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치스, 무알콜 와인으로 망했다가 포도주스로 성공하다

마시즘
마시즘2020-05-08 09: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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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치스,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
가장 무서워한 음료다
동네형들은 ‘웰치스를 두 캔 마시면 잠에 들었다가 원양어선을 탄다’는 세상의 비밀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 괜스레 배를 탄다는 게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물론 낚시도 수영도 못하는 초딩과 함께할 원양어선 선원의 입장이 더 황당할 듯 하지만). 때문에 웰치스는 맛있으나 마실 수 없는 백설공주의 독사과 같은 음료였다.

웰치스가 사실은 ‘목사님이 자기의 이름을 걸고 만든 음료라는 것’을 알았다면 조금 더 많이 마셨을까? 이 음료는 알수록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늘은 뜻과 다르게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던 최초의 포도주스. 웰치스(Welch’s)에 대한 이야기다.
토마스 웰치
취하지 않는 와인을 찾아서
1800년대로 떠나보자. 웰치스를 만든 이의 이름은 ‘토마스 웰치(Thomas Bramwell Welch)’다. 토마스 웰치는 치과의사이자 독실한 신자였다. 신앙심이 투철했던 그에게 마음이 어려워지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성찬식에 사용되는 포도주, 즉 와인이었다. 성경에는 ‘취하지 말라’라고 했는데 이 와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그는 ‘취하지 않는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포도즙은 짜두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발효가 되어 와인이 되곤 했다. 여러 방법을 고안하던 그는 파스퇴르 박사가 개발한 ‘저온살균법’을 통해 포도즙에서 알콜을 만드는 효모를 파괴하게 된다.
(충격과 공포의 취하지 않는 와인)
1869년 그렇게 웰치스가 태어난다. 다만 상품명이 ‘발효되지 않은 와인(Welch ‘s Unfermented Wine)’이었다. 그는 자신의 교회 성찬식에 이 음료를 사용했다. 곧 만족한 그는 다른 교회에도 이 취하지 않는 와인의 대단함에 대하여 말하며 권하게 된다.

그렇게 웰치스는 성공을… 하지는 못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토마스 웰치의 발효되지 않은 와인을 원하지 않았다. 토마스 웰치는 고려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와인을 너무 좋아했다.
무알콜 와인이
포도주스가 되었을 때
토마스 웰치는 발효되지 않은 와인 사업을 4년 만에 포기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살린 것은 그의 아들 ‘찰스 웰치(Charles Edgar Welch)’였다. 그는 아버지의 포도즙을 ‘웰치스 포도주스(Welch‘s Grape Juice)’라고 이름을 붙인다. ‘와인에서 과일주스로’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든 것이다.

1893년 찰스 웰치는 웰치스 포도주스를 만국박람회에 선보인다. 발효되지 않은 와인이었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람들은 포도주스라는 말에 관심을 보였다. 발효되지 않은 와인이 뭔가가 결여된 주류의 느낌이었다면, 처음 들어보는 포도주스는 건강하고 프리미엄의 분위기가 있었다.
(웰치스를 만든 것은 아빠지만, 살린 것은 아들이었다)
성공적인 데뷔를 바탕으로 찰스 웰치는 포도농장과 포도주스 사업을 넓힌다. 포도주스뿐만 아니라 포도잼을 만들어 나간다. 다른 포도농장이 오직 와인만 생각하고 있을 때 말이다.

그리고 웰치스에 기회가 터진다. 금주법 시대(Prohibition era)가 열린 것이다. 와인농가 전부 스톱!
금주법 시대에
빛나는 웰치스의 가치
1919년, 금주법 시대가 열리자 애주가들은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와인농가에 비할바가 못 되었다. 5년 사이에 7배나 커진 포도농장들은 와인 밖에 만들 줄 모른다고요!

아니나 다를까 많은 포도농가들은 와인 대신 포도주스를 만들 것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토마스 웰치가 고생하며 만든 비법을 쉽게 알 수 없었다. 포도주스들은 시간이 지나면 와인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하여 포도를 건더기로 굳혀 블럭을 만들곤 했는데, 이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 와인이 되었다.
(땅바닥이 부러운… 미국 금주법 풍경, 사진 : Orange County Archives)
항간에는 포도농가들이 법을 피해 와인을 만들어 파는 꼼수(?)를 부린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오랜 시간 술이 아닌 일반 음료로 사랑을 받은 웰치스는 금주법 시대에 그 진가를 인정받는다. 한 때는 불완전한 와인이었던 녀석이 ‘절제의 상징’으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알콜 대신에 음료를, 취하지 않는 즐거움’을 찾아 웰치스를 마시는 사람이 금주법 시대에 늘어났다. 웰치스를 만든 토마스 웰치의 바람이 뒤늦게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금주법이 끝나고 와인을 마실 사람은 다시 돌아갔겠지만, 적어도 웰치스는 변하지 않을 것임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래 그거면 된 거야.
사랑받는 음료에는
만든 사람의 신념이 숨어있다
(웰치스는 주스와 탄산의 로고 스타일이 다른 거 아세요)
음료의 탄생에는 언제나 그 음료를 만든 이유가 존재한다. 웰치스가 다른 포도농가와 같은 생각이었다면, 지금처럼 포도주스와 동의어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음료 속에는 만든 사람의 신념이, 그리고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놀라운 아이디어를 낸 이들이 존재한다.

단순히 포도 탄산음료라고 생각했던 웰치스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면 그 맛이 더욱 특별해지는 것 같다. ‘설마 델몬트를 만든 사람이 델몬트 아니야(아니다)’ 같은 상상도 해보며. 무심코 마셨던 음료에도 관심을 가져본다. 이 음료들에는 맛만큼이나 특별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 테니까.

참고문헌
- 창업자 이름으로 대박난 글로벌 브랜드는?, 정은선, 이투데이, 2010.5.13
[종교와 음식](29) 금주와 웰치스, 박경은,경향신문, 2017.9.21
美금주법이 `웰치스` 만들고 전쟁이 `질레트` 만들었다, 정아영, 매일경제, 2010.9.10
How Methodists Invented Your Kid’s Grape Juice Sugar High, LUKE T. HARRINGTON, Christianity today, 2016. 9. 16
Dr Welchs’ wine, jimzilla, Antique bottles, 2012.5.5
Methodist history: Controversy, Communion and Welch’s Grape Juice, Joe Iovino, UMC.org, 2016.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