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와 함께 빠져드는 흥미로운 여행, '레전더리 루이비통 트렁크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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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2-03-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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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와 함께 빠져드는 흥미로운 여행, '레전더리 루이비통 트렁크展'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예술과 공예를 따라가는 '레전더리 루이비통 트렁크展'이 8월 21일까지 타임워크 명동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150여 년 전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진 디자이너 '루이비통'의 감각적인 디자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과 추억을 관람객들에게 선물한다.

‘레전더리 루이비통 트렁크展’은 스웨덴 콜렉터 ‘매그너스 말름’이 수집한 약 200여 점의 루이비통 오리지널 트렁크와 공예품들로 구성됐다. 1800년대부터 루이비통이 만든 진귀한 트렁크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번 전시회는 단일 최대 규모이자 세계의 전설적인 트렁크들에 대한 역사를 탐험할 수 있다.

창업자 루이비통의 이름에서 유래한 루이비통은 185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여행가방 전문매장’으로 시작하였으며, 이는 19세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철도 및 수로 교통의 확산으로 인해 여행 인구가 증가했던 사회적 배경과도 관련이 깊다.
전시 입구 /김서진 기자
루이비통은 1835년 파리로 올라와 유명한 트렁크 및 케이스 제작자인 마레샬(Marechal)의 견습공으로 일하며 귀족들의 트렁크 꾸리는 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직사각형 모양의 뚜껑이 평평한 가방을 개발하며 크게 성공했다. 당시 가방은 둥근 모양으로 옷을 담기에도 불편하고 쌓을 수도 없었기에, 수십 개의 가방을 가지고 여행을 다니던 귀족들에게 루이비통이 개발한 가방은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장 부근에 최초의 철도선인 '파리 생 제르맹'이 건설되는 것을 지켜보며 1858년 평평한 바닥에 사각형 모양의 트렁크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를 만들었다. 유년 시절 목공 일과 패커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이 캔버스는 물건을 적재할 수 있고 가벼워, 프랑스 황후뿐만 아니라 윈저공 부부,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등 저명한 고객들이 사용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받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루이비통’의 디자인과 역사, 유명 인사들의 관련 이야기를 담아낸 트렁크들을 직접 관람할 수 있으며 전시를 통해 루즈벨트 대통령, 헤밍웨이, 샤론 스톤, 마놀로 블라닉 등 유명 인사들의 소장품들 또한 볼 수 있다.
벨지언 침대 트렁크 /김서진 기자
1900년대 제작된 이 침대 트렁크는 지친 여행객이 잠을 청할 수 있는 편안한 플랫폼을 제공했다. 1800년대 중반부터 아프리카 대륙 탐험가들에 의해 사용되었고 당시 벨기에령이었던 콩고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어 '벨지언 침대'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이 트렁크의 가장 유명한 소유자 중 하나는 프랑스의 박애주의자이자 노예제도 반대 운동가인 피에르 사보라냥 드 브라자.
존 모팻의 컬렉션 /김서진 기자
왼쪽에 쌓여 있는 세 개의 트렁크는 스코틀랜드 '석탄왕'인 존 모팻이 소장한 컬렉션의 일부다. 대부호였던 모팻은 집 주소가 없었고, 대신 파리의 더 플라자에서 몽트뢰의 더 로얄까지 전세계의 호텔에서 대부분 머물렀다. 그는 미신을 믿었기 때문에 그가 묵는 호텔 스위트룸마다 청록색으로 칠해져 있기를 원했다. 또한 항상 호텔에 지불하는 돈의 정확한 액수에도 예민했다.

그가 죽은 지 몇 년 후 120여개의 캐리어들의 그의 사유지에서 발견되었고, 대부분은 루이비통이었다.



롤스로이스와 트렁크 /김서진 기자
롤스로이스와 트렁크 /김서진 기자
이 자동차용 트렁크들은 1920년대 유명했던 자동차 제조사인 롤스로이스를 위해 주문 제작한 것들이다. 롤스로이스는 1904년 찰스 스튜어트 롤스와 프레드릭 헨리 로이스에 의해 설립됐다. 고급스러움을 무기로 빠른 명성을 쌓았으며 차량에 부착한 루이비통 트렁크만 봐도 알 수 있다.
더글러스 부인과 베르테, 그리고 루이비통 트렁크 /김서진 기자
타이타닉과 루이비통에는 두 여인의 사연이 있다. 더글러스 부인은 미국 퀘이커 오츠 회사의 설립자인 윌터 더글라스의 아내다. 1912년 부부는 자신들의 호화 빌라인 미니애폴리스에 놓을 가구를 구매하기 위해 유럽을 여행 중이었다. 빌라는 더글라스 씨가 자신의 수집품을 지하에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든 자동차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이었다.

이 부부가 타이타닉에 탑승하기 전, 그들은 매우 가난하고 젊은 여성 베르테 불라르를 만났고 미니애폴리스에서 하인으로 일할 것을 권유했다. 베르테는 그들을 따랐다. 그는 타이타닉의 2등석 승객이었고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구명보트를 타고 더글라스 부인의 곁으로 갈 수 있었지만 더글라스 씨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두 여성은 서로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베르테는 더글라스의 부인의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1924년 파리로 와 이 트렁크를 두 개 구입했다. 훗날 더글라스 부인은 임종 직전 자신의 트렁크를 베르테에게 준다.
루이스 아르너 보이드의 트렁크 /김서진 기자
이것은 북극 탐험가 루이스 아르너 보이드가 소유하고 있던 트렁크다. 1926년 북극 첫 방문 이후 그곳에 완전히 매료된 보이드는 20년 이상을 탐험했다. 그는 1955년 북극점 위를 비행한 최초의 여성이었고 언론을 그를 두고 '북극의 다이애나', '북극을 길들인 소녀'라 불렀다.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그는 대부분의 재산을 탐험 자금을 대는 데 썼다고.
여객기 안 대통령의 트렁크 /김서진 기자
1930년대 여객기 여행은 점점 더 보편화되었는데 이것은 1933년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항공기로 여행한 첫 현직 대통령이 된 덕분이라고. 그를 위한 특수 항공기가 만들어졌고 이는 훗날의 에어포스원의 전신이 된다. 나중에 해리 트루먼이 집권한 1947년 비로소 에어포스원이 대통령의 공식 운송수단이 되었다.
쿠베르탱 남작의 트렁크 /김서진 기자
올림픽과 그의 트렁크 /김서진 기자
쿠베르탱 남작으로 알려진 피에르 드 프레디는 프랑스의 교육학자, 역사학자이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창립자이다.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대회를 아테네에서 개최하고, 그후 IOC 회장으로 올림픽의 발전과 운동 추진에 일생을 바쳤다. IOC 외에도 국제 교육학회를 창설하여 스포츠와 교육의 연관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를 현대 올림픽의 아버지로 여기며 1964년부터 IOC는 올림픽 스포츠 정신의 모범이 된 선수들과 스포츠 전문가들에게 그의 이름이 새겨진 메달을 수여해 오고 있다.
메리 픽포드와 트렁크 /김서진 기자
메리 픽포드, 여우주연상을 상징하는 오스카 트로피 /김서진 기자
메리 픽포드는 무성영화 시절 최초의 영화배우 중 하나로 찰리 채플린, 루돌프 발렌티노와 함께 무성 영화의 전설이다. 그는 1910-1920년대 '미국의 스윗하트'였고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들 중 하나가 됐다.

픽포드는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필름 스튜디오와, 매년 오스카 시상식을 주관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공동 창립자였다. 그는 네 편의 유성 영화를 만들었는데, 첫 번째인 '바람둥이'에서 그는 처음으로 대사를 말했고 현대적인 짧은 헤어스타일을 선보였다.

픽포드는 이 연기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관객은 긴 곱슬머리가 아닌 메리는 원하지 않았다. 연달아 나왔던 영화들도 반응은 시원찮았고 그 후로 그는 다시는 스크린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어니스트 허밍웨이 소유의 트렁크들 /김서진 기자
도서관 트렁크는 헤밍웨이와 같은 작가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 글을 쓰지 않는 날, 투우나 심해 낚시 등이 없을 때 헤밍웨이는 독서를 했다. 그는 많은 곳을 여행했는데 그의 책들을 항상 이 트렁크에 싣고 갖고 다녔다. 트렁크에는 총 80여권의 책과 타자기를 수납할 수 있었고 숨겨진 서랍과 필수품을 위한 작은 선반이 달려 있었다. 1927년 헤밍웨이는 사파리에 가 스페인 내전에 관한 보도를 할 때 자신만의 트렁크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신발 트렁크 /김서진 기자
주디 갈랜드가 소유한 트렁크다. 이 제품은 성악가 릴리 폰즈가 갖고 있는, 36켤레의 신발을 담을 수 있었던 트렁크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 하지만 주디 갈랜드의 발 사이즈 때문에 트렁크에 그렇게까지 많은 신발을 수납할 수는 없었다고.

신발 트렁크 위에는 생전 주디가 자주 신었을 빠알간 구두가 빛을 발한다. 옆엔 그의 웃는 표정, 무표정 등 여러 모습이 멀티미디어로 재생되어 한동안 그의 모습과 단정하게 놓여 있는 구두, 그가 항상 정리했을 트렁크까지 그를 추억할 수 있는 방으로 오롯이 남아 있다.
객실 트렁크 /김서진 기자
인도 북부 알와르의 마하라자 왕의 개인 소유 가방이다. 이 거대한 부를 소유한 인도의 황족은 자신의 트렁크를 어떤 용도로 썼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엄청난 부를 가졌던 귀족이었던 만큼 트렁크 또한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저 트렁크 안에는 그가 아끼는 귀중품을 넣었을지, 아니면 의외로 평소에도 쓰는 소소한 물건들을 넣어 두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카지노 트렁크 /김서진 기자
당대 패션의 아이콘이었던 타미 힐피거가 소유한 풀세트 카지노 트렁크다. 95kg에 육박한 이 가방은 해당 컬렉션 중 새로운 버전이다. 루이비통은 도미노에서 체스까지 모든 종류의 게임에 항상 많은 관심이 있었다. 2009년 12월에 공개된 이 트렁크 속 카지노는 화석화된 상아를 이용해 만든 검은 주사위와 룰렛 공부터 조커들까지 아우르는 모든 게임 속 도박의 필수품을 하나의 트렁크 안에 집약시켰다.
시가 트렁크 /김서진 기자
말레 시가 트렁크는 천 개의 시가를 수납하기 위해 1926년 디자인된 케이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트렁크를 열면 수직으로 세울 수 있는데 서랍 위에는 탈착식 가습기가 달려 있다. 7개의 서랍은 시가를 보관하기 위한 개별 습도 유지가 가능하고 나머지 2개의 서랍에는 커터와 기타 액세서리들을 수납했다.
루이비통 보석함 /김서진 기자
19세기 보석함에는 빨간색 가죽을 덧댄 일곱 개의 서랍이 있다. 서랍들은 각각 귀걸이, 팔찌, 반지, 팬던트, 목걸이를 올려두는 쿠션, 시계, 안경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트렁크 뚜껑 아래쪽에는 브로치나 리본에 달린 핀으로 고정할 수 있도록 패드가 달려 있고 트렁크 바닥에 숨겨진 공간에는 장신구에서 빠진 보석들을 넣을 수 있다. 화려한 조명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보석들은 누구든지 마음을 빼앗기기 충분하다.
설치된 포토존 /김서진 기자
전시 관련 굿즈들 /김서진 기자
제작사 측은 "전시에 방문해 주시는 관람객분들이 금액적으로 환산된 가치보다 더 큰 감동을 얻어 가실 수 있도록, 선물 같은 시간을 선사해 드리겠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이 디자이너 루이비통의 트렁크와 이들이 상징하는 여행의 황금기를 탐험할 수 있게 꾸며져 있으며, 이번 전시회만을 위해 제작한 유니크한 오디오 가이드는 관람객의 몰입력과 만족도를 한층 더 높일 전망이다. 전시를 다 보고 나면 마련되어 있는 포토존과 루이비통 관련 굿즈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끝까지 놓치지 말자. 전시는 8월 2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