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금 사는 동네엔 10년 전, 그러니까 신혼살림을 차리면서 처음 와봤다. 모든 게 낯설었는데 가까이 사는 선배 부부가 여러 면에서 동네 생활 길잡이가 돼주셨다. 그러다 윗집 아기 엄마와 친해져 단둘이 맥주 한 잔 나누는 이웃이 됐고, 그 뒤엔 막역한 친구가 버스 세 정거장 거리로 이사 와 틈날 때마다 만나 수다를 떨었다.
같이 먹어야 더 맛있는 닭볶음탕
며칠 전 남편과 동네 식당에 가서 닭볶음탕을 먹었다. 양이 많은 요리는 대체로 ‘대, 중, 소’로 나뉘는데 여기는 ‘대, 중’만 있다. 작은 걸 시켜도 둘이 먹기엔 버거운 양이다. 걸쭉하고 매운 국물에 닭고기 살과 푹 익은 감자를 적셔 부지런히 먹으며 동네 친구들을 떠올렸다.
선배 부부는 직장 때문에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윗집 아기 엄마는 타국으로 이민을 갔고, 막역한 친구는 회사를 옮기는 바람에 별을 보고 출퇴근하는 신세가 됐다. 전엔 다 같이 둘러앉아 닭볶음탕을 먹던 사람들이다. 사장님 솜씨가 좋아 둘이 먹어도 맛있지만, 여럿이 먹을 때가 더 얼큰하고, 진국 같고, 분주해 입맛이 돋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선배 부부는 직장 때문에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윗집 아기 엄마는 타국으로 이민을 갔고, 막역한 친구는 회사를 옮기는 바람에 별을 보고 출퇴근하는 신세가 됐다. 전엔 다 같이 둘러앉아 닭볶음탕을 먹던 사람들이다. 사장님 솜씨가 좋아 둘이 먹어도 맛있지만, 여럿이 먹을 때가 더 얼큰하고, 진국 같고, 분주해 입맛이 돋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커다란 냄비를 가운데 두고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운 요리가 있다. 각종 햄과 소시지, 통조림 콩, 두부, 납작한 떡 등을 빙 둘러 담아 주는 부대찌개도 그렇다. 어떤 식당은 넓은 전골냄비에 국물 자작하게 부어 여유롭게 담아주고, 어떤 곳은 아담하고 납작한 냄비에 넘치도록 재료를 수북하게 올려 낸다. 희한하게도 모든 재료가 푹 익어 어우러지고 나면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냄비에 찰랑찰랑, 딱 먹기 좋게 국물이 보글거린다.
김치를 넣으면 칼칼하고, 치즈를 올리면 고소하고, 중간에 라면을 넣으면 국물 맛이 또 달라진다. 한창 잘 먹을 때는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 먹은 다음에야 숟가락을 놓았다. 부대찌개는 자리에 따라 밥반찬이 되고, 술안주로도 좋으며, 해장으로는 더없이 알맞다.
김치를 넣으면 칼칼하고, 치즈를 올리면 고소하고, 중간에 라면을 넣으면 국물 맛이 또 달라진다. 한창 잘 먹을 때는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 먹은 다음에야 숟가락을 놓았다. 부대찌개는 자리에 따라 밥반찬이 되고, 술안주로도 좋으며, 해장으로는 더없이 알맞다.
곱창전골을 먹는 시간은 부대찌개 때보다 조금 느리게 흐른다. 식당 주방에서 한소끔 끓여 오지만 식탁 위에서 조금 더 익혀 맛내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 밥상은 이런 점이 참 재밌다. 주방장 손을 떠난 음식에 생생한 채소 고명을 얹어 내면, 식탁 위에서 저마다 불을 다루며 더 끓인다. 진하게 뒀다가, 이때다 싶을 때 맑은 육수를 더 부어 새로 또 먹기도 한다. 깨끗하게 손질한 곱창에서는 구수한 맛과 기름진 풍미가 우러난다. 쫄깃한 곱창과 채소를 건져 먹은 뒤 우동이나 칼국수처럼 굵은 면발을 넣어 곱이 스며든 국물을 마저 먹는 맛이 좋다.
‘오디오’가 빌 틈 없는 샤브샤브 식탁
곱창전골의 친척뻘인 ‘낙곱새’는 조금 더 발랄하다. 곱창에 작게 썬 낙지, 자잘한 새우를 넣고 칼칼한 양념을 풀어 국물이 자작하도록 끓여 먹는다. 식당에 따라 햄, 소시지, 떡, 치즈 같은 토핑을 선택할 수 있는 곳도 있다. 건더기를 퍼서 밥에 올려 비비 듯 먹다가 마지막엔 밥이 찌개 냄비로 들어가 달달 볶아지기 일쑤다.
집에서 여럿이 둘러 앉아 먹는다면 배부르게는 만두전골, 술 마시기는 어묵탕, 반주 정도에는 간장국물 자작하게 볶아 먹는 스키야키 같은 게 편하다. 재료와 국물을 준비해두면 누구 한 명 엉덩이를 들썩거리지 않고 다 같이 차분히 앉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중에도 채소와 고기를 바로바로 익혀 먹는 샤브샤브가 좋다. 고기며 채소, 어묵, 떡, 두부와 곤약을 넣고 익을 때마다 서로 떠 주고, 같이 떠먹는 음식. 누군가 재료를 우루루 넣으면 누구는 뒤집고, 누구는 건져서 남의 그릇에 담아 준다. 손이 바빠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고,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하느라 이른바 ‘오디오’가 빌 틈이 없다. 대단한 걸 내어주지는 못해도 고기 한 점, 말랑하게 익은 배춧잎 한 장 친구 그릇에 놓아주고 나눠 먹는 마음과 시간은 얼마나 뜨끈한가.
#닭볶음탕 #곱창전골 #부대찌개 #낙곱새 #샤브샤브 #신동아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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