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맥과 치콜을 위협(만) 하는 음료

마시즘
마시즘2020-08-13 09: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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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의 완성은 음료다. 아무리 맛있는 치킨을 먹어도 콜라나 맥주를 마셔야만 ‘치킨을 먹었다’는 행위를 마치는 것이다. 이는 숟가락만큼이나 닭다리를 잡아 온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공식, 바로 국룰이다.
(조상 대대로 치킨먹다 콜라를 마시는 모습…은 페이크고 사극 촬영 현장)
손가락에 양념이 가득 묻었어도 손바닥을 이용해 콜라를 마시고야 말겠다는 처절한 인간의 모습은 인간과 치킨, 그리고 음료의 서열을 보여준다.
인생이 치킨이라면
음료는 배후세력이다
(마시즘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한국사람의 일생을 ‘치킨집을 차리거나, 치킨을 먹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압축한다면, 음료는 이 삶을 뒤에서 조종하는 배후 세력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 음료나 그런 강력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먹어야 할 모든 치킨을 물하고만 먹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내일 지구가 멸망하라며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고 말겠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음료가 맛있으려고 치킨을 먹는 거다)
그렇다. 치킨과 함께하는 음료는 일종의 카르텔(담합)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성년자는 콜라로, 성인은 맥주를 마시도록 조종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단단한 세계를 깨려는 한 음료가 나타났다.

이 무모한 도전 때문에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은 음료, 무료로 준다고 해도 거부당했던 그 음료, 치킨을 위해 태어났지만, 인간이 거부한 바로 그… 아 미안 서론이 길었다. 바로 ‘교촌 허니 스파클링’이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콜라와 싸우는 음료
교촌 허니 스파클링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코카콜라와 펩시에게 전투를 신청하는 음료다. 치킨을 시켰는데 콜라가 들어갈 자리를 이 녀석이 빼앗아 버린 것이다. 천진난만하게 치킨을 기다렸던 인간들의 충격은 중고로 아이폰을 샀는데 안에 벽돌이 들어있을 때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치킨은 문제없지만 단지 콜라가 대체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전화 테러 및 리뷰 테러를 감행하곤 했다.
(2017년 탄산음료의 황금기 라인업)
이쯤에서 허니 스파클링의 탄생 비화를 살펴보자. 이 녀석은 교촌치킨에서 무려 1년을 연구하여 2017년에 출시되었다. 같은 해 출시된 ‘칸타타 스파클링’, ‘솔의눈 스파클링’, ‘하늘보리 스파클링’ 등과 함께 최악의 스파클링 음료 세대를 이뤘다. 하지만 이들 중 여전히 활개를 치는 것은 허니 스파클링뿐이다.

허니 스파클링은 살짝 달달한 꿀맛이 느껴지는 탄산음료로, 음료 자체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무난한 음료가 감히 ‘치킨’과 어울리려 했다는 일종의 괘씸죄다. 불의는 참을 수 있어도 치킨은 참을 수 없는 인간에게 이 음료는 ‘낙하산’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허니 스파클링의 변
‘영양학적으로는 내가 다 이겨’
(막상 먹어보면 생각보다 맛있다. 맥주가 생각 이상으로 맛있다는 거 빼면)
교촌치킨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일단 허니 스파클링의 맛이 나쁘지는 않다는 것. 오히려 치킨과 콜라를 꺼려했던 사람들은 이 음료에 만족했으며, 허니 스파클링 속에 들어 있는 L-카르니틴 등의 성분은 치킨과 영양학적으로 찰떡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영양을 고려한다면 사람들이 과연 치킨을 먹을까?’라는 생각이 스치긴 하지만. 치킨과 콜라, 치킨과 맥주라는 뻔한 공식을 뛰어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점만은 알겠다.

실제로 욕을 하며 치고받는 사이에 허니 스파클링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들어 보니 ‘위스키에 타서 마시면 맛있다’고 말한다. 또 허니 스파클링을 오렌지 주스에 타서 마셔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들 중 누구도 치킨과 먹어 맛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민트 초코를 좋아했던 소수의 매니아가 ‘민초단’을 결성하여 대중적인 입지를 다졌듯이, 언젠가 ‘허니 스파클링파’가 요식업계를 주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허니 스파클링
이것은 동병상련의 맛이 아닐까?
(교훈 : 1인자에게 도전하는 삶은 고달픈 법)
허니 스파클링을 보면 여러 감정이 오간다. ‘치킨이면 콜라여야만 하는’ 우리 사회의 고정적이고 너무나 높은 수준의 요구들. 그리고 이것을 만족시키지 못한 이 땅의 무수한 인간 허니 스파클링들이 떠오른다. 여러 까다로운 주문들과 비판하는 이들의 손찌검을 견디면서도 ‘그래도 누군가는 나를 좋아하고 있어’ 혹은 ‘영양학적으로는 내가 대단해’라며 굴복하지 않는 그 마음가짐. 그러면서도 ‘콜라와 맥주를 제치고 치킨계의 표준이 될’ 야심을 꿈꾸는 허니 스파클링의 모습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오늘도 바깥에서 한창 깨지고 집에 돌아와 치킨을 시키는 나의 신세는 이 녀석을 똑 닮아 있다. 어쩌면 내가 무시했던 허니 스파클링의 맛은 꿀맛도, 탄산도 아닌 동병상련의 맛이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 말했지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이런 젠장. 이번만은 콜라가 올 줄 알았는데.

* 해당 원고는 문화 매거진 <언유주얼 An usual 9호 – 응, 치킨>에 기고한 원고입니다(마시즘과 언유주얼 양측의 허락을 받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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