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극, 나를 가리면 가릴수록 새로운 세상이 보여요”

동아일보
동아일보2021-08-31 11: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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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디셀러 가면극 ‘소라별 이야기’10주년… 백남영 연출가 인터뷰
모두가 마스크를 쓰는 요즘, 이들은 마스크를 하나 더 얹었다. 가면을 쓰면 상대의 눈동자도 보기 힘들다. 그 대신 이들은 남들과 다른 걸 느낀다. “나를 가리면 가릴수록 새로운 세상과 환상이 보인다”고.

창작 집단 ‘거기 가면’의 스테디셀러 가면극 ‘소라별 이야기’가 다음 달 9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공간아울에서 관객과 만난다. 작품은 올해로 10주년을 맞는다. 국내 연극계에 이토록 오래 이어진 가면극은 없었다. ‘연극계의 변방 중의 변방’이라는 가면극을 붙잡고 지금껏 이끌어 온 이는 백남영 연출가(53·중앙대 연극학과 교수). 그를 25일 대학로 중앙대 공연예술원에서 만났다.

백 연출가는 “배우는 본래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만 가면극에선 감추는 게 우선이다. 이 작품을 왜 하는지 매번 공연마다 고민하는데, 나를 가림으로써 자신을 더 드러내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극계의 다양성을 지키는 의의도 있다”고 털어놨다.

‘소라별 이야기’는 주인공 동수 할아버지가 11세 동심으로 되돌아가는 시간여행을 그렸다. 시골 개구쟁이 4총사와 서울에서 온 소녀의 순수한 사랑, 우정, 이별을 담았다. 2011년 중국 베이징의 중앙희극학원(중국국립연극대학) 실험극장에서 열린 ‘세계연극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이며 기립박수를 받았고 이후 독일 신체연극 축제 등에도 초청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백남영 연출가가 여러 작품에서 사용하는 가면들 한가운데에 앉았다. 그의 아내인 이수은 마스크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했다. 백 연출가는 “가면극 시리즈로 ‘더스리’ ‘더포’ ‘더파이브’까지 이어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 작품에서 배우들은 반(半)마스크를 착용해 입과 하관만 보인다. 배우들은 일반극보다 훨씬 과장된 몸짓으로 연기한다. 백 연출가는 “가면극은 100% 비사실주의 연극이다. 흔히 ‘철판 깐다’는 말처럼 배우는 내면에 있는 감정을 더 뻔뻔하게, 과장해서 표현하고 관객은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초연과 크게 달라진 건 없으나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 거친 대사나 장면을 소폭 수정했다.

백 연출가는 가면극 배우이기도 하다. 2009년 국내서 처음으로 논버벌 마스크 연극 ‘반호프’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2019년에는 1인 가면극 ‘더원’을, 지난해에는 2인 가면극 ‘더투’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가 가면에 심취한 때는 1997년 신체극을 배우러 떠난 독일 폴크방예술대 대학원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식 공연장도 아닌 작은 펍에서 배우 두 명이 나와 말 한마디 없이 가면만 바꿔 쓰고 수십 명의 인물을 연기했어요. 연극은 대사가 중심인 청각적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그 편견이 와장창 다 깨졌죠.”

마음속에 ‘가면’을 늘 품고 있던 그는 귀국 후 여러 시도를 해봤다. 하지만 한국에선 “가면을 왜?”라는 물음만 나왔다. 가면을 처음 접한 이들이 “가면이 한국 얼굴이 아니네? 좀 이상하다”고 하면 그는 “무대에서 가면이 잘 보이려면 입체적으로 제작하느라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마침내 2009년 뜻이 맞는 동료들과 ‘거기 가면’을 직접 창단한 뒤 꾸준히 가면을 쓴다. 그는 “가면 쓰고 연기하면 땀이 흥건하다. 종이 재질이라 매번 드라이어로 잘 말려서 모셔놓는 게 일이다. 극단에서 가면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며 웃었다.

작품을 접한 관객들은 “참 좋다” “상업적이지 않아 더 좋다”는 반응을 보인단다. 그는 “변방에 물러나 있는 가면극을 조금은 중심부로 밀어보고 싶다. 배우와 마스크가 만나는 순간 창조되는 제3의 인물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전석 3만 원,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