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천으로 포장된 개선문, 60년 걸린 대지 예술가의 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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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1-09-28 15: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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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 자바체프&잔 클로드 부부 작품…10월 3일까지 공개
[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에펠탑 다음으로 파리에서 유명한 건축물은 개선문이다. 보통 개선문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사를 환영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문 형태의 건축물로, 우리나라의 독립문 외에도 여러 나라에 존재한다. 유독 유명한 개선문이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이다.
포장된 개선문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그런데 현지 시각으로 지난 12일부터 에투알 개선문이 천으로 감싸지기 시작했다. 개선문 보수공사라도 하는가 싶었지만, ‘설치미술 작품’이란다. 저런 대형 건축물을 감싸는 예술도 가능하다니, 다시금 무궁무진한 예술의 범위와 생각지도 못한 도전에 놀라웠다. 과연 이 예술을 시도한 이는 누구일까.

‘대지 예술가’로 통하는 크리스토 자바체프가 1961년부터 아내 잔 클로드와 함께 구상해 온 ‘포장된 개선문(L'Arc de Triomphe, Wrapped)’이 60여 년 만에 현실에 나타났다.


나폴레옹의 전리품 같은 에투알 개선문


현재 파리 샤를드골 광장 중심에서 웅장함을 뽐내는 에투알 개선문은 1806년 나폴레옹 1세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앞서 언급한 개선문의 사전적 정의처럼, 나폴레옹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하고 그를 기념하기 위함과 동시에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에투알 개선문 / pixabay
개선문 아래에는 전쟁에서 승리했던 전투의 이름과 지휘관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자신이 만들라고 지시한 개선문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개선문은 1833년에 완공되었고, 나폴레옹은 1821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810년에 마리 루이즈와 함께 파리로 들어올 때, 목재로 모양을 낸 임시 개선문만 보았다고 한다.
장 샬그랭이 에투알 개선문 설계 시 참고한 로마 티투스 개선문 / filckr (Alessio Nastro Siniscalchi)
왼쪽은 로마 티투스 개선문, 오른쪽은 파리 에투알 개선문 / filckr (Alessio Nastro Siniscalchi), pixabay
개선문은 건축가 장 샬그랭이 설계했다.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고, 국민에게 애국심을 심어주기 위해 신고전주의를 택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참고한 것이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이다.

티투스 개선문은 현존하는 개선문 중에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로마의 개선문과 파리의 개선문은 무척이나 닮아있다. 반대로 파리 에투알 개선문을 본떠 만든 것이 평양의 개선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선문의 저주인 걸까. 건축을 지시한 나폴레옹처럼 설계를 했던 장 샬그랭도 끝을 내지 못하고 1811년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장 니콜라스 후요트가 계승해 완성했다고 한다.
승리한 전투명이 새겨진 에투알 개선문 / flickr (moppet65535)
개선문 아래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 / 위키미디어 (Zairon)
개선문의 높이는 50m, 너비는 45m, 깊이는 22m다. 하지만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몇 번씩 훼손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프랑스가 치열하게 벌였던 베르됭 전투 때는 개선문 조각상이 들고 있던 칼이 부러졌으나, 그 후 바로 보수작업을 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19년 8월 7일에는 찰스 고드프로이가 비행기를 몰아 개선문을 통과한 일도 있었다. 1960년대에는 배기가스와 매연으로 개선문이 더럽혀지자, 1965년 청소작업을 했다고 한다.

가장 최근인 2018년에는 유류세, 자동차세 인상 등 조세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인 ‘노란 조끼 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개선문을 중심으로 시위가 진행됐는데, 무명용사의 묘가 훼손되고, 내부 조각상이 부서졌다고 한다.


재활용 천으로 ‘포장된 개선문’

수많은 세월을 견딘 개선문이 이번엔 포장되었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18일 대중에 공개된 ‘포장된 개선문(L'Arc de Triomphe, Wrapped)는 10월 3일까지 16일 동안 전시된다.

개선문을 포장하고 있는 천은 재활용이 가능한 폴리프로필렌 직물로, 25,000㎡에 달한다. 평수로 따지면 약 7562.5평이다. 은색의 직물과 3,000m의 붉은 밧줄이 어우러져 현재의 모습을 만들었다.
포장된 개선문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이 대형 프로젝트는 프랑스 정부와 파리시가 협력하여 실현됐다. 구상에서 실현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60여 년. 이 작품을 만든 이들은 설치미술가자 대지 예술가로 통하는 크리스토 자바체프와 그의 아내인 잔 클로드다.
포장된 개선문 스케치를 하는 크리스토 자바체프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부부는 공공장소에서 예술작품을 만들었는데,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가 공공건물을 포장하는 것이었다. 개선문을 포장하기 전에도 1985년에는 파리 퐁네프 다리, 1995년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을 천으로 감싸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프로젝트의 마지막이자 유작의 대상이 ‘개선문’인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크리스토 부부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얻었던 집이 개선문 근처였다. 그렇게 매일 개선문을 보면서 그 매력에 빠졌다고 전해진다. 그 열정은 마침내 개선문 포장 스케치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62년 포토몽타주(위)와 1988년 스케치(아래)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그도 이렇게 오래 걸리리라 생각했을까. 작품의 히스토리가 60년이나 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1961년 스케치를 하고, 1962~1963년에는 포토몽타주를 만들었다. 1988년에는 연필, 천, 실, 파스텔, 목탄, 왁스 크레용 등으로 스케치를 본격화했다.
엔지니어링 점검을 하는 크리스토(오른쪽에서 두번째)와 프로젝트팀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작업실에서 스케치를 들고 있는 크리스토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해를 거듭하면서 2017년 파리에서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개선문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포장된 개선문’을 완성하기로 결정한다. 2018년에는 개선문 관리를 담당하는 국립기념물센터의 필립 벨라발 회장과 크리스토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프로젝트에 대해 발표한다.
‘포장된 개선문’의 은색 천과 붉은 밧줄 / pixabay
2019년 1월 마크롱 대통령이 프로젝트를 승인했고, 같은 해 4월 정부에서도 허가를 낸다. 크리스토는 전문가들과 함께 개선문에 설치할 수 있는지 기술적 점검을 했다. 그 과정에서 실물 크기 테스트를 진행했고, 직물과 밧줄의 색깔, 크기와 양, 설치 방법 등을 결정했다. 지금의 은색 천과 붉은 밧줄도 이때 정해진 것이다.
독일 뤼벡에서 만들어진 폴리프로필렌 직물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2020년부터는 개선문을 감쌀 천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천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활용이 가능한 폴리프로필렌이다. PP라는 약자로 불리는 폴리프로필렌은 지금도 포장, 섬유, 필름, 자동차 부품, 용기, 의료용품 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천은 독일 뤼벡에 있는 geo - Die Luftwerker에서 만들어졌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프로젝트는 원래 2020년 4월에 완성될 예정이었으나, 황조롱이 보호를 위한 조류 보호 연맹의 요청으로 2020년 9월로 연기되었다. 이후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한 차례 더 연기가 되었다.
2019년 실물 크기 테스트를 지켜보는 크리스토 자바체프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이렇게 전시 준비와 연기가 반복되던 2020년 5월, 작품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크리스토 자바체프는 뉴욕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개선문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하던 아내 잔 클로드는 이미 2009년 타계해 전시가 중단될 위기였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 했던가. ‘포장된 개선문’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크리스토의 뒤를 이어, 그의 조카인 블라디미르 자바체프와 프로젝트팀이 함께 전시 준비를 이어갔다.
구조물이 설치되는 개선문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코로나바이러스로 연기되었던 전시는 올해 6월부터 본격 설치 준비에 들어갔다. 은색 천을 감싸줄 붉은 밧줄은 독일 브레멘의 글라이슈타인이라는 회사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과 함께 설치 교육이 진행되고, 7월에는 개선문에 구조물과 안정기가 설치됐다.
개선문 내부와 외부를 천으로 감싸는 모습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완성된 작품은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다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8월부터는 천으로 개선문을 감싸기 위한 작업이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됐다. 개선문 내부를 비롯해, 외부까지 약 한 달여가 걸렸다. 구조물 설치부터 천을 펼치는 것까지 가리지 않고 진행되어 일상 속에서 작품 설치부터 완성까지 모두 관람할 수 있었다.

이 역시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뜻이었다. 작업을 주도한 크리스토의 조카 블라디미르 자바체프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부에게 예술은 모든 사람이 무료로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생각을 전 세계와 누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밤에 본 ‘포장된 개선문’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9월 18일 완성되어 대중에게 공개된 이번 프로젝트에는 1,400만 유로가 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194억 원에 달하는데, 이 엄청난 금액은 모두 크리스토 부부의 작품 판매액으로 부담했다고 한다.

60여 년 만에 완성된 부부의 프로젝트는 대중들 뿐만아니라 전시에 참여한 전문가들에게도 감동을 준 듯하다. 컨설팅 엔지니어인 빈스 데이븐포토는 “크리스토, 잔 클로드와 함께 일할 때 흥미로운 부분은 이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다시는 하지 않을 무언가를 디자인하고 구축한다는 것이다. 모든 프로젝트는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포장된 개선문 실시간 모습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 유튜브 (youtu.be/vnVnFT4aG7w)
10월 3일까지 16일간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다.



포장예술에 진심인 크리스토 & 잔 클로드

크리스토 자바체프와 잔 클로드는 ‘포장’을 예술 표현의 수단으로 삼은 부부였다. 이들이 예술가로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같은 해인 1935년 태어났고, 생일도 6월 13일로 같다.

크리스토 자바체프는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대지 미술가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줄곧 공부하던 크리스토는 1958년 파리로 건너가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람이든 오브제든 가리지 않고 포장했다.

그때 아내인 잔 클로드를 만났다고 한다. 잔 클로드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예술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외향적인 성격으로 그의 남편인 크리스토의 작업에 자금 조달을 책임졌을 정도로 적극적이었으며, 남편이 제안해 머리를 빨간색으로 염색했을 정도로 예술가적 성향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토 자바체프, 잔 클로드 부부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결혼 후 이들 부부는 1961년부터 공공건물을 포장하는 예술을 추구하고, 구상한다. 1962년에는 동독과 서독의 경계에 만들어진 베를린 장벽을 반대하는 의미를 담아 휘발유 통 204개를 파리 비스콩티 거리에 전시했다. 거의 도로를 점령하듯 막았다고 한다.
파리 골목길에 설치한 석유 배럴의 벽 – 철의 장막(1961~1962)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 인스타그램 @christojeanneclaude
포장된 퐁네프 다리를 배경으로 크리스토&잔 클로드 부부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1964년 뉴욕으로 이주한 후에는 시드니 해안, 마이애미 섬,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등을 감싸기 시작했다. 포장을 통해 예술을 표현하는 범위가 점점 확대된 것이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포장하는 행위를 통해 기존의 것을 새롭게 혹은 낯설게 바라보도록 했다.

눈으로 보이던 것이 포장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차이라던가, 그 건축물이나 장소의 형태와 조건, 그 안에 담긴 정치‧사회‧경제적 논리 등을 보게 한 것이다. 마치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것처럼 말이다.
콜로라도 산비탈에 설치된 벨리 커튼 (1972). 28시간이 걸려 완성했지만, 강풍으로 인해 바로 제거했다 / 위키미디어
이들 부부는 예술에 진심이었다. 보통의 예술가가 작품 전시 등을 하려면 후원을 받기도 하는데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그런 후원을 거부하고, 작품에 드는 비용을 모두 자비로 마련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예술의 상업화를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더욱 자유로우면서 거대하고 참신한 설치미술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크리스토가 감싼 레오나르도 다빈치 기념비 (1970) / 위키미디어
뉴욕 센트럴파크에 전시되었던 ‘문(1979)’ / 위키미디어 (Morris Pearl)
또한, 함께 작업하는 이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생전 잔 클로드는 “우리 가족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미술품 수집가, 변호사, 엔지니어, 노동자, 우리 삶과 관련된 사람들이 포함된다. 사실 크리스토와 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21시간이지만 예술은 우리의 삶이고 우리는 단순히 살기 때문에 일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자신들은 삶 자체가 ‘예술’이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지만, 자신들과 함께 작업을 돕는 이들은 일을 하기 때문에 ‘가족’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떠 있는 교각(2014~2016). 이탈리아 이세오 호수 위에 펼쳐진 주황색 폴리에틸렌 튜브가 크리스토의 작품 / 위키미디어 (-jkb-)
우산(1984~1991). 일본과 미국의 삶의 방식과 토지의 유사성을 고려해 설치한 작품이다. 사진은 일본에 설치된 작품 / 위키미디어 (Dddeco)
광대한 자연을 캔버스 삼아 작업한 것도 이들 부부의 철학이 담겨있다. 크리스토 자바체프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혼자 작업하는 숭고한 예술가의 아이디어는 비교적 현대적인 아이디어다. 예를 들어 천 년 전의 위대한 예술가인 마야인은 자연 환경에서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스튜디오, 그것은 예술가에 대한 제한된 부르주아적 개념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런던 마스타바(2016~2018) / 위키미디어 (David Hawgood)
그만큼 예술의 범위를 폭넓게 바라본 것이다. 물론 요즘은 큰 조형물을 만드는 미술가도 많지만, 그 옛날부터 산이나 해변, 호수, 공원, 도로 등에 무언가를 크게 설치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런던 하이드 파크의 서펜타인 호수에 설치한 ‘런던 마스타바(London Mastaba)’를 보면 사람의 한계를 이렇게 뛰어넘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은 7,506개의 석유통으로 만들어졌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된 무덤의 형태인 마스타바를 참고해 만들었는데, 높이는 20m, 무게는 600톤에 달한다. 물 위에 석유통을 띄운다는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왠지 간혹 생기는 석유 누출 등의 환경 문제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석유와의 작별을 희망하며 석유통의 무덤을 만든 듯하다.
포장된 개선문 /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christojeanneclaude.net)
크리스토 자바체프와 잔 클로드 부부의 작품을 보면서, 포장을 뜯기 전 선물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설렘을 느꼈다. 포장되기 전에는 그저 유명한 건축물에 불과했던 개선문도 색다르게 보이고, 포장이 제거된 후에는 어떤 느낌을 줄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선물 포장도 정성스럽게 하고, 함부로 뜯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포장도 ‘예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