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컨설턴트가 아니었다면, 앤디 워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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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0-10-27 14: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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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지난 9월 방탄소년단(BTS)의 RM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Art Seoul)에 출품된 정영주 작가의 작품 ‘사라지는 고향 730’을 구입했다. 세계적인 스타가 미술작품을 구매했다는 점도 놀랍지만, 아직 20대에 불과한 그가 미술작품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선한 영향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받았다. 이처럼 요즘 미술시장에는 젊은 세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트 컨설턴트는 누구보다 미술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깊어야 한다 / pixabay
미술계에 따르면, 미술품 경매에 참여하는 3040 컬렉터가 늘고 있으며, 이들은 수백 혹은 수천만원 정도의 미술품을 구매한다고 한다. 재테크 목적으로 미술품을 구입했던 과거와 달리, 정말 미술품을 즐기기 위해 구입하는 것이다.

미술품을 사랑하는 이들의 곁에는 도움을 주는 전문가가 존재하는데, 바로 ‘아트 컨설턴트’다. 작품을 그린 작가의 마음과 의도를 가장 잘 이해하는 동시에, 미술작품을 원하는 이들의 니즈와 취향 등을 파악하고, 원하는 장소에 어울리는 작품을 제안하는 사람들이다.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미술품을 제안하는 사람


아트 컨설턴트의 사전적 정의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사무실이나 생활공간 등에 어울리는 미술품을 선정해 설치하고 관리하는 사람’이다. ‘아트(Art)’와 ‘컨설팅(Consulting)’의 합성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역할은 미술작품을 선정하고 그에 대한 조언이다. 이는 고객이 생활하는 공간의 품격과 활용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고객의 취향과 분위기, 공간의 조건과 목적 등을 따져보고 그에 어울리는 작품을 고르고, 설치하고, 관리한다.
고객이 원하는 장소에 어울리는 작품을 추천해 설치하고 관리하는 일이 아트 컨설턴트의 주 업무다 / pixabay
이 외에도 이들의 역할은 무궁무진하다. ‘아트컨설턴트의 통합적 역량에 관한 고찰 -미술시장 실무자 인터뷰 및 아트컨설팅기업 사례를 중심으로- (주희현, 김재면. 2017)’에 따르면, 아트 컨설턴트는 미술시장의 특성을 이해하고, 고객이 요청하는 사안과 필요에 대해 전문적이며 객관적인 조언활동을 수행하는 서비스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고객의 취향과 장소의 분위기를 보고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시장에 관해 고객이 알고 싶은 전문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미술품을 발굴해 대중에게 소개하는 역할

아트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세부적으로 나누면, 큐레이터나 아트 딜러 등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해 큐레이터가 딜러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해외에서는 세부적으로 나뉠 정도로 명확하다.

큐레이터 또는 학예사, 학예연구사는 전시회를 기획하고 작품을 수집·연구·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어떤 장소에서 근무하느냐에 따라 미술관 큐레이터, 박물관 큐레이터, 독립 큐레이터 등으로 나뉘는데, 보통 담당하는 주 업무는 전시기획이다. 때문에 관람객이 어떤 작품을 선호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이슈나 관심, 미술사 전반에 대해 알아야 한다.
작품에 어울리는 인테리어와 설치를 하는 것도 큐레이터의 몫이다 / pixabay
이 외의 업무가 더 있다면 작품 관리, 보존 등이다. 하나의 전시를 기획할 때는 작품에 어울리는 환경을 위해 전시장 인테리어부터 작품 운반, 설치, 진열 등을 모두 큐레이터가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는 전시품 대여비용, 작품 보험, 작품 설명이 들어간 도록이나 홍보물 제작도 담당한다. 한 전시가 열릴 때 필요한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아트 딜러는 작품성을 가진 작가를 발굴해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이들이다 / pixabay
아트 딜러는 작가의 작품을 발굴해 내는 역할이 가장 큰 사람이다. 보통은 갤러리를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갤러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미술에 관심이 많다면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이들은 작가를 발굴해 가격을 정하고, 작품 주제나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딜러’라는 이름처럼 작품 판매를 위한 전시를 기획하고, 다른 미술관이나 미술품 컬렉터에게 작가를 소개하기도 한다. 큐레이터가 ‘작품 전시’에 집중한다면, 아트 딜러는 ‘작가와 작품’에 더 몰두하는 편이다. 하지만 두 직업 모두 좋은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큐레이터이면서 아트 딜러를 겸하는 이들도 많다.


유명 작가 뒤에는 컨설턴트가 있다

팝아트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작가 앤디 워홀은 “유명해지려면 프로모터(중개인)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작가들에게는 그들을 발굴해 알려줄 수 있는 파트너, 아트 컨설턴트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유명 작가들에게는 유명 컨설턴트와 딜러가 있기 마련이다.
세잔이 그린 앙브루아즈 볼라르 초상 / 위키미디어
입체파 화가로 손꼽히는 피카소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프랑스의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 (Ambroise Vollard)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 파리에서 주로 활약한 볼라르는 미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법학을 전공하다가 노점에서 그림을 구경하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1893년 볼라르 갤러리를 열었다.

볼라르가 주로 구입한 작품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인상주의, 아방가르드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저렴하게 구입해 비싸게 판매할 수 있었다고 한다.

1895년 세잔의 첫 번째 전시회를 열기 위해 150개의 캔버스를 구입했으며, 이후 마네, 빈센트 반 고흐, 르누아르, 보나르, 피카소, 마티스 등의 작가들을 발굴해 낸 유명한 딜러 중 하나다. 피카소는 그를 두고 세상에서 초상화가 가장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여러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가 많은 인물이기도 하다.

볼라르는 작가들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전시회를 기획하는 것 뿐만아니라 판화작품을 모아 작품집을 만들거나 ‘세잔’, ‘르누아르’, ‘드가’의 전기와 자서전 ‘어느 그림 상인의 추억’ 등 책을 남기기도 했다.
1964년 11월 21일부터 12월 28일까지 열린 앤디 워홀 개인전 ‘Flower Paintings’ / 카스텔리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이탈리아 미술상인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는 현대미술을 가장 잘 알린 사람이다. 팝아트부터 초현실주의, 추상주의, 미니멀리즘, 신표현주의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 잭슨 폴록 등 팝아트 작가들이 그를 통해 대중과 만났다.

레오 카스텔리가 처음 미술과 만난 계기는 비엔나 신혼여행에서 구입한 마티스의 수채화였을지도 모른다. 그 후 1935년 파리로 넘어온 그는 1939년 르네 드루인과 함께 첫 번째 갤러리를 오픈했다. 이 갤러리는 초현실주의 미술에 특화되어 있었으며, 예술가들의 작품을 포함한 가구 전시회로 개관했다.

1949년 뉴욕으로 넘어온 카스텔리는 개인 딜러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하다가, 1957년 자신의 갤러리를 열고, 1958년 재스퍼 존스와 라우센버그의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 전시회는 카스텔 리가 딜러로서의 명성뿐만 아니라 새롭고 중요한 예술 운동의 중재자로서의 명성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카스텔리는 팝아티스트인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 세계적 설치미술가인 클래스 올덴버그, 추상표현주의 화가 사이 톰블리, 미니멀아트 조각가 도널드 저드와 로버트 모리스, 미니멀아트 미술가 댄 플래빈, 퍼포먼스 예술가 브루스 나우먼 등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예술가들이 이름을 알릴 수 있도록 첫 번째 개인전을 열어주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가고시안 갤러리 / 가고시안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2010년 세계 예술계를 움직인 파워 100인 1위에 선정된 미국의 아트 딜러 래리 가고시안은 지금도 세계 미술시장의 큰손으로 손꼽힌다. UCLA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학교 근처에서 희귀한 포스터를 팔았던 것을 시작으로 미술시장에 뛰어들었다.

1976년에는 포스터 가게를 닫고 다이앤 아버스, 리 프리드랜더 등 사진작가들의 판화를 파는 ‘Prints on Broxton’이라는 이름의 갤러리를 열었다가 선보이는 현대 미술 작품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이름을 ‘Broxton 갤러리’로 바꾸기도 했다.

래리 가고시안이 지금의 가고시안 갤러리를 오픈한 것은 1978년이다.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의 맡은 편이어서, 카스텔리의 지인을 소개받는 등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때 비자 셀민스, 크리스 버든, 에릭 피슐, 신디 셔먼, 장 미셸 바스키아 등의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었으며, 1979년에는 데이비드 살의 첫 전시회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가 미술시장에서 주목받은 이유는 놀라운 사업수완 때문이다. 가고시안이 판매한 그림이 값은 떨어지기보다 계속 올랐으며, 그가 발굴해 낸 작가들도 가격만큼이나 가치가 올라갔다. 비록 탈세와 미술품 재판매 가능성 등을 악용하며 성장했지만, 빠른 속도로 사업을 확장시켜오면서 ‘고고(go-go)’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1986년에는 맨하튼에 2번째 갤러리를, 첼시에 세 번째 갤러리를 열었고, 이탈리아와 홍콩 등으로 진출하며 전세계에 17개 체인을 가진 갤러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사치갤러리 전경 / 사치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이들 외에도 광고회사 사치 앤 사치를 운영하며, 사치 갤러리를 통해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허민 등 젊은 영국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화이트 큐브 갤러리로 유명한 영국의 아트 딜러 제이 조플링(Jay Jopling), 영국에서 도페이 갤러리를 운영하다 2001년 은퇴하며 2006년 2천억원대 미술품을 기증한 앤서니 도페이(Georges Anthony d'Offay), 1996년 ‘다이치 프로젝트’라는 갤러리를 열며 바바라 크루거, 키스 해링 등의 젊은 아티스트들을 발굴한 제프리 다이치(Jeffrey Deitch) 등이 있다.

한국에는 갤러리미림 대표를 맡았던 오정엽 미술사가가 있다. 1982년 미술계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89년 일본에 한국 작가들을 알리며, 2002년 미림아트를 설립하고, 2007년 갤러리 미림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해왔다. 그가 발굴한 대표적인 작가로는 몽우 조셉킴, 성하림, 이비어, 취산, 브라이트 킴, 꽃비, 최병권, 이미선 등이 있다.


미술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중요


아트 컨설턴트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은 미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다. 미술품의 가치가 어떠한지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경영학적 지식도 있어야 업무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미술 전공자가 아니어도 되지만, 보통은 큐레이터학·미술사학·예술학·고고학 등 미술과 관련된 학과를 전공하는 경우가 많다.

큐레이터도 관련 학과를 전공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학예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행하는 정학예사 1·2·3급과 준학예사가 있는데, 관련 분야 학위 취득 후 국공립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일정 기간 이상 일해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아트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 pixabay
또한, 작가도 발굴해야 하고, 작품을 원하는 고객을 만나 이들을 설득하기도 해야하기 때문에 여러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물론,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여기에 미술품과 공간의 어울림을 시뮬레이션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포토샵 등을 사용할 줄 알면 좋다.

무엇보다 미술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넓히기 위해 전시회를 자주 방문하고 미술품을 공간과 매칭시키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아트 딜러의 경우에는 미술품에 관심있는 이들이 민간자격증을 취득해 투잡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강의는 인상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추상미술, 다디이즘, 초현실주의, 미니멀 아트, 팝아트 등 미술사 전반의 사조를 배우며, 한국의 미술시장과 아트딜러는 어떤 자세를 갖추고 활동해야 하는지를 학습한다.

미술작품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치유가 되는 좋은 매개체다. 때로는 공감을 얻기도 하고, 어떤 때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생각 밖의 즐거움을 준다. 이런 미술 작품에 대해 더욱 깊게 알고 싶은 사람, 남들이 잘 모르지만 작품성이 독특하고 뛰어난 작가를 발굴하고 싶다면 아트 컨설턴트라는 직업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작품을 그냥 감상하는 것을 떠나, 그 작품이 가지는 가치, 그 안에 녹아있는 작가의 의도를 누구보다 먼저 알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