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없어도 모레가 있는 것처럼

신동아
신동아2021-09-13 15: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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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만 해도 한집에 다른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집도 지붕과 마당을 ‘재희네’와 함께 쓰며 살았다. 두 집 모두 개를 키웠다. 밤 기온이 제법 쌀쌀해지는 늦가을 무렵이었다. 재희 아버지는 어디선가 짚단을 가져와 새끼를 꼬아 줄을 만들고 새끼줄을 바닥부터 엮어 올려 개가 들어갈 구멍만 남기고 개집을 완성했다. 개는 집이 마음에 들었는지 꼬리를 흔들며 구멍으로 들락날락 분주했다.

개집이 생기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재희네가 소란스러웠다. 며칠 개가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하더니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했다. 주인 없는 개집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주인을 잃은 재희네 개집은 우리 집 개가 쓰게 됐다. 재희네 개의 불행과는 별개로 우리 집 개가 푹신한 개집을 쓸 수 있어 마음이 흡족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우리 집 개가 밥을 먹지 않았다. 평소 그렇게 좋아하던 기름진 음식을 줘도 입도 대지 않았다. 어머니를 졸라 개를 읍내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개를 진찰하던 수의사는 “자신은 주로 소를 진료해서 개의 질병은 잘 모르지만 개끼리 전염되는 질병 같다”고 했다. 병원을 다녀오느라 기운을 빼서인지 집에 돌아온 개는 아예 일어서질 못했다. 한밤중이 되자 개는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했다. 결국 마지막 숨을 쉬고 난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어린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굳어가는 몸을 풀어보려 밤새 주무르는 것뿐 이었다.
죽음 앞에서 이어지는 삶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유도 모르고 죽는 동물을 줄이고자 수의사가 됐다. 역설적이게도 동물을 진료하는 일을 하게 되자 더 많은 동물의 죽음을 목도하게 됐다. 1년여간 도청 소속 공무원으로서 도축장의 검사관으로 일한 적도 있다. 검사관은 도축 전후의 소나 돼지가 질병이 없는지 도축 과정이 위생적인지 판단하는 일을 한다.

각기 다른 농장의 돼지가 한 차에 섞여 도축장에 오는 일이 간혹 있었다. 움직이는 차에서는 조용히 지내다가 도축을 기다리는 계류장에 내려놓으면 각 농장에서 온 돼지들끼리 영역 다툼을 벌였다. 죽음을 앞두고 있어 부질없어 보였지만 돼지에게는 살아 있기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소는 큰 눈만큼이나 겁이 많아 보였다. 차에서 낯선 계류장으로 들어오기까지는 언제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처음만 어려웠다. 계류장에 들어선 후로는 앞 소와 벌어진 간격을 스스로 좁힌다.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가끔 ‘절박도살’ 대상이 된 동물도 있었다. 절박도살은 질병이 아닌 부상당한 소에 한해서 긴급하게 도축할 수 있는 제도다. 분만이 다가온 암소가 다리가 부러진 채로 실려 온 일이 있었다. 다리가 부러졌으니 암소는 절박도살 처분을 받게 됐다. 문제는 죽음을 앞둔 암소 뱃속의 새끼였다. 새끼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암소가 살아 있는 동안 배를 갈라 새끼를 꺼내는 것밖에 없다. 배가 갈라지고 새끼가 양수와 함께 흘러나오자 어미 소는 짧게 한번 울었다. 송아지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자 도부는 끝이 뾰족한 해머로 어미 소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수많은 죽음 속에서 생은 이어졌다.

동물원 수의사로 일하게 된 뒤에도 수많은 동물의 죽음을 목도했다. 동물의 수명이 20년 정도로 짧기도 하지만 동물원에 사는 동물의 특성 탓도 있다.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은 가축이나 반려동물과는 달리 야생성을 유지하며 산다. 동물들의 건강 체크도 정기검진보다는 행동을 보고 어림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상 증상이 발견된 동물을 진단해 보면 병이 꽤나 진행돼 있는 경우가 많다. 손쓰기도 전에 동물이 세상을 떠나는 일도 적잖다. 어느 날은 출근하자마자 늑대가 죽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담당 사육사에게 들어보니 늑대는 전날 준 닭고기도 다 먹었고 움직임도 별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죽어서도 드러내지 않은 통증
정확한 사인을 알아보기 위해 늑대를 부검대에 올렸다. 인내심 강한 늑대는 죽는 순간의 고통만은 참을 수 없었던 듯 이빨 사이에 자신의 혀를 강하게 물고 있었다. 늑대의 몸을 열었을 때 멀쩡한 장기가 거의 없었다. 심장은 근육이 너덜너덜했다. 한마디로 심장이 터져 있었다.

반달가슴곰 ‘반순이’는 오래전부터 동물원에 있었던 동물이다. 어느 날 다리를 끌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멘트 바닥에 발바닥이 쓸려 급기야는 발가락뼈가 보이기 시작했다. 원인을 찾기 위해 인근 대학동물병원으로 MRI를 찍으러 갔다. 다리를 끄는 원인은 척추신경의 문제였다. 많은 나이라 긴 마취와 수술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일단 동물원으로 다시 데리고 와서 마취를 깨웠다. 반순이는 얼마 전 웅담 채취 농장에서 구조해 온 다른 곰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성치 않은 몸으로도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자 다른 곰들에게 자주 경고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 발짝 걸음도 힘들어했다. 결정을 해야 했다. 안락사가 예정돼 있는 날이 왔다. 반순이가 좋아하는 과일이며 견과류를 충분히 쏟아주었다. 반순이의 마지막 하루가 저물 때쯤 반순이를 내실로 불러들여 마취 주사를 쏘았다. 잠시 후 반순이는 땅에 누어 느린 숨을 규칙적으로 쉬었다. 긴 막대기로 찔러 반순이가 완전히 마취된 것을 확인했다. 반순이에 대한 기억과 마지막 인사를 편지로 대신했다. 혈관에 안락사 약물을 주입했다. 동물이 죽는 모습은 수도 없이 봤지만 익숙해지질 않는다. 옆에 있는 직원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동물이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이유
동물은 죽기 직전까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 마치 내일도 눈을 뜰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것처럼 매일 최선을 다해 견딘다.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을 몰라서 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 노화 등 확실한 죽음이 예정된 상황에도 동물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어떤 동물은 마지막 힘을 쏟아 새끼를 낳고, 어떤 동물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러 나선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죽음에 이르는 통증을 숨기는 일도 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삶에 집착하기보다는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동물들에게 매일은 중요한 것일 수 있다. 동물들은 죽음 뒤에 남길 것이 없음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이며 하루라도 더 의미 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이 같은 생각을 하며 오늘도 우리 집 개 ‘둥이’의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준다. 둥이는 밥그릇이 닳도록 열심히 밥을 먹는다.

김정호 청주동물원 수의사·‘코끼리 없는 동물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