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미래에 내 마음 나도 몰라”
20대 남성 준수는 동갑내기 여성 지윤과 로맨스 영화를 보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한다. 만나지 않는 날에도 휴대전화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준수는 지윤에게 사귀자고 고백하진 않는다. 자신이 지윤에게 끌리는 게 외로워서인지, 사랑해서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준수는 지윤과 친구보다는 가깝지만 연인까지 이어지지 않는 이른바 ‘썸타기’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왜 준수는 썸만 타는 청년이 된 걸까.
15일 교양철학서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필로소픽)을 펴낸 최성호 경희대 철학과 교수(50)는 7일 전화 인터뷰에서 “취업, 결혼 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문화가 썸타기”라고 말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썸타기를 선택한 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는 시대상과 관련 있다는 것.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떠보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어요. 하지만 썸타기는 자기 마음을 결정짓지 못하는 상태인 ‘의지적 불확정성’과 관련 있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 못 하는 거죠.”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떠보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어요. 하지만 썸타기는 자기 마음을 결정짓지 못하는 상태인 ‘의지적 불확정성’과 관련 있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 못 하는 거죠.”
최 교수는 썸타기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탐색형 썸타기’와 ‘쾌락형 썸타기’로 나눈다. 연애 전 상대방이 어떤지 살펴보는 행동이 탐색형 썸타기다. 쾌락형 썸타기는 썸을 타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다. 2018∼2019년 연재된 네이버웹툰 ‘알고 있지만’에서 22세 여자 주인공 유나비는 동갑의 남자 주인공 박재언에게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박재언이 여자관계가 복잡한 ‘나쁜 남자’라는 소문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탐색형 썸타기’를 한다. 반면 박재언은 유나비의 마음을 알고도 연애 자체를 할 생각이 없이 ‘쾌락형 썸타기’만 즐긴다.
최 교수는 남녀가 연애하기 전 상대방과 심리전을 벌이며 밀고 당기는 이른바 ‘밀당’과 썸타기는 다르다고 했다. 밀당은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행위인 만큼 그 중심이 상대방에게 있다. 반면 썸타기는 자신이 상대방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라 자신이 탐구 대상이라는 것. 최 교수는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썸타기는 ‘자기지향적인 활동’에 해당한다”며 “썸타기는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받아들일지 배제할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못한다”고 했다.
MZ세대가 연애를 시작하며 “우리 오늘부터 1일”이라고 하는 건 공적인 관계를 선언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의무와 제약이 부과되는 관계를 받아들이는 말이라는 것. 최 교수는 “‘우리 오늘부터 1일’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의 개별적인 믿음을 넘어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하는 공적인 담화의 역할을 한다”며 “다른 이성과 사귀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도 생기는 발화”라고 했다.
최 교수는 상대방과 사귈 것처럼 행동하며 여러 이성을 동시에 만나는 ‘어장관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마음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기만하는 행위라는 것. 최 교수는 “어장관리자는 호감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부재중 전화를 남기는 ‘떡밥’을 던지며 상대의 마음이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며 “상대를 속임으로써 마음을 통제하는 행태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라고 했다.
지난해 1학기엔 대학원 철학과 학생들과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해 수업했다. 신조어를 통해 철학적인 탐구를 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진지하게 답했다.
“젊은 세대의 연애 문화는 철학적으로 탐구하기에 충분히 가치 있고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애들’의 언어로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분석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최 교수는 남녀가 연애하기 전 상대방과 심리전을 벌이며 밀고 당기는 이른바 ‘밀당’과 썸타기는 다르다고 했다. 밀당은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행위인 만큼 그 중심이 상대방에게 있다. 반면 썸타기는 자신이 상대방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라 자신이 탐구 대상이라는 것. 최 교수는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썸타기는 ‘자기지향적인 활동’에 해당한다”며 “썸타기는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받아들일지 배제할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못한다”고 했다.
MZ세대가 연애를 시작하며 “우리 오늘부터 1일”이라고 하는 건 공적인 관계를 선언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의무와 제약이 부과되는 관계를 받아들이는 말이라는 것. 최 교수는 “‘우리 오늘부터 1일’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의 개별적인 믿음을 넘어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하는 공적인 담화의 역할을 한다”며 “다른 이성과 사귀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도 생기는 발화”라고 했다.
최 교수는 상대방과 사귈 것처럼 행동하며 여러 이성을 동시에 만나는 ‘어장관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마음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기만하는 행위라는 것. 최 교수는 “어장관리자는 호감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부재중 전화를 남기는 ‘떡밥’을 던지며 상대의 마음이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며 “상대를 속임으로써 마음을 통제하는 행태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라고 했다.
지난해 1학기엔 대학원 철학과 학생들과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해 수업했다. 신조어를 통해 철학적인 탐구를 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진지하게 답했다.
“젊은 세대의 연애 문화는 철학적으로 탐구하기에 충분히 가치 있고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애들’의 언어로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분석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