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다홍치마! 예쁜 책을 사는 사람들

핸드메이커
핸드메이커2021-08-23 10:36:21
공유하기 닫기
감성적인 분위기를 담은 최근의 책 표지 디자인
에세이, 시 출판에서 일러스트가 강세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자신의 취미를 ‘책 사기’라고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독서보다도 책을 쇼핑하는 것을 즐기고, 무엇보다 ‘예쁜 책’을 사고 싶어 한다. 읽으라고 출판된 책을 왜 모으고만 있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을 수 있으나, 사실 큰 문제는 없다. 독서란 본래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다.

예쁜 책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출판 트렌드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과거 책을 가독성 높게 출판하는 것만이 목표였다면 최근엔 책 표지 디자인에도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대별로 책 표지 디자인의 트렌드가 존재한다는 것 역시 매우 놀라운 점이다.
/Leah Kelley, Pexels
책은 단순히 읽기만 하는 객체에서 외형적인 요소 또한 고려되고 있다. 이는 아무래도 소비자들의 책 소비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예쁜 책을 사는 그만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책 표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책 표지, 예술성을 담다

19세기 기술의 발전으로 책의 모습은 변화하게 된다. 그전까지 책은 대부분 손으로 만든 물건에 해당했으나 이를 기점으로 대량 생산 제품으로 변화했다. 손으로 만든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던 책은 인쇄술의 발전을 통해 책을 소개하는 기능까지 가지게 되는데 이는 공예적인 접근으로 볼 때 매우 큰 변화에 해당한다.

책이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변모하기 전에는 하나의 독자적인 장식 요소를 띄고 있었다. 책을 보호하기 위해서 직물 등 고가의 재료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화려하고 장식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하지만 단순히 책을 보호하고 아름다운 장식이라는 외형적인 기능을 할 뿐 책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진 않았다.
Captain Davis Dalton. How to Swim. New York and London: G. P. Putnam's Sons, The Knickerbocker Press, 1899 ⓒThe art of book cover(1820-1914), publicdomainreview
Thomas Smith and J.H. Osborne. Successful Advertising: It’s Secrets Explained. London: Smith’s Printing, Publishing and Advertising Agency, 1897 ⓒThe art of book cover(1820-1914), publicdomainreview
사실 과거 책 표지가 장식적 요소가 됐던 이유는 따로 있다. 현대엔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지만 과거엔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됐다. 또한 주로 종교적인 성격을 가진 책이 많이 제작됐고 이런 책들은 당시 매우 귀하고 신성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현대와는 다르게 고가의 재료가 책을 만드는 과정에 사용됐는데 금사와 은사를 섞어서 자수를 넣기도 했으며 보석, 상아 등으로 장식한 책들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삶의 장면이 있는 상아 책 표지. Ivory book cover with scenes from the life of Christ, 800년 경. /Bodleian Library,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가죽과 도장과 금으로 제작. Book Cover. 16세기 후반. /Museum Kunstpalast,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제본 기술이 등장하고 책 표지는 더이상 예술성을 담은 공예 분야로 분류하진 않지만, 이는 또 다른 예술 세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더 실용적이고 값이 저렴한 재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과거처럼 공예적인 특성을 띠지 않으나 책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일러스트 디자인 등 새로운 예술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 분야가 됐다.


최근 국내 책 표지 트렌드라 할 수 있는 ‘감성적인 일러스트’

처음 소비자가 책을 구매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부분은 책의 외형에 해당하는 ‘책 표지’다. 단순히 책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현대에는 그 기능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제 책 표지는 책을 설명하는 요소 중 핵심 플랫폼의 기능을 하고 있다.

긴 시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의 경우 특별판 표지로 재출판 되는 사례도 있다. 책 ‘도쿄타워’(소담출판사)는 2005년에 국내 첫 출간 된 책으로 2020년에 다시 리커버 된 표지로 재출간됐다. 리커버된 표지는 최근 감성적인 일러스트 트렌드를 담아 심플한 느낌이 돋보인다.
(좌)2005년에 국내 첫 출간될 당시 책 '도쿄타워'의 표지 (우)2020년 리커버 되어 출간된 책 '도쿄타워'의 표지 /소담출판사 제공
심지어 국내 번역된 서적 중, 같은 책이라고 하더라도 출판사마다 다른 책 표지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하며 이때, 소비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 표지 디자인을 선택하여 구매하기도 한다. 마치 출판사별로 미세한 번역 차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 표지 역시 책의 구매 특성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 받은 책들은 다양한 표지로 만나볼 수 있다. 189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으로 출간된 책 '작은 아씨들'(2020). 더스토리 출판사. /윤미지 기자
책 표지 디자인에 관해 책의 구매 목적이 아닌 어떠한 디자인적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여러 사례를 보다 보면 책 표지란 최근 대중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특히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책을 고르는 독자들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기에 더욱이 출판계 표지 트렌드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렇다면 국내 책 표지 디자인에도 시대별 트렌드가 존재할까. 아무래도 과거에는 주로 ‘가독성’에 초점이 맞춰진 책 표지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실험적이고 느낌에 중점을 두는 디자인을 선보이기보다 독자들의 눈에 띌 수 있는 가독성 높은 표지 디자인이 주로 사용됐는데, 이는 아무래도 과거 책을 독서의 영역으로만 생각하는 독자들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고 책이 어떤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텍스트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컸다.
효과적인 타이포그라피 사용 /Polina Zimmerman, Pexels
책 표지도 예뻐야 한다는 발상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이미지나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요소를 활용한 책 표지 디자인 사례가 생겨났다. 단순히 가독성을 살리는 문제를 벗어나 책의 주제나 장르에 따른 타이포그래피를 사용하는 것도 눈에 띈다. (네이버 블로그 ‘내맘을 아는 디자인 공작소’참고)

최근의 국내 책 표지 디자인은 ‘감성적’이라는 키워드가 지배적이다. 정보 집약적인 느낌보다는 심플하면서 감성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일러스트 디자인’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일러스트 작업은 근래 들어 많이 출판되고 있는 에세이나 시집에서 강세를 보인다. 간결한 느낌을 추구하는데 일러스트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움이 담겨 있다.

백세희 작가의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출판사 흔)의 일러스트 표지는 가장 대표적으로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았다. 일러스트레이터 ‘댄싱스네일’이 작업한 표지로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색채가 돋보이며 일상 속 여성의 모습이 등장해서 눈길을 끈다. 본 책은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많은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그 이후 일러스트레이터 ‘댄싱스네일’은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출판사 허밍버드)라는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백세희 작가의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권. 심플하면서도 일상을 담은 따뜻한 일러스트가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도서출판 흔 공식 페이스북
백세희 작가의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5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1,2권 합본 소장판 리커버로 출간되기도 했다. /도서출판 흔 공식 페이스북
이외에도 셔터스톡에 업로드되었던 miniwide 디자이너 박가을의 일러스트 역시 책 출판계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인물 중심의 부드럽고 따뜻한 일러스트가 다양한 분야의 서적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데 그렇다 보니 이 일러스트를 사용한 책만 해도 2018년 기준 30여 개의 책 표지를 장식했다고 한다.
miniwide 디자이너 박가을의 일러스트 /shutterstock
전반적으로 책 표지에 사용되어 큰 호응을 얻은 일러스트를 보자면 깔끔한 선에 심플한 그림체가 특징이다. 특별한 주제를 담았다기보다는 주로 일상 속의 모습을 감성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돋보인다. 채색에 쓰인 색감 역시 부드럽고 조화로운 파스텔 색조가 눈에 들어온다.

이외에도 감성적인 이미지 자체를 책 표지로 활용하기도 한다. 숲, 바다 등의 자연의 모습을 책 표지로 쓰는 사례나 여행 에세이 같은 경우엔 그 나라의 감성적인 모습을 잘 담은 사진이 선택되기도 한다.
최유수 작가의 책 '아무도 없는 바다'. 도어스프레스 출판 /윤미지 기자
과거에는 타이포그래피가 눈에 두드러지게 들어오는 것이 특징이었다면 지금은 폰트 자체도 그렇게 크지 않다. 표지와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가장 기본적인 정도의 가독성을 보여준다. 오히려 지나치게 눈에 띄게 디자인하면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으므로 최근 독자들이 좋아하는 트렌드에 맞게 감성적인 느낌의 디자인 배치도 중요하다.

99designs에 따르면 그들이 공개한 2021년 최고의 책 표지 디자인 트렌드 8가지 중 ‘부분적으로 숨겨진 제목’, ‘제목과 이미지를 하나로’ 등의 항목이 눈에 띈다. 제목 자체가 다른 디자인 요소에 의해서 살짝 가려진 것을 의미하거나, 제목을 특별하게 부각하지 않고 이미지의 하나로 놓고 표현한다는 점은 가독성 면에서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가 이에 부합한다는 것은 그럼에도 독자들이 원하는 디자인 트렌드가 존재하며 가독성에 집중하지 않아도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당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의도적으로 숨겨진 제목. 충분히 제목을 유추할 수 있다. /Thought Catalog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책을 구매하는 독자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책 표지의 모습도 변화하고 있다. 아무리 책이라고 해도 예뻐야 독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외에도 1인 출판 등 개인 책 제작이 늘어나면서 더 독창적이고 다양성 있는 표지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책도 예뻐야 산다 /Polina Zimmerman, Pexels
최근에는 책을 인테리어 요소의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집의 분위기에 맞는 책 표지를 고르는 이들도 있다. 미학적 방식으로 접근해 책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책 표지의 중요성이 점차 대두되면서 이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현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웹툰이나 웹소설을 즐겨보는 독자들이 늘고 있는데 이 역시 표지 트렌드가 존재한다. 특히 웹툰과 웹소설은 표지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일반 소설이나 에세이의 경우 특정 분위기를 담은 표지가 강세였다면 웹툰이나 웹소설 표지 트렌드는 등장인물을 중점적으로 그린다. 인물의 외형적 모습을 실제 글의 내용에 기반하여 잘 설명하고 보여주는 것이 웹툰과 웹소설 표지의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인쇄술의 발전은 책의 생산성이 높였다. 자연스럽게 많은 수의 페이퍼백이 보급되면서 책 표지 역시 다양한 변화를 거쳤다. 과거 보석 등으로 치장한 귀한 예술품과도 같았던 책은 현대에 더 실용적인 트렌드를 담으면서 책을 표현하는 또 다른 수단이 되고 있는데 이는 어찌 보면 책 표지가 그만큼 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핵심적인 요소를 차지하고 있는 책 표지의 변화가 앞으로도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