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귀환, LP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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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1-01-31 09: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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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거롭지만 특별한 음악 청취 수단
LP, 소장 욕구를 자극하다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우리 주변에는 음악 감상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참 많다.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현대에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이어폰 없이 길거리를 걷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음악은 그만큼 우리 삶 속에서 깊게 연관되어 있다. 게다가 음악을 듣는 방법은 점점 더 쉽고 간편해진다. 현대에는 음악을 듣는 행위에서조차 간편성을 찾는 추세가 지배적이다.
현대에는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다 /픽사베이
예전처럼 좋아하는 곡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기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길 기다렸다가, 빨간색 버튼(녹음키)과 재생 버튼을 동시에 누르는 낭만이란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모른다. 스마트폰과 이어폰만 있으면 어디서도 쉽고 간편하게 원하는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시대이니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구시대의 음악 감상 방법엔 카세트테이프 외에 또 다른 갈래가 존재한다. 바로 CD 음반과 LP가 있다. CD 음반은 비교적 익숙할 것이라 여겨지는 것에는 아직도 일부 가수의 인기 척도가 음반 판매량에 의해 결정 나는 부분도 있으며, 가정에 CD플레이어를 갖추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LP’는 마냥 익숙한 음악 청취 수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음악에 관해서 전혀 관심 밖의 사람에게는 신문물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CD플레이어. /픽사베이
LP(바이닐)은 음악을 재생하려면 턴테이블을 이용한다. 동그란 레코드 위에 턴테이블의 바늘을 올리고 재생하면 판이 돌아가면서 소리를 읽어낸다. 한때, 당시의 음반들에 비하여 LP의 재생 시간이 더 길다는 이유와 녹음 기술의 간편성, 저렴한 단가 등에 따라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아니다. 지금은 LP 세대보다 더 간편하게 음악 청취가 가능한 시대인 것은 물론 LP는 보관이나 그 취급에 까다로움이 더해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최근 LP(바이닐)시장의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한 언론사의 2021년 보도에 따르면 빌보드와 MRC 데이터가 공개한 지난해(2020년) 미국 음악 시장 연간 보고서의 내용에 미국 내 LP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이는 30년 만에 최다 판매 기록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지난 한 해 동안 판매된 LP는 총 2754만 장이며 이는 전년과 비교하면 46.2%의 성장을 보였다고 한다.
최근 LP(바이닐)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픽사베이
LP입문자에게 적합한 저렴한 가격대의 턴테이블을 시중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윤미지 기자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해도 현대에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해서 이용하는 사례가 대다수고 그로 인해 LP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신기한 부분은 최근 카세트테이프나 CD 음반의 수요 역시 대세라고 표현하기엔 다소 부족하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의미한 수요 증가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오늘날 아날로그 음악 청취 수요 증가에 있어 그 요인을 단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쉽고 빠른 방법을 강조하는 현대에 아날로그 감성이 뜨고 있다는 진부한 결론은 이 현상을 설명하기엔 조금 부족하다. LP 수요가 늘고 있는 현상은 간편함을 추구하는 현대의 경향에 완전히 반대되는 일로 매우 독특하며 이에는 여러 가지 의문을 품게 한다.


번거로움도 감수하게 하는 LP의 특별함

30대 초반의 LP 입문자 윤모 씨는 어느 날 바이닐을 턴테이블에 올려 재생하고 음악이 나오지 않자 당황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엘피판을 다시 꺼내 표면에 들러붙은 먼지를 후후 불며 가볍게 닦아내고 턴테이블의 버튼도 이리저리 눌러보는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해보려 하였으나 음악은 쉽사리 흘러나오지 않았다. 나중에야 그 원인을 파악하게 되는데 문제는 턴테이블 바늘에 있었다. 바늘에 먼지가 껴 있어 음반을 읽는 것에 방해가 됐던 것이다.

LP를 듣는 것은 생각보다 간편한 일이 아니다. 우선 턴테이블을 가지고 있어야 LP를 재생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바이닐 종이 커버를 보호하는 투명 소재의 레코드판 포장재에서 음반을 꺼내야 하는데, 커버를 열면 그 안의 음반은 종이로 한 번 더 감싸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LP의 특성상 스크래치가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보호구가 여러 겹 되어 있는 것이다. BPM 설정을 건너뛰더라도 음악을 한 번 들으려면 커버에서 바이닐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 바늘까지 음반 끝부분에 살포시 올려놓아야 한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했다면 한 번의 스마트폰 터치로도 쉽고 간편하게 음악을 재생했을 텐데 오히려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LP 보관에는 여러가지 주의점이 있다. 커버를 보호하기 위해 비닐 패키지에 보관되는 LP /픽사베이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LP /픽사베이
그런데도 LP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LP가 보급되고 전성기를 맞이할 때도 있었으나 점점 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이는 실로 독특한 현상이다. 특히 LP 사용에는 섬세한 애정이 수반된다. 앞서 언급했던 사례와 같이 정전기가 잘 일어나 먼지가 들러붙는다거나 잘못된 보관으로 인해 레코드판 자체가 변형되기도 한다. 또 열에도 굉장히 약한 편인데 그렇기에 뜨거운 화기와 너무 가까이 두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작은 스크래치가 생기면 음반이 튀면서 소리를 제대로 못 읽어내기도 한다. 절대적인 부피 자체가 방대한 것은 아니지만 크기가 큰 편이라 바이닐 수집이 취미라면 반드시 보관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 이쯤 되면 이런 여러 가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LP를 듣는 저마다의 사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LP의 ‘소릿결’은 특별하다

사실 LP를 듣는 사람들도 스트리밍 서비스가 편하다는 것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음악을 감상하는 이유가 ‘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어딘지 말이 이상하고 어폐가 존재한다.

일단 음악 감상의 목적 자체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음악을 좋아하고 이에 대한 식견을 가지고 있어서 그 자체로 예술성을 느끼기 위해, 또는 단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에 세상의 모든 음악을 섭렵하겠다는 마음으로 다양한 장르를 찾아 듣는 사례도 있다. 가타부타 다른 이유 없이 단순히 휴식과 힐링을 위해서 듣기도 하며 음악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들도 꽤 다수다. 때로는 이어폰 없이 이동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LP를 듣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역시 LP만의 소릿결을 선호하는 요인이 크다. 음악이 모두 같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나 의외로 듣는 수단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음이 출력되는 특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스피커만 바꿔도 음질에 영향을 미치는 점이 대중적으로 많이 경험하는 사례다.

LP의 음악 재생 원리를 생각하면 보통의 음원과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LP가 제작되는 방식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V자형으로 생긴 바늘을 통해 나사선 모양의 홈을 파 레코드판에 음악을 기록하는 형태다. 이 바늘은 음성신호 전류에 의해서 진동이 발생하고 여기에 의한 변화 기록을 통해 녹음되는 방식이다. 음악이 재생되는 원리는 턴테이블의 바늘이 레코드판 위의 새겨진 홈을 읽어가며 음악을 출력하는 것이다.
레코드 판 표면을 잘 보면 미세한 홈을 발견할 수 있다 /윤미지 기자
레코드판 위의 새겨진 홈을 읽어가며 음악을 출력한다 / 픽사베이
홈을 통해 소리를 읽는 방식이다 보니 간혹 레코드를 들을 때면 소리가 튀는 경우도 존재하며 지지직하는 올드한 사운드를 느끼게 되는 일도 더러 있다. 어찌 보면 이런 ‘잡음’은 레코드판의 약점에 해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며 매끄럽게 재생되는 음원을 주로 듣다 보니 오히려 이런 부분을 LP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매력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향도 있다.

LP 감상은 음악의 소릿결에 집중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판을 긁어내면서 나오는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다. LP의 단점으로 치부되었던 판 튀김과 지지직거리는 잡음은 오히려 LP 감상이 취미인 이들에겐 그만의 고유 매력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LP 감상이 취미인 이들은 LP 청취에 있어 깨끗한 원음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 것이라 조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침압을 조절함에 따라 이를 잘 맞춰가며 보다 선명한 음질의 소리가 출력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LP 고유의 아날로그 감성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LP바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 /권희정 기자
최근에는 현대의 대중음악을 제작할 때 일부러 LP 고유의 지지직거리는 잡음 표현을 만들어 음원에 넣기도 한다. 아무래도 아날로그적이며 빈티지한 감성을 표현할 때 주로 쓰는 방법인데, 잡음 생성은 특정 음악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분류될 정도이니 LP 특유의 감성은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대한 근거로 여겨진다.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LP의 존재

일단 턴테이블을 구매했다면 사실 LP를 수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소장하고 있는 음반을 듣다 보면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며, 좋아하는 앨범은 꼭 LP로 소장해야 직성이 풀리는 컬렉터들이 세상에는 여럿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인상 깊었던 영화의 OST LP를 구매하는 사례가 많다. 이 사례는 영화를 봤을 당시의 감정과 마음에 들었던 장면을 기억하는 것에 LP 재생을 활용한다. 스마트폰 등을 사용해 간편하게 음악을 소비하는 것보다 LP가 가진 느림의 미학에서 좋았던 영화에 대한 기억을 찾는 것이다.

영화 OST LP는 커버 디자인 자체도 영화의 상징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LP에 포함된 영화 포스터나 속지를 함께 수집하기도 하며 이는 소장 가치가 있어 영화 마니아에게 OST LP 수집은 또 다른 취미가 된다.

때론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LP 수집을 하게 되는 일도 있다. 흔히 턴테이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한해서 LP 수집이 이뤄질 것 같지만 실제는 이와 다르다. 의외로 턴테이블이 없으나 LP 자체에 매력을 느끼고 이를 수집하는 이도 꽤 많다. 주로 좋아하는 음악을 오디오를 통해 즐기다가 LP 버전으로도 이를 소장하고 싶어 구매한다.
바이닐 수집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AV프라임'에서 운영하는 '오디오 세상' 블로그 중 발췌
종종 LP는 한정판으로 발매되는 때도 있어 좋아하는 가수나 소장 가치가 있는 앨범 등을 LP로 소장하려는 이들이 등장한다. 특히 한정 수량만 발매되는 LP는 온라인상에서 웃돈이 붙어, 비싼 가격에 되팔기도 하며 이런 희귀한 음반의 경우 아무리 가격대가 높아져도 없어서 못 사는 ‘희귀한 아이템’이 되는 현상이 생긴다.
소장 가치가 높은 LP는 웃돈이 붙어 재판매되기도 한다 /네이버 쇼핑 검색 캡처
LP는 한 가지 음반이라 하여도 커버 디자인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으로 발매되는 일도 있으며 발매된 레코드사에 따라, 원본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특성도 존재한다. 게다가 같은 앨범이라도 바이닐의 색상이 다른 예도 있다. 흔히 LP의 모습을 보다 보면 검은색의 알판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엔 의외로 다양한 색의 레코드판이 발매되기도 한다.
LP 색상은 다양하게 제작된다 /윤미지 기자
요즘엔 알판을 제작할 때 앨범의 특성에 따라서 상징적인 색을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꼭 일반판이라고 해서 무조건 검은색 알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따로 컬러판으로 발매되는 경우엔 일반판과는 다른, 한정 수량의 특별한 색상으로 제작된 알판이 발매된다. 최근 구현되는 알판의 색상은 워낙 다양하며 때로는 투명한 알판이 발매 되는 일도 있어 소장 가치가 있는 경우 중고시장을 통해서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사실 LP를 듣는 저마다의 이유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LP가 무수한 매력을 가진 음악 청취 수단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LP를 감상하는 이유, 감성적인 분위기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권희정 기자
그간 한 번의 터치만으로 쉽게 음악을 듣는 것은 굉장히 간편한 일이며, 이는 기술의 집약적 발전에 따른 삶의 질 향상이라 여기는 관점이 다수였다. 하지만 간편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때론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를 특별하지 않은 취미로서 치부해버리는 상황도 발생했다. 음악 감상이 가성비가 좋은 취미라는 인식은 어찌 보면 빠른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적합한 형태의 취미로 발전하다 보니 그렇게 여겨진 부분도 존재할 것이다.

음악은 그 자체가 가진 예술성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으나 어떨 때는 감상하는 행동만으로도 큰 위로와 휴식이 된다. 인생에 감성적인 순간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혹은 음악이 가진 소릿결을 확실하게 느껴보고 싶다면 LP 감상을 즐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여겨진다. 한 번의 터치만으로 가볍게 즐기고 마는 음악과는 분명 다른 세계가 열릴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