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허할때… 차곡차곡 채워줄 ‘육칼두’

동아일보
동아일보2021-12-29 09: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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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성구 ‘유성할매국수’의 육개장 칼국수 만두가 어우러진 ‘육칼두’. 임선영 씨 제공
아름다운 것들은 스쳐간다. 올 가을의 단풍, 사랑하던 사람, 그리고 간밤의 하얀 눈. 문득 창밖을 보며 아름답다 깨달았을 때 그들은 이미 떠나가고 없었다. 새해를 맞이하며 거대한 포부와 희망을 기원하는 대신 지워지고 잊혀지는 것들에 대해 기쁘게 안녕하는 법도 배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새해는 혼밥이다. 씁쓸하지만 또 그렇게 바라던 여유도 생긴다. 혼자이지만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다. 다행히 식욕은 삶의 수레바퀴가 돼 일상을 안전 속도로 굴러가게 했다. 칼국수가 생각나고, 찐만두도 먹고 싶고, 칼칼한 육개장도 떠오를 때 찾아가는 곳이 있다.

대전 유성구 ‘유성할매국수’는 음식에 집밥의 정성이 스며있는 곳이다. 겨울에는 육개장, 칼국수, 만두가 어우러진 ‘육칼두’가 인기다. 칼칼한 육개장에 수제 칼국수와 만두를 푸짐하게 담아준다.

이곳 사장님은 아름다운 여성인데 왜 ‘할매국수’라는 간판을 달았을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칼국수를 끓일 때마다 할머니가 떠오른다고 했다. 어렸을 적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칭얼대면 할머니는 손녀가 잠이 들면 어두운 불빛 아래 숨죽여 반죽을 치대고 밀고 자르고 따스한 국물에 끓여 주셨고, 사장님은 그 마음을 잇고자 음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육칼두의 기본은 맛있는 육개장이다. 사골과 잡뼈를 진하게 우려내다가 양지와 사태를 넣고 함께 끓인다. 대파와 고사리도 푸짐하게 넣는다. 손수 만든 향신 기름은 국물을 칼칼하고도 깔끔하며 매콤하고 잡내가 없도록 만든다. 부드럽게 삶아진 사태와 양지는 든든한 고명이 되고 대파의 시원함과 고사리의 구수함이 조화를 이룬다. 직접 제면한 칼국수는 부드럽게 허기를 채운다. 반죽에 첨가제를 넣지 않고 족타 반죽 뒤 하루 동안 저온 숙성시킨다. 쫄깃함은 배가 되고, 먹고 나면 속이 편하다.

육칼두의 끝 글자를 담당하는 만두는 그야말로 이 음식의 ‘센터’다. 만두피를 밀고 만두 속을 다져내며 잎새 모양으로 빚어내기까지 과정은 대부분 수작업이다. 만두피는 반죽을 하루 정도 숙성해 얇게 빚어도 탄탄한 모양을 유지하되 먹고 나서는 소화가 잘 되도록 한다. 육칼두에는 고기만두 하나와 김치만두 하나가 들어간다. 고기만두에는 돼지고기와 두부가 든든한 영양을 주고 당면의 쫄깃함에 당근과 대파의 시원한 달콤함이 있다. 특히 마늘과 생강을 배합해 잡내가 없고 개운하다. 김치만두에 들어가는 김치도 직접 담는다. 아삭하되 칼칼하게 매운 김치가 육즙과 어우러진다. 만두는 따로 한소끔 쪄낸 후 육개장에 올려내니 모양도 맛도 오롯이 조화롭다.

사장님은 자녀가 아토피가 걸려 고생을 해 보았기에 앞으로도 건강식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한 그릇의 육칼두는 마음의 허기부터 차곡차곡 채워줬다. 얼큰한 육개장 한입에 목구멍이 열리고 칼국수는 그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국물이 촉촉하게 베인 달근한 만두를 베어 물자 떠나보낸 추억의 빈자리에 또 다른 아름다운 것들이 스며들 것이라고 믿게 됐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