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5000년 동안 사랑받는 음료가 된 까닭은?

마시즘
마시즘2020-04-07 09: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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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는 장난감보다는 풀과 함께 자랐다. 그때는 땅에서 나는 초록색 식물은 뭐든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농사일을 마치고 온 엄마, 아빠에게 물 한 대접을 가져다주며 잎을 띄워 준 적이 있다. 나야 동화책의 한 장면을 구현했다지만 마셔야 하는 엄마, 아빠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물에 이파리를 띄워 마시는 것은 ‘차(茶)’ 또한 마찬가지 않은가? 하지만 나의 잎을 띄운 물은 마시면 오늘내일을 할 수 있는 반면, 차는 무려 5,000년이라는 역사를 기록했다. 지금도 매일 38억 명이 차를 마신다. 질투가 조금 나지만 점잖게 물어보자. 대체 무엇 때문에 이파리 하나 들어간 음료에 인간은 수 천년을 열광한 걸까?

시대를 뛰어넘는 음료는 단순히 맛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은 지금의 차를 있게 한 3명의 사람을 만나본다.


기원전 2732년 중국. 인간들은 회사를 다니지도, 농사를 짓지도 않고 하룻밤 요기로 토끼나 쫓고 다닐 시절이다. 이때 태어난 신농(神農)은 사람들에게 농사를 알려준다. 중국인들은 달력과 도끼, 쟁기 등을 만든 신농을 농사의 신으로 떠받든다. 신석기 혁명계의 스티브 잡스랄까?

또한 신농은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을 수 없는 풀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 실험쥐(?)를 자처했다. 당연히 아무 풀이나 먹으면 떡실신(?)이 되기 마련. 하지만 그는 중독이 된 와중에도 식물을 먹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차나무 때문이다.

신농이 중국 남부의 산맥 지대를 여행할 때였다. 하인들은 끓인 물이 안전하다는 신농에 말에 따라 물을 준비해 갔는데, 언덕에서 날아온 마른 잎이 끓는 물에 떨어졌다. 신농은 신기하고, 궁금해서 한 입 마셔보았는데 원기가 회복되고 기운이 돋았다. 그 뒤로 신농은 약초에 뻗어 바닥을 기어 다닐 때마다 차로 해독을 했다고.

차는 가장 트렌디한 의약품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서인 <신농본초경>에도 차의 효능이 담겨있다. “차는 술처럼 취하지 않으며, 물처럼 오염되거나 독성을 띄지 않는다”가 주요 요지였다. 새로 나온 상품이나 음료수들이 ‘성분빨(?)’을 내세우듯 차의 시작 역시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이었다.
중국 고대 역사에서 가장 오래 살고 싶은 집단이 누구일까?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곳 도가다. 가장 네임드는 ‘노자’로 이 아저씨(?)는 돌아가시기 전에도 손에 한 잔의 차를 들고 있었다. 도가의 도사들은 최초의 차 농장주였고 도교사원들은 차나무가 자라기 이상적인 고도에 세워졌다.

733년 중국으로 치면 당나라. 도교사원 용개사의 주지 지적선사는 강가에 버려진 아이를 데려온다. 그는 아이에게 육우(陸羽)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육우는 훗날 단순히 건강용으로 마시던 쓴 차를 맛과 예절의 경지에 올린 차의 성인이 된다.

하지만 아직 육우는 그저 차 심부름을 해주는 아이에 불과했다. 도교사원에서 자랐지만 도사가 될 생각은 없었고, 소를 치는 일은 지루했다. 가끔 차를 재배하고 달이는 역할을 했지만 그의 마음은 사원 밖에 있었다. 결국 집을 나가게 되었고. 지적선사는 그 뒤로 차를 끊었다. 육우 차 아니면 맛이 없어.

수행자들과 함께 세상을 둘러본 육우. 생각보다 차를 마시는 것이 엉망진창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오랜 방랑 후에 고향에 돌아와 <다경>이라는 책을 낸다. 다경에는 차의 기원부터 차를 따는 법, 제다 과정, 차의 종류와 다기, 수질, 예절 등 차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다. 오늘날의 차문화도 다경의 손바닥 위라고 할까?

그때까지도 지적선사는 차를 마시지 않고 있었다. 황제는 육우의 차가 얼마나 잘났기에 그런 것인가? 지적선사를 궁전에 부른다. 먼저 황제는 지적선사에게 궁전 최고의 차를 대접한다. 잠깐 마셨지만 이내 시무룩. 다음으로 지적선사 몰래 데려온 육우의 차를 대접한다. 지전선사는 맛을 보더니 경탄한다. “내 아들마저도 이보다 더 좋은 차를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황제는 육우의 차를 의심했던 것을 뉘우치고, 두 사람은 드디어 재회한다. 중국판 TV는 사랑을 싣고인가? 차가 단순히 약재가 아닌 맛을 갖춘 음료가 된 순간이다.
건강? 어 인정. 맛? 어 인정. 하지만 그 둘만으로는 한 시대를 넘는 음료가 될 수는 없다. 수천년간 내려온 차의 힘은 당나라 노동(盧仝)이라는 사람에게 와서 완성된다. 노동은 차를 발견하지도, 차를 잘 만들지도 않았다. 그는 차를 마시는 사람이었다. 대신 끝내주는 감상평을 남긴 시인이었다.

노동이 남긴 시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은 <칠완다가(七椀茶歌)>다. 7잔의 차를 마시면서 느낀 효능과 감상을 적은 시인데. 오늘 날로 치면 카피라이터 내지는 마시즘의 리뷰(?) 같은 이 문장들은 중국에서 글 좀 쓴다는 문인은 반드시 외워야 하는 작품이었다. 근데 글을 읽으면 차가 맛있어. 이것이 글의 힘이다.

노동의 <칠완다가> 이후 차를 읊는 시들이 많이 나타난다. 좋은 차들을 맛보고, 멋진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 엘리트들의 소양이 된 것이다. 누가 더 차를 잘 만드는지에 대한 차 경연대회가 열리고 차의 맛을 분별하는 티 테이스터들이 생긴다. 이러한 현상은 덕후의 나라 일본에서 더욱 커진다.
차 한 잔에 담긴 건강, 맛, 문화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마실 것이 약재가 되고, 음료가 되고, 문화로 피어난다. 차뿐만이 아니라 맥주, 와인, 커피, 콜라까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료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왔다. 똑같은 이파리를 띄운 물이지만 내 물과 차의 차이는 이렇게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신농, 육우, 노동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역사에 찻잔을 올려둔 것이 1막이었다면, 2막은 더욱 거칠고 격렬한 양상으로 이어진다. 동양에서 서양으로, 녹차에서 홍차로 차의 무대가 옮겨간 것이다. 건강, 맛, 문화에 돈이라는 가치가 붙으면 어떤 현상을 일으키게 될까? 우리는 다음 편에서 차의 쓴맛 나는 역사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참고문헌]
차의 세계사, 베아트리스 호헤네거
티 소믈리에가 알려주는 차 상식사전, 리사 리처드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