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도 생각하고 선택지도 넓어지는 행동, 비건 패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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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1-05-1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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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인 스타일 패키지 /조선호텔앤리조트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최근 조선호텔앤리조트는 환경을 생각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추구하는 트렌드에 맞춰 웨스틴 조선 서울과 레스케이프에서 비건들을 위해 구성한 ‘비건 인 스타일’ 패키지를 선보였다. '비건 인 스타일' 패키지는 어메니티, 메이크업, 스낵, 주류, 패션 등을 경험할 수 있으며 비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해 비건을 지향하는 이들이 즐길 수 있는 호캉스 상품이다.

투숙 기간 동안 스낵, 주류와 조식을 비건 스타일로 제안하며 로브 증정 시 향후 쇼핑백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각 호텔에서 제작된 에코백을 함께 제공할 예정이다. 비건 타이거는 모피 재료로 쓰이는 동물의 고통을 종식시키고 소비자들에게 좀 더 넓은 선택권을 주고자 'CRUELTY FREE'라는 슬로건을 지닌, 잔혹함이 없는 비건 패션을 제안하는 기업이다.

윤리적 패션에 관심이 있고, 환경 및 동물 복지에 애정 있는 MZ세대의 소비 패턴에 맞춰 요즘 '비건'이란 주제가 뜨겁다. 동물에게서 착취된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이를 대체하는 비동물성 소재를 쓰는 일명 '비건 패션'이 뜨고 있다.


비건 패션이 나온 계기
비건 /flickr
비건 패션은 가죽, 모피, 울 등의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동물 학대가 없는 원재료를 이용해 만든 옷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 비건은 동물성 식재료를 배제하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뜻한다. 동물보호가를 비롯해 비건 패션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과 감정을 느낄 줄 알며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의복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살아 있는 동물의 털을 뽑거나 산 채로 가죽을 벗겨내는 등 학대를 가하는 것을 엄격히 지양한다.

패션 분야에서 비건은 더이상 새로운 영역이 아니다. 채식,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을 쓰는 것을 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 비건 원칙을 지키려는 소비자들이 비건 패션을 이끈다. 비건 패션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피 농장, 목축장 등에서 도축되는 동물들이 어떤 조건에서 사육되었는지, 운반과 도살까지의 과정 등을 소비자가 알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한다. PETA 같은 글로벌 조직들은 패션을 위해 동물을 광범위하게 학대한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알렸으며, 이들 중 일부는 '모피를 입느니 차라리 벌거벗는 게 낫다'란 슬로건을 내세우기도 했다.
2019년 열린 비건 패션위크 /NYLON유투브
대표적으로 가죽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데, 대개 패션 의류와 악세서리에 가죽이 널리 쓰인다. 그러나 동물 학대, 규제 없는 무분별한 도축과 더불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 화학물질 등이 노동자에게 해를 입히고 환경을 더럽힌다는 것을 강조한다. 의류를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은 죽는 순간까지 엄청난 고통을 받는다. 동물 복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피, 앙고라 등을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런던, 암스테르담, 멜버른 등의 패션 위크들은 이제 모피를 없애는 추세다. 샤넬, 프라다, 구찌, 버버리 등 명품 브랜드들도 그들의 컬렉션에서 모피를 제외하고 있다.

비건 패셔니스트들은 신발 한 켤레를 위해 동물들을 죽이는 것을 거부한다. 스웨터를 생산하기 위해 동물들을 평생 좁고 빽빽한 우리에 가두는 것도 거부한다. 이들은 가죽 생산을 위해 소, 양 등의 포유류를 키우는 것 자체가 온실 가스 배출, 삼림 벌채, 토양 파괴, 수질오염 등의 환경오염 문제를 야기한다고 말한다.

즉 가죽은 환경에 해를 끼치는 산업의 한 부산물이니 사람들이 가죽을 사는 것을 중단한다면 농부들은 돈을 벌지 못할 것이고, 또 그렇게 되면 소를 키우는 게 더이상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럼 소 대신 식물과 꽃 등을 키우는 것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일차원적인 말이긴 하지만 왠지 그럴듯한 말이다.
사과 껍질로 만든 애플스킨 스니커즈 /타미힐피거
실제로 너무 약하거나 아파서 서 있을 수 없는 소들은 사람이 먹기에 부적합한 것으로 취급, 가죽 생산을 위해 방치된다. 송아지나 양 등은 고품질의 가죽 제품을 위해 의도적으로 도살된다. 악어, 캥거루, 코끼리 등의 희귀동물들 또한 특별한 가죽 생산 때문에 죽는 일이 흔하다. 가죽의 생산은 유해 화합물들을 필요로 하며 생산 과정에서 독성이 강한 화학 물질을 생성한다. 그래서 비건들은 가죽으로 된 액세서리 대신 면, 린넨, 모시, 인조 가죽 등이나 천연 섬유로 만든 제품을 권한다.
앙고라 토끼는 죄가 없다 /flickr
앙고라 털 생산을 위해 사육되는 앙고라 토끼는 평생 철조망 우리에 갇혀 극심한 외로움 뿐만 아닌 뼈의 기형이나 감금으로 인한 질병을 견뎌야 한다. 토끼들은 종종 털을 깎는 과정에서 다치고, 정신적인 충격을 입는다고 한다. 암컷 토끼가 수컷 토끼보다 훨씬 많은 털을 생산하기 때문에 암컷 토끼는 더 오래 살아 있을 수 있지만 수컷 토끼는 일반적으로 태어날 때 바로 죽임을 당한다.

겨울에 많이 입는 다운 자켓이나 코트도 마찬가지이다. 오리나 거위에게서 나오는 부드러운 깃털은 이미 죽었거나 살아 있는 새에게서 억지로 뽑는다. 일생 동안 3-5번 정도 털을 뽑히는데 다운자켓을 위해, 또는 푸아그라를 위해 키워지는 오리나 거위들은 자연 수명의 극히 일부분만을 누린 후 살처분된다. 새와 알을 따뜻하게 품어주기 위한 용도인 깃털은 사람들의 베개, 코트 등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다운자켓이나 점퍼를 만드려면 적어도 수십 마리의 거위와 오리들의 털이 필요하다.
GRS 인증된 리사이클 폴리에스터로 폐페트병을 재사용해 자원 순환의 가치를 지닌 소재로 제작한 조거팬츠 /비건타이거
패션 산업은 전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10% 정도를 차지한다. 항공편과 해상 운송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고 한다. 높은 탄소 배출 이외에도 해양과 수질을 오염시키며, 옷의 플라스틱을 해양 생물이 섭취한 후 다치거나 죽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재활용 면, 유기농 린넨과 삼베 등으로 만든 옷을 입거나 과일껍질, 심지어는 페트병을 새활용해 옷을 만들어 입는다.


각 기업들의 비건 패션 열풍
에르메스의 '버섯으로 만든 가죽'을 활용한 제품 /마이코웍스
유통업계, 패션업계에 비건 관련 제품 개발 바람이 부는 것도 건강에 대한 본격적인 MZ세대의 관심을 반영한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스타티스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11억달러(한화 약 12조4000억원)이던 전세계 식물성 고기 시장 규모는 오는 2023년에는 200억달러, 2027년 355억달러(약 39조7000억원)로 커질 예정이다. 컨설팅회사 커니는 오는 2040년 식물성 고기 시장이 4500억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3월, 에르메스는 비건 레더를 활용한 '빅토리아 백'을 올해 안에 출시한다고 밝혔다. 이 가방은 버섯 소재로 만든 비건 레더를 사용했으며 예상 가격은 기존 라인과 비슷하게 책정될 예정이다. 그동안 동물 보호에 오히려 반하는 행보로 유명했던 에르메스라 더 놀라운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에르메스가 사용한 '실바니아' 버섯 가죽은 버섯에 기생하는 곰팡이 균사체로 제작되었다. 동물 가죽과 흡사하지만 이산화탄소 등 온난화 배출 물질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자수 와펜 동물 참장식 6종 /오르바이스텔라
대표적인 비건 패션 브랜드 HEUREUX 오르바이스텔라는 다양한 비건 관련 제품을 만든다. PETA 비건 공식 인증 획득 기념으로 제작된 ‘자수 와펜 동물 참장식’은 동물 모양의 자수로 제작된 와펜에 반려동물의 행복을 바라는 ‘HEUREUX’ 로고를 새긴 헤링본 무늬 코튼 리본을 달아 제작된, 오르바이스텔라의 첫번째 액세서리다. 오르바이스텔라 측은 PETA 비건 공식 인증 획득 자체가 제작하는 모든 제품이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BCI 코튼 소재로 된 신제품 5종 /오르바이스텔라
그밖에도 오르바이스텔라는 ‘환경’과 ‘비건’을 주제로 기획된 6종의 핸드백을 론칭하기도 했다. 면화 농민 보호 및 비료와 살충제 사용 자제를 권장하는 BCI(Better Cotton Initiative)로부터 인증된 코튼을 소재로 캔버스 핸드백 5종, 비건 가죽 제품인 라핀(Lapine) 미니백을 출시했다.

오르바이스텔라는 이전에도 가죽 가방을 보낸 고객을 대상으로 선착순 100명에게 파스텔 스트랩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행사에서 오르바이스텔라는 고객이 보내준 가죽 가방을 검수 후 자원 재순환을 위해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했다. 오르바이스텔라 관계자는 “이 이벤트로 가죽가방의 재순환을 통해 동물가죽이 조금이나마 덜 쓰이길 바랐다”며, “동물의 행복과 동시에 자원 재순환을 통해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 될 것” 이라고 밝혔다.
애플레더로 만든 메이백 /마르헨제이
리사이클링과 플라스틱 친환경 원단으로 만든 캔버스백, 사과로 만든 애플레더 컬렉션을 출시한 마르헨제이도 대표적인 비건 패션 브랜드 중 하나다. 애플레더 컬렉션으로 출시된 메이백은 사과 잼, 쥬스 등을 만든 후 남은 부산물로 업사이클한 사과 가죽을 활용하여 만들어졌다. 마르헨제이 관계자는 "앞으로도 차별화된 컨텐츠로 신선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비건 대표 브랜드로서의 방향성을 잃지 않되 대중들에게는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마르헨제이는 환경부에서 주최하는 탈플라스틱 실천 캠페인 '고고챌린지'에도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르헨제이 측은 100% 플라스틱 리사이클링 캔버스 원사와 리젠을 활용한 친환경 가방을 출시하며 지속가능한 가치의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고고챌린지를 통해 앞으로도 환경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비건 대표 브랜드가 될 것임을 다짐하기도 했다.
제퍼슨 프린트 /세이브힐즈
2021년 4월 웰니스 슈즈 편집숍 ‘세이브힐즈’(saveheels)는 캐나다 비건 브랜드 '네이티브슈즈'와 '크레욜라'가 콜라보레이션, 새 신발을 출시했다고 알렸다. 네이티브슈즈의 아이콘 신발인 네이티브 제퍼슨에 크레욜라가 디자인한 컬러 프린트를 더했다.

‘세이브힐즈’ 박정훈 대표는 “핫한 두 회사의 협업은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인의 탄생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무독성, 친환경 등 동일한 미션을 가진 두 회사의 만남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네이티브 슈즈는 비건 인증을 거친 브랜드로 탄소 배출을 줄이고 리사이클이 가능한 신소재의 친환경 신발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곳이다. 130년 역사의 크레욜라는 태양열을 통한 재생에너지로 크레용 제품을 생산, 100% 재활용된 플라스틱으로 마카를 생산 중이다.


또하나의 선택, 비건 패션
피마자 오일로 만든 바이오 기반 원사와 식물 기반 가죽 대체제 등으로 만든 '사이언스 스토리' /H&M
'비건'은 이제 단지 음식에 한정된 것이 아닌 패션과 유통업계로도 뻗어나가고 있다. 동물들의 복지를 위해, 또는 환경을 위해 사람들은 비건을 선택한다. 또는 아토피나 피부가 예민해 강제적으로 비건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비건 패션을 선호하는 것만으로도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다.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다.

비건 패션은 거창한 게 아니다. 일반적인 옷을 샀더라도 낡았을 때 바로 버리는 것이 아닌, 옷을 수선해서 입거나 가까운 중고 가게에서 물품을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된다. 예전처럼 선택지가 좁은 것도 아니고, 요즘은 기업들이 앞다투어 비건 관련 제품을 내면서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더 넓혀주고 있다. 물론 환경에 좋으니 의무적으로 비건 패션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의류를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비건 패션이란 또 하나의 옵션이 생긴 것이다. 판단하고 선택하는 건 여전히 소비자들의 몫이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