
당근마켓 김용현 공동대표. [박해윤 기자]
- 주요 대기업을 거쳤으니 ‘이 회사의 이런 문화는 좋고 이런 문화는 나쁘다’는 생각이 있을 것 같은데요. 당근마켓 조직에 반영한 부분이 있나요.

“일단 카카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영어 이름을 쓰는데요. 우리나라의 선후배 문화, 형동생 문화가 장점도 있지만, IT 회사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아요. 위계서열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거든요. 이런 걸 깨고자 영어 이름을 쓰고 서로 존댓말을 해요. 그리고 한 달에 한번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의 날로 정해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목공예를 하는 등 문화생활을 즐기고 회식을 해요. 다른 팀과의 협업이 많다 보니 직원들끼리 친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요. 친할 때와 친하지 않을 때 협업 결과물의 품질 자체가 달라지거든요.”

-회사를 설명할 때 ‘판매 창구’보다는 ‘커뮤니티’ 쪽에 더 중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 가족과 오일장에 가면 재밌었던 기억이 나요. 뭘 따로 사지 않더라도 구경도 하고 음식도 먹고, 이야기 나누는 거 자체가 하나의 놀이였죠. 그런 느낌의 커뮤니티를 모바일 기술로 구현하고 싶었어요. 유럽여행을 갔을 때도 선데이 마켓이나 프리마켓에 가면 광장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다과를 즐기며 중고 거래를 하더라고요. 그런 게 굉장히 좋아 보였어요. 중고 거래가 주가 아닌, 동네 사람을 만나고 친구도 사귀고, 다른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중고 거래가 많이 이뤄지지만 정말 하고 싶은 건 커뮤니티예요. 동네 사람들끼리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운동하거나, 숲 체험을 하고 싶은데 혼자서 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런 연결을 해줄 수 있는 서비스를 지향해요. 저는 등산을 좋아하는데 동네에서 당근마켓을 통해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취미생활을 즐길 수도 있고요. 부동산 검색 같은 서비스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합니다. 앞으로 어떤 서비스를 새롭게 열더라도 ‘동네’를 떠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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