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최대규모 전시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개최

핸드메이커
핸드메이커2022-08-16 09:03:30
공유하기 닫기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展 /김서진 기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롯데문화재단 롯데뮤지엄은 11월 6일까지 아티스트 셰퍼드 페어리의 국내 최대 규모의 전시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를 개최한다. 셰퍼드 페어리는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메시지를 작품에 녹여내는 아티스트다.

그의 30여년간의 예술적 궤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초기작부터 영상, 협업, 사진 자료, 신작, 벽화까지 470여점의 작품을 출품한다. 권위와 관습에 저항하는 개념적 메시지와 반복적인 이미지로 미국 시각 문화를 대표하는 그는 환경, 인권 등과 같은 사회와 경제를 넘나드는 주제로 강렬한 프로파간다적 색채와 텍스트를 결합한 화면을 구성한다.

이러한 단순한 구성은 대중에게 더욱 강렬한 시각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인식되었다. 그는 기존 미술사와 시각 문화에 대해 적극적인 변형을 유도하고 다양한 미술 장르와 양식의 혼성으로 21세기 시각 미술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이번 전시는 셰퍼드 페어리의 철학이 담긴 예술 세계 전반을 재조명하고 삶과 예술이 결합한 새로운 예술의 시작을 경험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된다.
작업 중인 셰퍼드 페어리 /롯데뮤지엄
1989년 로드아일랜드 스쿨오브디자인에 재학 시절 셰퍼드 페어리는 거구의 프로레슬러 앙드레 르네 루시모프의 초상을 모티브로 한 스티커 작업 '거인 앙드레에게는 그의 패거리가 있다'를 시작으로 아티스트로서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이 작업은 '오베이 자이언트' 캠페인으로 발전하면서 셰퍼드 페어리 작업의 근간이 된다. 이후 2008년 미국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의 초상화 포스터 '희망'을 발표하면서 대중적인 유명세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베이 자이언트' 캠페인의 초기 시리즈뿐만이 아니라 희망과 환경을 주제로 서울 시내 건물 5곳에 직접 작업한 벽화를 최초로 공개해 거리 예술을 통한 셰퍼드 페어리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거리는 그의 작업의 근원이며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대중의 소통과 참여를 유도하기에 가장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곳이다. 1980년대 미국은 혼란스러운 국내외 정세와 그로 인한 사회 문제가 폭증하던 격변의 시대로 젊은 층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저항과 반항이 내재된 여러 비주류 문화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전시 곳곳에 보이는 붉은 장미 /김서진 기자
자유의 대명사인 펑크록과 스케이트보드 문화, 힙합, 그래피티 등 거리 예술이 유행했고 특히 주류 권력층이 외면하니 스스로 일어나 저항해야 한다는 펑크의 DIY 정신은 셰퍼드 페어리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DIY 정신은 그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최근 신작까지 다양한 주제와 방식으로 이어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비둘기, 장미, 연꽃, 지구, 천사 등 상징적 개념과 의미를 담고 있는 여러 도상은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요 매개체가 되어 독창적인 그만의 작품 세계를 완성한다.
OBEY /김서진 기자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셰퍼드 페어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OBEY' 문구가 네온사인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작가 대신 그의 작품이 관람객들을 환영하는 느낌을 준다.
'당신이 마주한 모든 이미지에 의문을 가져라' /김서진 기자
이번 롯데뮤지엄은 셰퍼드 페어리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를 주제로 시각화한 포스터 140여점을 선보인다. 광고로 가득 찬 도시에서 대중의 즉각적 반응을 유도하기 좋은 형식인 포스터를 택한 작가는 원색의 색감과 단순하고 명료한 구성에 메시지를 결합한 강렬한 그래픽 스타일을 통해 직설적으로 의견을 담는다.

1997년부터 2017년까지 제작된 포스터 작업은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비롯해 평등, 인권, 반전, 환경, 반-자본주의를 주제로 한다. 그는 대중을 움직이는 프로파간다 포스터 형식에 착안해 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고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동시에 과거의 프로파간다로 대표되는 원색적이고 강압적인 도상을 차용해 역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기저에 자리잡은 문제를 표면으로 드러낸다. 다양한 도상과 문제를 담은 포스터 속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 개시를 촉구하는 시각적 명령어인 '오베이'가 반복적으로 배치된다.
뭔가를 읽고 있는 동상 /김서진 기자
한쪽은 평범한 얼굴이지만 돌아보면 앙상한 해골이다 /김서진 기자
또한 여러 이미지를 반복하고 비틀어 기존의 이미지를 환기함으로써 의미를 강조하는 실험적인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셰퍼드 페어리는 작품 속에 문화적, 정치적이며 긍정적인 변화로 이끄는 주제와 인물들을 의식적으로 등장시켜 쉽게 접하고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의 혼합과 병치를 통해 현대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강한 어조로 전달한다. 여러 방식으로 표현되었으나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메시지가 담긴 그의 작품은 하나의 현상이 되어 사람들에게 예술을 통한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힘과 평등' /김서진 기자
셰퍼드 페어리의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작가의 철학을 담아내는 주요 주제이자 예술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선도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다. 그는 다양한 인종의 여성을 주제로 사회적 제도 안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차별을 표현한다. 히잡을 두르거나 장미, 총, 화환에 둘러싸인 여성 또는 인권운동가의 초상에 평등, 평화, 정의와 같은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등장시켜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일깨우며 민족과 문화, 종교의 다양성을 포용해야 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안젤라 누비안', '제시 누비안' /김서진 기자
2019년 제작한 작품 '안젤라 누비안'은 인권운동가인 안젤라 데이비스의 초상에 그의 상징인 아프로 헤어스타일을 캔버스 삼아 볼드한 서체의 '힘과 평등'이라는 단어를 조합해 아프리카계 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사회의 처우에도 불구하고 높은 곳을 바라보는 위엄있는 모습을 시각화했다.

또한 1960년대 흑인 권력 운동 당시 주먹을 치켜든 모습으로 유명했던 인권운동가 겸 성직자 제시 잭슨 목사를 형상화한 작품 '제시 누비안'은 저항적인 잭슨의 모습을 통해 선언문이 지닌 감성까지 정확히 포착한 그림이다. 이 시리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자유의 투사들을 묘사한 초상화 시리즈로 셰퍼드 페어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선전과 행동주의의 표현 방식이 그리 숭고하지 않은 목적에 쉽게 이용되는 것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다.
여성은 강인하다 /김서진 기자
대담하고 적극적인 여성의 모습을 담은 '팜므파탈'은 강인하고 반항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성차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여성을 나약하고 순종적인 나체로 묘사했던 과거의 그림들을 비판한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장미는 유기적인 아름다움과 타고난 강인함을 의미하며 회복력이 있는 생명체로 묘사된다. 역경을 견디고 인내한 인간 또는 사회 전반을 상징하는 장미는 작가의 아티스트 커리어를 이끌어 온 사회 활동가로서의 정신을 보여준다. 시사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를 담은 그의 작품은 21세기 프린트 미술의 한 전형을 마련했다.
'OBEY 3 Face Horizontal Triptych' /김서진 기자
셰퍼드 페어리는 예술가로서의 철학과 신념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신작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30여년간의 예술작품 중 현재까지도 가치 있는 주제나 중요한 신념을 내포하는 작품을 새롭게 재구성해 작업을 발전시켰다. 이번 신작은 문화, 정치, 환경에 관련된 주제와 인물들을 소재로 한 다양한 미술 장르와 양식의 혼합을 통한 변화를 볼 수 있다.

그는 '오베이 자이언트' 캠페인의 앙드레 자이언트 초상을 '오베이 스타' '오베이 아이콘 페이스' 등 다양한 버전으로 발젼시켰다. 이번 전시에서도 새롭게 변형한 앙드레 자이언트 초상을 대형 화면으로 보여준다. 세 부분으로 나뉜 화면의 중앙에는 앙드레 자이언트의 초상과 오베이 텍스트를 결합해 변하지 않는 작가의 신념과 철학을 다시한번 상기시킨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또한 2017년 LA에서 최초로 대규모로 개최했던 전시 '데미지드'의 출품작 중 시리즈 4점이 최초로 공개돼 의미를 더한다. 그의 작품에 공존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사회 모습은 우리를 현실에 더욱 집중하게 하고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부여한다.
'HOPE' /김서진 기자
2008년 미국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의 초상을 그린 '희망' 포스터는 셰퍼드 페어리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대표 작품이다. 오바마의 얼굴을 중심으로 빨간색과 파란색인 미국의 국기 색을 사용하고 아래에는 희망을 뜻하는 단어인 호프(HOPE)가 적혀 있다.

당시 셰퍼드 페어리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매니 가르시아가 찍은 오바마의 사진을 바탕으로 그의 초상에 '진보'라는 단어를 넣어 실크 스크린 포스터 작업을 진행해 거리에 배포했다. 이후 '호프'로 단어를 교체 후 공식 캠페인 포스터로 선정되었다. 오바마 당선 이후 셰퍼드 페어리의 '희망' 포스터는 다른 이미지로 다시 제작되어 2008년 미국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
'라우센버그 Cream version 2', '라우센버그 Red version 2' /김서진 기자
'장 미쉘 바스키아 version 3' /김서진 기자
셰퍼드 페어리는 예술 작품뿐만이 아니라 책, 영화, 텔레비전 쇼 등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는다. 특히 작가에게 영향을 준 음악적, 문화적 영웅의 초상을 스텐실, 실크 스크린, 꼴라주 등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해 존경심을 드러냈다. 예술계의 거장 장 미쉘 바스키아,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센버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등을 작가의 독창적 도상으로 만날 수 있다.
'Paradise Turns, version 3' /김서진 기자
셰퍼드 페어리는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대중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생각하게 유도한다.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여러 가지 도상이 결합된 '위기' 시리즈를 선보인다. 세계적인 문제이자 관심사인 지구 보존은 그의 주요 주제다.

검게 물든 바다와 하늘, 석유 페인트 통과 같은 암시적 메시지를 담은 시각적 이미지들과 지구 위기, 글로벌 워닝과 같은 직접적인 경고 문구를 넣은 작품들로 지구온난화, 석유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환경오염, 지진 발생 등 우리가 현재 직면한 위험에 대한 실질적인 목소리를 담은 환경 시리즈를 제작했다. 또한 그는 판화 판매금을 환경 단체에 기부하는 등 환경 문제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계속해서 예술을 통한 캠페인을 진행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환경을 지키는 실천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Power', 'Imperial Glory' /김서진 기자
셰퍼드 페어리는 베트남전부터 이라크전까지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수년간 지켜보며 작품을 통해 적극적으로 비판적인 메시지를 드러낸다. '워 바이 넘버스'에서는 꽃이 꽂혀 있는 수류탄을 들고 눈을 감고 있는 소녀의 머리 위로 전투기가 날아간다. 평온한 아이의 이미지와는 반대로 그의 손에서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Peace Dove Red version 3', 'Peace Dove Black version 2' /김서진 기자
또한 셰퍼드 페어리는 경찰봉과 총에 꽂힌 꽃, 폭탄을 중앙에 두고 서로 안고 있는 부부의 모습 등 서로 대치되는 이미지를 함께 배치해 안일한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강조한다. 사회에서 만연하게 일어나는 부조리와 폭력, 전쟁, 악행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찾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함을 일깨운다.
셰퍼드 페어리의 스케이트 보드들 /김서진 기자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함께 /김서진 기자
이번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더 파크'는 셰퍼드 페어리의 30여년간의 예술 세계를 한 공간에 담았다. 작가의 작품의 근간이 된 공공장소이자 영감의 장소인 스케이트 보드 파크를 구성해 30년간 한결같은 목소리로 자신의 철학을 지켜 온 그의 신념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직접 제작한 스케이트 보드 시리즈 40여점과 작업실에서 옮겨온 스튜디오 소품이 최초로 전시되었다.
벽화 '피스 인 볼룸' 이 보인다 /김서진 기자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현장에서 직접 작업한 벽화 '피스 인 볼룸'은 '희망'을 주제로 했다. 팬데믹으로 지친 우리의 일상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서로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밀어 밝은 미래로 향해 가자는 내용을 담았다. 희망을 상징하는 꽃을 받들고 있는 여신의 형상과 그 양 옆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장미, 그리고 승리와 평화를 상징하는 알파벳 브이 모양을 한 손이 화면을 구성한다.
행동하라 /김서진 기자
작가는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적 메시지로 점철된 독창적 화면 구성을 통해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그만의 예술 세게를 확고히 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는 우리를 향해 외친다. '행동하라!' 라고.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셰퍼드 페어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하게 만든다. 그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는 개념적 의제와 현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책임, 의미 있는 역할은 우리를 현실에 더욱 집중하게 하고 현재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부여한다. 늘 화두의 중심에 있는 그는 이번 전시에서 어떤 예술의 언어로 질문을 던지는가? 그 질문에 반응하는 건 대중들의 몫이다. 눈을 뜨고 마음을 열고, 이제 당신이 행동할 차례다. 전시는 11월 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