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뮤지션의 노래를 사랑한다는 것 (feat. Nujabes)

29STREET
29STREET2021-03-15 15: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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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설레는 출발의 계절인 동시에 아늑한 우울의 계절이기도 하다. 얼었던 땅에서 싹이 돋고 창백하던 하늘이 뽀얗게 변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입학을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봄기운에 엉덩이가 들썩여 견딜 수 없다는 것처럼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이렇게 남들은 하루하루 변해 가는데 나만 어제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을 때 사람은 잔잔하게 우울해진다. 감성적으로 말하면 봄의 멜랑콜리이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기온과 일조량 변화에 의한 계절성 우울증상이다.

다행히도 계절성 우울, 즉 봄(혹은 가을) 타는 증상은 대개 오래 가지 않는다. 계절이 무르익으면서 점차 컨디션도 안정되기 마련. 관점을 바꿔 보면 길어야 1~2주 남짓한 이 환절기만큼 ‘갬성’에 빠지기 적절한 시기도 없다. 어차피 축축 처지는 거, 차라리 마음껏 허우적대다가 올라오기로 결심하면 오히려 마음이 가볍다. 그렇게 매년 누자베스(Nujabes)의 노래를 듣고 있다.

이 세상에 없는 뮤지션의 노래를 사랑한다는 것
사진=누자베스 공식 블로그(http://e22.com/nujabes)
누자베스는 일본의 인디 힙합 DJ겸 프로듀서다. 세련된 비트에 잔잔한 재즈 선율을 섞어 감성적인 ‘재즈힙합’을 유행시킨 선구자이기도 하다. 힙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듣는 순간 귀가 쫑긋해질 정도로 흡인력 있고 편안한 멜로디를 중심으로 곡을 풀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명곡들을 발굴해 탁월한 샘플링으로 선보이는 기량도 탁월하다.

국적을 짐작할 수 없는 독특한 이름은 본명인 세바 준(瀬葉 淳·Seba Jun)을 뒤에서부터 거꾸로 읽어서 지은 것. 2000년대 초중반 왕성하게 활동하던 누자베스는 대중매체를 통한 홍보를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작품성으로만 승부하면서도 상당한 앨범 판매량을 자랑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안타깝게도 2010년 2월 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36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소식은 약 한 달 뒤인 2010년 3월 18일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누자베스 팬들이 3월만 되면 그를 떠올리며 싱숭생숭해지는 이유다.

Luv(Sic) pt2. (feat. Shing02)
이름 그대로 상사병(lovesick)을 주제로 만든 ‘Luv(Sic)’은 파트 1부터 6까지 총 여섯 개로 만들어진 시리즈 곡이다. 6곡 모두 래퍼 Shing02(싱고투)와 피처링해서 일관적인 색채를 느낄 수 있다(누자베스는 직접 랩을 하지 않고 곡만 만든다). 우리나라 래퍼 산이도 과거 러브식 파트2를 한국어 가사로 바꿔 커버했다. 누자베스 생전에는 파트3까지 공개됐으며, 사후 그가 작업해 두었던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파트 4, 5, 6이 발표되었다.

Aruarian Dance
누자베스 곡 중에서도 특히 인지도가 높은 노래 중 하나다. 193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The Lamp Is Low’라는 곡의 멜로디를 따서 만들었다. 기타 연주자 로린도 알메이다(Laurindo Almeida)가 1969년 발표한 연주곡이 거의 그대로 샘플링되어 있다. 이렇게 원곡을 생생하게 살려 샘플링하는 방식은 누자베스의 특징인데 듣는 사람에 따라 반응이 둘로 나뉜다. 원곡의 핵심 파트를 통째로 가져왔으니 ‘날로 먹은’ 셈이라고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는 한편, 누자베스 덕에 몰랐던 곡을 발견하게 되어 오히려 좋다는 반응도 있다. 실제로 누자베스가 선택한 곡들은 원곡 LP판 가격이 뛰는 등 시대를 넘어 새롭게 주목받곤 했다.

Feather (Feat. Cise Star & Akin)
2005년 발표한 앨범 ‘Modal Soul’의 첫 곡. 이 앨범은 수록곡 14곡 전부가 명곡으로 손꼽힐 정도로 인기 많은 앨범이다. ‘Feather’는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리듬감 있는 랩이 쉬지 않고 펼쳐지는데, 가사가 철학적이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전부 영어라서 검색의 힘을 빌려야 하지만). 분쟁과 욕심이 끊이지 않는 현대 사회에 대한 단상과 함께 타인을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곧 행복의 열쇠라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다.

에디터 LEE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