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램지버거, 한국에서만 파는 메뉴 먹었더니 14만 원

주간동아
주간동아2022-03-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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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 먹으러 가서 얼마까지 쓸 수 있을까. 기자가 이전까지 먹어본 가장 비싼 버거는 단품 기준으로 수제버거를 제외하면 미국 프랜차이즈 쉐이크쉑의 9300원(한국 가격 기준)짜리 ‘스모크쉑’이었다.

국내에는 참으로 많은 버거 가게가 있다. 단순히 빵과 패티를 한 번에 즐기려는 목적이거나, 탄산음료와 함께 즐길 아이템이 필요한 거라면 노브랜드버거에서 그릴드 불고기 버거를 시키면 2200원에도 먹을 수 있는 게 버거다. 그런데 지난해 말 한국에 상륙한 고든램지버거는 가장 저렴한 버거도 3만 원이 넘고, 가장 비싼 버거는 14만 원씩이나 한다.

어지간한 레스토랑 정찬이나 호텔 뷔페 가격을 씹어먹지만, 아직도 자리가 없어 못 먹는다. 대체 어떤 맛이기에? 기자가 직접 다녀왔다. ‘막입’인 기자가 ‘먹방’만 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양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이 있는 지인에게 맛을 평가해달라고 했다.
수강신청 전쟁 치르듯 예약
고든램지버거는 고든 램지의 정통 레스토랑보다 캐주얼하고, 프랜차이즈 버거 매장보다는 고급스럽다. [구희언 기자]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에 문을 연 고든램지버거는 미쉐린 스타 16개를 획득한 영국 출신 스타 셰프 고든 램지의 하이엔드 버거 레스토랑이다. 잠실점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영국 런던, 미국 시카고에 이어 전 세계에서 4번째 매장이며 아시아에서는 최초다. 지난해 12월 예약을 시작했을 때는 30분 만에 모든 타임이 마감됐고 일주일 만에 2000여 명이 레스토랑을 예약하기도 했다.

고든램지버거에서 식사하려면 현장에서 기다렸다 들어가거나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예약해야 하는데, 기자가 추천하는 건 후자다. 현장 대기 줄도 길고 자리가 언제 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약은 캐치테이블 앱에서 할 수 있지만, 3월 3일 기준으로 예약 가능한 날이 10일도 채 안 됐다. 영업시간은 매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라스트 오더는 9시다. 예약이 가능한 날도 인기 있는 식사시간대는 예약이 꽉 찼고 오후 3시, 8시, 8시 30분 등 비인기 시간대만 남아 있었다.

기자는 2월 말 이곳을 방문했다. ‘오픈빨’ 덕에 예약 전쟁이 치열할 때라 두 달치 예약이 꽉 차 있었는데, 빈자리 알림 신청을 해두고 선착순 취소표 잡기를 수차례 시도한 끝에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 매장을 찾은 이는 대부분 온라인 표 잡기에 익숙한 20대 또는 그들과 함께 온 가족이었다.

비싼 가격으로 화제가 된 ‘1966버거’는 14만 원으로 트러플(송로버섯) 파마산 포테이토 프라이즈(1만9000원)가 포함된 가격이다. 고든 램지의 출생 연도(1966)에서 따온 메뉴로, ‘헬스 키친 버거’(한국 매장 판매가 3만1000원, 미국 시카고 매장 판매가 17달러)나 ‘포레스트 버거’(한국 매장 판매가 3만3000원, 미국 시카고 매장 판매가 17달러)와 달리 오직 한국에서만 판다. ‘풍미’라는 말의 뜻을 잘 모른다 해도 한 입 베어 물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하는 맛이 나는 버거였다. 웻 에이징(wet aging) 2+ 한우 패티는 여느 레스토랑 스테이크 두께 수준이었다. 트러플 페코리노 치즈, 머쉬룸 라구와 포르치니 아이올리, 12년산 발사믹 식초가 들어갔다고 직원이 안내해줬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트러플이었다. 거의 트러플 램지 버거라고 해도 될 수준으로 트러플을 아낌없이 썼는데, 슬라이스한 트러플이 듬뿍 들었고 감자튀김에도 트러플이 듬뿍 뿌려져 진한 향을 느낄 수 있었다.
경험 사는 데 돈 아깝지 않다면
매장에서 가장 비싼 메뉴인 1966버거와 트러플 파마산 포테이토 프라이즈. [구희언 기자]
‘고든 램지’라는 이름이 붙으면 일단 가격이 오르긴 한다. 기자가 과거 런던에서 방문한 고든 램지 레스토랑의 정찬은 인당 한 끼 170유로(약 22만7000원)에 15% 부가세를 더 받았다. 가격은 타당할까. 고든램지버거의 1966버거는 함께 제공되는 감자튀김 가격을 빼면 버거만 12만1000원인 셈이다. 호텔에서 판매하는 버거를 기준으로 금액을 책정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신라호텔 더라이브러리의 숯불 그릴 국내산 한우 치즈버거는 4만4000원, 포시즌스호텔 서울 가든테라스의 클래식 베이컨 치즈버거는 3만3000원이다.

함께 온 일행은 “재료 자체만 보면 비쌀 만하다. 여기에 유명세가 더해진 금액이라고 보면 되는데, 선택은 소비자 몫”이라면서 “버거에 들어간 고기 질도 좋고, 무엇보다 트러플을 아낌없이 썼다. 블랙 트러플은 슬라이스해서 쓰는데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건 한 송이 가격만 15만~20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설명했다.

함께 주문한 ‘포레스트 버거’는 버섯 카르보나라와 어우러진 패티를 먹는 것 같았는데 1966버거를 먹고 나니 다소 심심하게 느껴졌다. 매콤하고 덜 느끼한 맛을 원한다면 할라페뇨가 들어간 ‘헬스 키친 버거’가 더 나은 선택이다. 버거 가격은 사악했지만 음료 가격은 5000원으로 그나마 다른 매장과 비슷했다. 만약 한정판 버거를 맛보고 싶은 게 아니라 고든램지버거에서 경험을 사는 걸로 만족한다면 포레스트 버거나 헬스 키친 버거에 트러플 파마산 포테이토 프라이즈를 추가하는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다. 참고로 어느 버거를 먹어도 배는 찬다.

커뮤니티에서 한동안 돌던 인기 짤 중 “아이패드의 용도는 아이패드를 가지고 싶은 마음 진정시키기입니다. 사도 유튜브 머신이 되지만 사야 낫는 병입니다”라는 것이 있었다. “고든램지버거의 용도는 고든램지버거 먹어보고 싶은 마음 진정시키기”다.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한 번쯤은 경험해볼 만한 곳” “재료값 자릿값 이름값 이 정도 가격이면 적당” “버거가 아니라 요리 한 접시 대접받은 경험” “고든램지버거 먹어봤다는 말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등은 방문자가 남긴 리뷰 중 공감 가는 내용들이다. 이 내용들에 동의한다면 한 번쯤 예약 전쟁에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 참고로 예약하고 왔어도 앉지 못해 많은 이가 궁금해하던 입구의 큼직한 구 형태 좌석은 4인 이상만 앉을 수 있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