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법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술을 마셨을까?

마시즘
마시즘2020-02-27 15: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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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술금지. 집에 일찍 들어올 것”

청천벽력 같은 메시지가 가족 단톡방에 떴다. 최근 계속되는 가족들의 음주귀가에 엄마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그저께는 동생이 어제는 아빠가 얼큰하게 취해 돌아왔었지… 그래도 어머니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오늘은 금요일인 데다가, 제가 취해 돌아올 차례였는데 말이죠(ㅠ).

때아닌 금주령에 벌써부터 술이 고프다. 금주령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오늘 마시즘은 역사 속에 등장한 3번의 금주령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술을 마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 여기, 술을 마시면 감옥에 가는 나라가 있다
그곳은 1920년대 미국이다. 미국의 정치인, 교회, 여성단체는 이를 법제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금주법을 ‘고결한 실험’이라고 불렀다. 미국인들이 술을 마시지 않음으로 더욱 위대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건강하고, 법을 잘 지키고, 가정에 평화를 줄 것이라는데… 술에 취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결과적으로 1920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금주령을 담은 볼스테드 법(The Volstead Act)이 실행된다. 알콜 비중 0.5% 이상의 모든 음료를 금지시킨 볼스테드 법 덕분에 미국 내 알콜을 만드는 공장 중 85%는 증발해버리고 만다. 다만 그 빈자리를 멕시코에서 밀수한 맥주가 대신한다(이 루트는 나중에 마약 밀수에 쓰인다).
(이거 하나면 술…아니 포도주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선 놀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셔야 했다. 다행히 병원과 약국에서는 맥주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종교에 귀의해 포도주 한 잔을 노려볼 수도 있었다. 이조차 힘든 사람들은 부동액, 페인트, 향수에서 알콜을 뽑아내어 마셨다.

그중에 가장 핫한 아이템은 그레이프 브릭(Grape Brick)이다. 건조한 포도를 상자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물에 담그면 포도주스가 되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상온에 보관하면 와인이 돼버렸다. 감옥에 가기 싫은 포도 재배자들은 그레이프 브릭에 확실한 경고 문구를 세겼다. “그레이프 브릭을 상온에 너무 오래 두지 마시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와인으로 변할 테니까.” 덕분에 모두가 쉽게 와인 양조자가 되었다.
(미국의 새로운 술문화 스피크이지는 오늘 날 클럽의 시초?)
물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술집? 없으면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스피크이지(Speakeaies)라는 새로운 형태의 술집이 탄생했다. 스피크이지에는 간판 하나 없을뿐더러, 입구에서 암호를 대야만 입장할 수 있다. 이러한 비밀스러운 인기는 금주법이 폐지된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한국에도 유명한 스피크이지를 만날 수 있다. 어디에 있냐고? 비밀이다.
2. 여기, 절대자 앞에서 주사를 부린 남자가 있다
역사적으로 법은 술을 이기지 못했다. 그렇다면 종교는 어떨까?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와 술을 금지하고 있다. 오 신이시여, 소주와 삼겹살을 즐기지 못하다니요. 이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Muhammad)가 술 취한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원래 무함마드와 그의 동료들은 술을 즐겼다. 624년 바드르 전투에서 무슬림이 승리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는 병사들에게 축하를 하며 잠깐 자리를 비웠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 자신의 낙타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범인은 바로 병사들이었다. 술에 취한 병사 중 하나는 무함마드에게 “너는 내 아버지의 노예가 아니더냐”라는 망언을 한다. 하하 무함마드는 대꾸하지 않고 돌아선다.
(나 할 말이 있어! 어제 술 마신 애들 나와 봐)
주사가 심한 사람을 둔 덕에 이슬람 사람들은 이성을 놓게 되는 술을 마실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은 술을 글로 즐기기도 했다. 술의 상태, 술자리를 노래한 ‘주시’가 이슬람의 대표적인 문학의 한 축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들에게 주시는 SF, 판타지 소설 같은 것일까.

현대에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술의 유통을 차단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술을 접대하는 것이 상류층의 특권이 되었다. 자신의 지하벙커에서 술을 권한다는 것은 부의 상징과 함께 금기를 깰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뜻이라고. 무함마드가 알면 큰일 날 소리지만.
3. 여기 술 마신자의 목을 친 조선의 왕이 있다
조선시대는 가양주 문화가 꽃피웠던 시대다. 동시에 금주령을 자주 내린 국가기도 하다. 이 말은 가양주를 만들 수 있는 양반들은 술을 참 많이 즐겼고, 백성들은 굶었기 때문에 나라에서 곡물을 축내는 술을 금지시킨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금주령은 가뭄, 흉년 등에 일시적으로만 발동되었다.

하지만 17세기 영조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통치기간 내내 술을 마시는 것을 금지시켰다. 심지어 국가적 제사인 종묘 제례에서도 술을 금지시켰으니, 백성들과 조상님들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조선시대에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왕이라는 사실이다.
(야 조심해라, 임금에게 걸리면 끝이야)
심지어 술을 마셨다는 소문에 목이 달아난 자도 있었다. 영조 38년의 일이다. 그는 매일 밤 술에 취한다는 윤구연의 파직 상소를 받는다. 그는 파직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윤규연을 숭례문 앞으로 끌고 와 직접 목을 쳐버린다. 확인차 보냈던 신하가 술냄새 가득한 항아리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전국의 용기 있는 유생들과 신하들은 금주령의 폐지를 요구했지만, 영조는 그들을 줄줄이 귀양을 보냈다. 물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술을 마실 사람은 마셨다는 사실에 존경심이 든다. 심지어 영조 앞에서 술에 취한 채 난동을 부린 자도 있었다. 물론 그도 결국 영조의 눈밖에 나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이름은 사도세자다.
금주령,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누군가 말했다. 술은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것이라고. 금주령 아래에서도 술을 마셨던 그들은, 금주령이 끝나기 무섭게 음주문화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법도, 종교도, 임금의 칼날도 결국 인간에게 술을 떼어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금주령이 실패했지만, 사람들에게 과음에 대한 경각심을 주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어머니, 오늘 딱 한 잔만 해도 될까요?

* 참고도서 : 알코올의 역사, 할랄 신이 허락한 음식만 먹는다, 소울푸드, 조선의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 우리 술의 역사와 문화, 조선의 뒷골목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