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조금 더 편리하게 마시기 위해 탄생한 우연, 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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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1-12-17 17: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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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티백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최근 한 예능에서 출연자가 티백을 차에 담그는 것이 아닌 뜯어서 부어 먹는 모습이 큰 화제를 낳았다. 원래라면 티백을 거름망에 넣어 우리는 게 일반적인 모습인데 아무래도 티백을 다 뜯어 넣는 모습은 처음이라 시청자들에겐 신선하게 다가온 모양이다.

사실 차를 마실 때 티백을 쓰는 것에 정해진 방법은 없다. 거름망에 티백을 넣고 우려도 되고, 티백을 다 뜯어서 잎 그대로 우려도 된다. 인도식 밀크티는 우유에 찻잎을 넣어 끓이는 방식이며, 스콘이나 빵에도 티백 안 찻잎들을 넣어 반죽해 만들기도 하니 말이다.


우연으로 시작해 편리하게 차를 즐기는 방법이 된 티백


일반적으로 티백은 밀봉된 주머니로 만들어져 차를 우려내는 데 쓰인다. 작은 주머니 안에는 대개 찻잎, 꽃잎, 허브잎이나 향신료 등이 들어간다.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차를 만드는 방법은 찻잎을 냄비에 넣은 다음, 우린 후 그 차를 컵에 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1901년 차는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다. 차가 영국에 들어오면서 홍차가 처음으로 녹차 수요를 추월하고, 차에 우유를 넣는 밀크티의 인기도 늘었다. 19세기 들어 인도 차가 중국 차를 제치고 영국으로 많은 양이 수입되면서, 차를 마시는 습관 또한 바뀐다.
지금도 흔히 보는 티볼 /flickr
많은 사람들이 1897년 이전부터 미국과 영국의 차 중독자들을 위해 여러 특허를 출원했다고 한다. 티백은 차에 담긴, 최고의 맛을 맛보기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까지 차를 우린 후 찻잎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특히 찻잎 홀더 같은 경우는 머그잔에 쉽게 차를 탈 수 있고 티팟 또한 깨끗이 유지할 수 있다는 편리함도 있다. 세계 최초로 티백을 발명한 건 영국의 발명가 A,V. 스미스로, 찻잎을 가제에 짠 형태인 '티볼'을 발명해 특허를 취득한다.
티 리프 홀더 /unsplash
이후 1903년 미국의 발명가 로베르타 C. 로손과 메리 맥클라렌이 면 주머니에 찻잎을 넣고 접은 '찻잎 홀더'를 발명한다. 컵에 찻잎이 떠 있지 않은 상태로 신선한 차를 끓이는 방법이었다. 이들은 그동안 일반적으로 차를 끓여온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간파했고, 가장 쉬운 해결책은 차를 마실 때 커다란 냄비를 쓰는 것이 아닌 자신이 마시고 싶은 컵에 차를 끓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잎들이 차 안에 떠다니는 것은 차를 마시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나온 아이디어였다.

최초의 티백은 토마스 설리반이 1908년 티백을 발명했다는 것이 제일 유명한 이야기다. 그는 미국에서 차와 커피를 수입하는 일을 했는데, 실크 파우치에 포장되어 있는 차 샘플로 차를 끓이는 방법이 그의 고객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많았다고. 설리반은 작은 실크 파우치에 차 샘플을 넣어 고객들에게 보냈고, 고객 일부는 아예 그 파우치를 통째로 냄비에 넣는 방식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원래 그의 의도는 고객들이 주머니에서 찻잎을 꺼내 전통적인 방식으로 차를 만드는 것을 생각했는데, 그의 의도와 다르게 고객들은 주머니에서 찻잎을 꺼내지 않고 대신 냄비에 그 주머니를 통째로 넣은 것이다.
지금의 티백 /unsplash
이렇게 해서 티백이 만들어졌고, 이 발명은 우연에 가까웠다. 이후 그는 실크 대신 면 거즈로 티백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는 실크로 만들어진 그물망에 불편을 겪은 고객들의 의견을 듣고 거즈로 만든 주머니를 개발했고, 이것은 상업적인 생산을 위해 만들어졌다. 안타깝게도 설리번은 이 발명품에 대한 특허를 내지 못했는데, 티백이 전세계로 퍼지고 오늘날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 그의 개발이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처음 직물로 된 주머니는 차를 담기에는 편했지만 곧 차의 풍미가 충분히 차에 스며들 수 있는 가벼운 거즈로 바뀌었다. 거즈로 만들어졌던 이 주머니는 나중에 종이로도 만들어졌고 큰 냄비용 주머니와 작은 컵 전용 주머니로도 나뉘어져 만들어졌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주머니 측면에 매달린 끈에 장식된 꼬리표도 이때 만들어졌다. 1920년대 미국의 기술 발전은 자연스레 거즈 주머니와 포장할 수 있는 기계의 개발로 이어졌다.
티백 /unsplash
1930년대까지 거대한 포장 기계들이 하루종일 돌아가며 매일 18,000여개의 티백을 전국으로 배달했다. 곧 티백은 미국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 됐다. 당시 최초로 만든 티백을 포장하는 기계는 점점 더 발전했고, 티백에 들어갈 작은 티 입자를 만들기 위해 새 제조 방법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1930년대 만들어진 CTC 제조법으로, 찻잎을 부수고(Crush), 찢고(Tear), 말아서(Curl)차를 제조하는 방법이다. 윌리엄 맥커셔라는 사람이 발명한 이 방법은 찻잎을 잘게 부숴 말림으로써 뜨거운 물에 닿는 면적이 늘어나 짧은 시간 내 차를 우릴 수 있고 제조 시간도 원래 방식에 비해 두 배 이상 빠르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이 신비로운 제품에 열광할 동안, 차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영국인들은 차를 타는 방법에 이 티백이 쓰이는 것을 처음에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나중에 제2차세계대전의 발발은 영국의 티백 수입을 잠시 가로막았고, 1950년대에 들어서야 티백이 인기를 끌게 됐다. 1944년 영국의 유명한 테틀리에서 사각 티백을 발명했고, 이들은 분당 40여개의 티백을 만들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한 후 생산 속도를 빠르게 올렸다.
립톤 티백 /flickr
또 1952년 립톤은 '더블챔버 티백'라는, 긴 티백 종이를 반으로 접은 형태를 발명한다. 이것은 총 4면이 물과 접촉해 차를 우려내어 2면의 티백보다 더 풍부한 맛을 내 특허를 받았다. 이것은 티백의 많은 발전 과정들 중 하나였다. 당시 집에서도 찻주전자에 있는 다 쓴 찻잎들을 굳이 다 비워낼 필요가 없어 티백이 더 인기가 많았던 것도 있다.
동그란 모양의 티백 /pixabay
1960년대 초, 티백은 영국 시장에서 약 3% 정도의 비중이었지만 지금은 꾸준히 성장세를 타고 있다. 오늘날의 티백은 끈이 붙어 있는 형식으로 회사의 상표나 차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아예 동그란 티백으로 나와 면으로 된 끈이 필요 없는 것들도 있다. 동그란 티백은 머그컵에 넣고 담갔다가 티스푼 등으로 티백을 꺼내는 식이다.

일부 차 애호가들은 티백을 불호로 여기기도 한다. 티백을 담그는 과정에서 찻잎이 퍼지는 것을 제한해 맛과 영양소의 일부만을 맛볼 수 있다는 얘기다. CTC 제조법은 제한된 공간 안 찻잎을 빠르게 우려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찻잎을 자르거나 분쇄하지 않는 통잎차보다 못하다는 것. 또 티백을 생산하는 쪽은 표준화를 품질의 기준으로 보는 반면 차 애호가들은 매우 특별한 차들은 독특한 기상 조건이나 원산지의 특성 때문에 똑같은 맛이 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그래서 다양한 차의 맛, 향 등은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거의 전부이기 때문에 모든 차를 표준화시켜 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티백과 차 /unsplash
티백 한 개는 220g 정도의 머그컵의 차를 적절히 우릴 수 있다. 카페인이 들어 있다면 차의 무게도 다를 수 있고, 프리미엄 티백 같은 경우에는 일반 티백보다 약 3g 정도가 더 들어 있다고 한다. 티백마다 양도 다르니 올바르게 우려내는 방법 또한 중요하다. 차를 바른 방법으로 마시는 것은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많은 차 애호가들은 끓는 물이 담긴 냄비에 티백을 넣는 게 좋다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따뜻한 차에 티백을 타기 전 조금 더 기다렸다가 타는 방법을 권한다.

차는 따뜻한 물도, 차가운 물도 다 좋지만 한번 차에 쓴 물을 다시 끓이는 것은 좋지 않다. 아주 뜨거운 물도 좋지 않다. 자칫하면 찻잎을 태울 수도 있다고 하니, 뜨거운 물을 붓기 전 약 2분 정도 충분히 식히는 걸 권한다. 적정의 온도는 부드러운 맛을 내고 맛있는 차를 제공할 수 있다. 그린티, 얼그레이,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같은 차는 우리는 적정 시간이 따로 있으며, 일반적으로 티백을 담그는 시간은 약 2분에서 3분 정도라고 한다.

티백의 혼합물이 많다면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오래 담그면 차 맛이 진해질 수 있지만, 너무 강해도 맛이 없을 것이다. 각각의 차마다 특유의 풍미가 있을 것이고 진한 차를 너무 많이 마셔도 좋지 않다. 개중에는 티백을 재사용할 수도 있는데 최대 재활용할 수 있는 건 두 번 정도다. 첫 잔을 다 마시면 차의 맛이 약해져, 제대로 보관만 한다면 두세번은 더 쓸 수도 있겠지만 며칠이 지나면 차의 맛이 밍밍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용한 티백은 물이 담긴 컵에 담아 실온이나 냉장고에 넣어 두는 게 좋다. 보관을 해도, 몇 시간 후에 또 쓰는 게 좋다. 하루 이상 넘어가면 좋지 않고 오래 두면 상해 버린다.
다 쓴 티백도 쓸모가 많다 /unsplash
그렇다면 쓰고 버려지는 티백은 어떻게 다시 쓰는 게 좋을까. 미국의 건강 매체 웹엠디는 티백을 재활용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티백에는 카페인과 타닌이 들어 있어 눈밑의 붓기와 다크써클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티백을 쓰고 싶다면 냉장고에 넣어 식힌 후에, 약간 축축해지면 눈 위에 하나씩 올려놓고 20분 정도 놔두면 된다. 또 타닌은 염증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되며, 홍차에 특히 타닌 농도가 높다고 한다.

햇빛에 피부가 타거나 찰과상이 생겼을 때 다 사용한 티백을 따뜻한 물에 넣고 잠긴 것을 염증이 생긴 부위에 몇 분 동안 대고 있는 것도 좋다고. 녹차 티백 몇 개를 따뜻한 물로 채운 욕조에 넣고 15분에서 20분 정도 담갔다 꺼내면 피부를 진정시키는 저렴한 스킨케어 기능도 된다. 여드름이 났다면, 찻잎에 물을 붓고 반죽을 만들어 여드름이 난 곳을 2-3번 문지르고 따뜻한 물로 헹군다. 보습제까지 발라 주면 효과가 더 좋다고.

티백은 냉장고의 냄새를 없애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다 쓴 티백은 작은 그릇에 놓고 뚜껑을 덮지 않고 두면 최대 3일간은 냉장고의 냄새를 없앨 수 있다고 한다. 티백의 찻잎은 식물에게도 좋은데, 천연 비료나 곰팡이 퇴치용으로도 티백을 쓸 수 있다. 해충이 꼬일 시 쓴 티백을 흙 아래에 묻어두면 해충 방지가 될 수 있다고. 또 찻잎에는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질소가 들어 있어 식물을 기를 때 찻잎을 섞은 흙을 화분에 넣으면 새싹과 뿌리가 빨리 자란다고 한다.
차를 편하게 마시는 법, 티백 /unsplash
티백을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순면 거즈와 조리용 실, 찻잎만 있어도 된다. 누구에게 선물할 것이라면 라벨 스티커나 포장지 등 선물 느낌이 나는 준비물을 구비한다. 방법도 간단하다. 다만 찻잎을 직접 손으로 만지는 것보다 위생 장갑을 끼는 게 청결에 나을 것이다. 순면 거즈에 찻잎을 넣고 조리용 실로 조심히 묶어준 뒤에 꼭지 부분을 정리하고, 실 끝에 원하는 라벨이나 스티커, 차 이름을 단 태그를 달아주면 된다. 아니면 TV에 나왔던 대로, 옛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예 찻잎을 냄비에 넣고 우려 찻잎 동동 띄운 차를 즐겨도 된다. 차를 즐기는 것에 정답은 없으며, 티백은 차를 즐기는 것을 조금 더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유용한 방법으로 일상에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