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같은 고양이를 그린 아티스트, 루이스 웨인

[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역사를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 19대 왕인 숙종은 ‘집사’였다고 한다. 궁궐에서 돌아다니던 길고양이 ‘금덕(金德)’을 애지중지했으며, 금덕이 낳은 새끼를 ‘금손(金孫)’이라고 부르며 곁에 두고 항상 보살폈을 정도다.

서양사에서도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했던 화가가 있다. 영국의 화가인 루이스 윌리엄 웨인(Louis William Wain)은 고양이를 의인화하여 익살스럽게 그리며 나름의 고양이 사랑을 보여주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1860년 영국에서 태어난 루이스 웨인은 6남매 중 첫째이자 유일한 아들이었다. 장남의 책임은 막중한데 루이스 웨인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다섯 여동생은 모두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았으며, 그중 여동생 마리는 정신이상 판정을 받고 4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루이스 웨인 / 위키미디어

그의 시련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구순열을 가지고 태어났던 루이스 웨인은 10살이 될 때까지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의사의 권유 때문이었다. 직물 무역업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런던 일대를 돌아다녔던 그는 웨스트 런던 예술학교에 입학해 공부하며, 짧게나마 교사로 활동했다고 한다. 웨스트 런던 예술학교는 영국에서 손꼽는 미술학교 6개 중 하나가 될 정도로 알려진 곳이었다.

그가 스무 살이 되던 1880년에는 아버지를 잃게 되었고, 어머니와 다섯 자매의 삶은 모두 그의 몫이 되었다. 그가 배운 것이라곤 미술이 전부였기 때문에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1881년 집을 떠나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고양이 ‘피터’

교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루이스 웨인은 그 능력 때문인지 초반부터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주간지 ‘일러스트레이티트 스포팅과 드라마틱 뉴스’라는 곳에서 4년간 활동했는데, 주로 그린 것은 동물과 시골 풍경이었다.

루이스 웨인의 초기 작품. 고양이보다는 개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 위키미디어

다양한 동물을 그린 루이스 웨인의 삽화 / flickr (Silicon Press)

영국의 시골집과 사유지, 농업전시회에서 사용되는 가축 삽화 등을 그리며 가족의 생계를 이어감과 동시에 자신의 예술 능력도 키워갔다.

그러던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는데, 무려 10살 연상의 가정교사인 에밀리 리처드슨이었다. 당시 영국의 사회적 인식으로는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듯하다. 에밀리는 여동생의 가정교사였으며 10살이나 많았기 때문이다. ‘스캔들’로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루이스 웨인은 에밀리와 결혼해 런던 북부의 헴프스테드로 이사했다. 루이스가 23살 때의 일이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에밀리는 유방암에 걸렸고 3년의 투병 생활 끝에 죽음을 맞이한다.

고양이를 곁에 두고 아꼈던 루이스 웨인 / 위키미디어

그러나 에밀리는 루이스에게 삶의 터닝포인트가 될 선물을 주고 떠났다. 그녀가 병을 앓던 어느 날, 빗속에서 비를 맞은 채 울고 있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하게 된다. ‘냥줍’을 통해 에밀리를 집사로 간택한 고양이는 ‘피터’라는 이름을 얻고, 그녀와 루이스 웨인 모두에게 위로되는 존재가 되었다.

루이스 웨인이 초기에 그렸던 고양이 그림. 사실적이다 / 위키미디어

루이스 웨인은 피터를 열심히 그리기 시작했고, 에밀리는 그가 피터를 그린 그림들이 출판되기를 권유하기도 했다. 고양이 ‘피터’에 대해 루이스 웨인은 “내 경력의 기초, 내 초기의 노력, 내 작품의 확립이 그에게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초기작 속 고양이는 피터를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고양이를 의인화시켜 그린 첫 작품인 ‘고양이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150마리의 고양이가 있는데, 대부분 피터를 닮은 고양이였으며, 초대장을 보내거나 공을 잡고 노는 모습, 연설하는 모습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그의 의인화된 고양이 작품이 시작되었다.


루이스 웨인의 시그니처, 고양이 의인화

루이스 웨인이 그린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고양이가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점이다. 의인화시켜 사람들의 행동을 비판하거나 익살스럽게 묘사해 ‘풍자’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 모습이 매우 사랑스럽기도 하다.

1910년 엽서에 그린 ‘크리스마스 장작을 가져오는 고양이들’ / 위키미디어

캐럴을 연주하는 고양이들 / 위키미디어

초기에 그린 고양이 작품은 사람처럼 두 발로 걸으면서,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생동감이 넘친다. 평소 루이스 웨인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관찰력이 뛰어난지를 느끼게 한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는 고양이들 / 위키미디어

오페라를 관람하는 고양이들 / 위키미디어

시장풍경 / flickr (Aussie~mobs)

점차 그의 고양이 그림은 발전해 사람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당시 빅토리아 시대상을 반영하듯, 옷을 입고 카드놀이를 하거나 파티를 하고, 담배를 피우거나 골프를 치는 등 다양한 모습을 그려냈다. 이런 그의 작품은 큰 인기를 얻었고, 엽서는 물론 연하장이나 풍자 삽화로 종종 쓰였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고양이 의인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노력 때문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식당이나 공공장소에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고양이로 그렸다고 한다. 다양한 모습을 그린 자신의 작품에 대해 루이스 웨인은 ‘내 최고의 유머러스한 작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담배 피우는 고양이 / 위키미디어

카드 놀이하는 고양이 / 위키미디어

골프 치는 고양이 / 위키미디어

루이스 웨인은 작품이 알려진 만큼, 30년 동안 많은 고양이 그림을 그려냈다. 1년에 수백 장을 넘어 100여 권의 동화책에 삽화를 그렸다고 전해진다. ‘루이스 웨인 연감(Louis Wain Annual)’에는 1901년부터 1915년까지 그린 작품이 실리기도 했으며, 신문이나 주간지, 잡지 등에 작품이 수차례 게재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있는 고양이 / flickr (Will)

고양이 피터로 시작된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 사랑은 단순히 작품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1898년과 1911년에 국립 고양이 클럽 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우리의 바보친구 연맹(Our Dumb Friends League), 고양이 보호협회(Society for Protection of Cats), 생체 실험 반대 학회(Anti-Vivisection Society) 등 다양한 동물 자선 단체에서도 활동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노력은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가지고 있던 ‘경멸’이라는 인식을 없애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1892년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실린 ‘우리의 예술가, 과거와 현재’ 삽화. 루이스 웨인의 모습도 있다 / 위키미디어

그러나 명성만큼 부는 따라오지 못했다. 그가 그린 삽화는 엽서로 제작되어 수백 장이 넘게 팔렸지만, 저작권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출판계에서 이용당하기만 했다. 또한, 동물을 좋아하는 만큼 순진했던 것인지 발명품에 돈을 투자해서 재산을 날리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루이스 웨인이 만든 고양이 모양 꽃병 / 위키미디어 (Auckland Museum)

예술에 대한 열망이 뛰어났던 루이스 웨인은 그림에 이어 도자기 작품까지 만들었다. 현재 오클랜드 전쟁 박물관에 전시된 꽃병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적인 녹색 몸에 주황색 발, 파란색 머리, 흰색 목으로 각각의 부분이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다. 몸통에는 X자 모양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 마치 로봇 같은 이 작품은 미래를 내다보고 만든 것이 아닐까 추측되기도 한다.


병마가 가져온 능력의 쇠퇴

뛰어난 능력을 갖췄지만, 루이스 웨인은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양이가 종숙주인 톡소포자충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된 것이 병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학자들은 그가 조현병에 걸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의 여동생도 정신병으로 세상을 떠난 가족력이 있기에 이런 추측이 이어지는 듯하다.

병원에서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 고양이 그림 / 위키미디어

고양이 그림 배경에 추상적인 이미지가 그려졌다 / 위키미디어

조현병은 그에게서 능력을 빼앗아 갔다. 1924년, 그의 폭력적인 행동을 견디지 못한 가족들이 루이스 웨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그곳에서도 그는 고양이를 그렸는데 사람 같던 고양이 그림체가 변화되기 시작했다. 괴상한 모습의 고양이를 그리는가 하면, 배경에 추상적인 이미지를 그리거나 색채가 매우 강렬하고 화려해졌다.

루이스 웨인이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으며 변화된 그림 스타일 / 위키미디어

점차 고양이의 형태는 괴상해지는 것은 물론, 추상적인 문양이 되어갔다. 나중에 심리학에서는 그의 그림 스타일이 변화된 모습을 교과서에 실으며, 조현병이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의 예로 보여주었다고 한다. 정신병으로 인해 그의 익살스러운 고양이 의인화는 끝이 났지만, 루이스 웨인은 끝까지 자신의 작품활동에 한 획을 긋게 해준 ‘고양이’만은 잊지 않았다.


그의 삶, 영화로 제작되다

오는 4월 6일, 루이스 웨인의 삶을 다룬 영화가 개봉한다.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는 엉뚱한 화가로 알려졌던 루이스 웨인에게 운명 같은 사랑인 에밀리와 고양이 피터가 찾아오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루이스 웨인 역할에는 수많은 작품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았다. 다양한 스틸컷을 보면, 그의 모습이 실제 루이스 웨인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외모뿐만 아니라 영화 예고편 영상을 보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나 고양이를 아끼는 모습 등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루이스 웨인이라는 역할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의 모습과 함께 루이스 웨인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영화가 될 듯하다.

‘괴짜 예술가’에서 ‘고양이 화가’로 알려지기까지, 루이스 웨인은 열심히, 빠르게 붓질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동물을 사람처럼 그린 화가일지 모르지만, 그에게 고양이는 삶을 바꿔놓은 생명의 은인일 것이다. 병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의 고양이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곁에 남아있을지 기대가 되면서도 아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