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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 모성애, 집착, 트라우마... 각양각색 '엄마 영화'가 온다

동아일보 2022-04-06 10:57
세상의 엄마들은 다 같지 않다. 자식에게 헌신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과 꿈이 자식보다 먼저라고 여기는 엄마도 있다. 학대로 트라우마를 심어준 엄마도,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며 무서운 집착을 보이는 엄마도 있다.

봄 극장가에는 각양각색의 엄마상을 담은 ‘엄마 영화’가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각자의 엄마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며 포스트코로나를 준비하는 극장가에 미약하게나마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괴팍함 아래 숨겨둔 모성애
“뭐 한다꼬 자꾸 내려온다고 캐 싸. 나는 개안아.”

85세 말임(김영옥)은 아들 종욱(김영민)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겠다며 전화하자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래놓고는 장을 보러 간다.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볶고, 계단 청소까지 해놓고 아들을 기다린다.

13일 개봉하는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혼자 사는 엄마를 다룬다. 아들을 기다리다 계단에서 넘어져 병원에 실려가도 아들이 걱정한다며 한사코 아들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에겐 다정하지만 아들에겐 “오지 말라”고 화내며 위악을 부린다. 뭐 하나 아들 하라는 대로 하는 법 없는 고집불통이다.

영화는 혼자 있을 말임을 위해 아들이 고용한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과 말임, 아들 가족간에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어디에나 있는 노년의 엄마를 세밀화처럼 그려낸 85세 배우 김영옥의 내공 꽉 찬 생활 연기는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전기세를 아끼겠다며 한밤 중 불을 꺼놓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들을 놀라게 하고 색색의 봉지로 싼 식재료들을 냉동실 가득 저장해놓고 얼리면 평생 가도 상하지 않는다고 믿는 모습까지. 감독이 되살린 ‘엄마 실생활 디테일’은 다소 뻔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한편 공감과 웃음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박경목 감독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영화 속 이야기는 올해 91세가 된 우리 엄마 이야기”라며 “모두의 가슴에 얹혀있는 엄마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포가 된 뒤틀린 모성애
할리우드 영화 ‘Umma(엄마)’도 이달 중 개봉한다. 한국어 발음 그대로 ‘엄마’다.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엄마 ‘아만다’ 역을, 한국계 감독 아이리스 심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는 “That’s my 엄마”라는 대사 등 ‘엄마’라는 단어가 종종 나온다.

장르는 예상 밖에 공포물이다. 딸과 단 둘이 고립된 채 살며 미국 시골마을에서 양봉을 하는 1세대 이민자 아만다에게 어느 날 한국에서부터 엄마의 유골함과 영정 사진이 도착한다. 아만다는 엄마를 극도로 혐오한다.

아만다는 과거 어머니에게 충격적인 수준의 학대를 받고 자랐다. 아만다는 반대로 자신의 딸에게 더 없이 다정한 엄마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의 깊은 트라우마로 집에서 일체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딸은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시키는 등 또 다른 방식으로 딸을 옭아매며 학대한다. 엄마의 잘못된 양육방식이 한 사람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화시킬 수 있는지, 뒤틀린 모성애가 얼마나 공포스러울 수 있는지를 공포물 형식을 빌려 보여준다.

20일 개봉하는 한국영화 ‘앵커’에도 집착형 엄마가 나온다. 배우 이혜영이 분한 ‘소정’은 딸 세라의 메인 뉴스 앵커 자리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세라가 위험천만한 일을 해서라도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길 바란다. 딸의 기상 시간, 옷차림, 식사, 발음까지 모든 것에 관여하며 군림한다. 딸을 자신을 빛나게 해줄 수단처럼 여기고 딸을 로봇처럼 조종하려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광기로 변질된 모성애를 보여준다.
뒤바뀐 아이, 절절한 모성애
지난달 31일 개봉한 스페인 영화 ‘패러렐 마더스’는 같은 날 같은 병실을 쓰며 각자의 딸을 낳은 두 엄마 이야기를 다룬다.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와 아나(밀레나 스밋)는 퇴원한 뒤 열심히 아기를 돌본다. 두 사람은 모두 싱글맘이다. 야니스는 자신도, 아이 아빠도 닮지 않은 아이 외모에 의문을 품고 유전자 검사를 의뢰한다. 그 결과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생아 치료실에 있던 두 아이가 뒤바뀐 것. 아나가 친딸로 알고 키웠던 야니스의 딸은 이미 돌연사했다. 야니스는 사실대로 말하고 아이를 아나에게 돌려보낼 것인가.

영화는 나이도 직업도 사는 환경도 다르지만 모성애만큼은 똑같이 지극한 두 여성 이야기에 집중한다. 동시에 배우로서의 자신의 꿈을 펼치는게 최우선으로 스스로도 “나는 모성애가 없다”고 말하는 아나 엄마도 보여주며 모성의 크기가 다를 수 있음을, 각자의 이유가 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불안함과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크루즈의 명연기도 관전 포인트.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에 앞서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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