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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재건축 후… 그 많던 고양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동아일보 2022-03-07 14:59
재건축을 앞두고 이주가 시작된 대단지 아파트. 낡은 아파트 곳곳에 설치된 사다리차의 사다리가 연신 이삿짐을 실어 내린다. 단지 내 길고양이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이를 지켜본다. 각동 출입 현관에 빨간색 ‘×’자가 그려지고 불도저가 오가며 굉음을 내자 갈 곳 없어진 고양이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 포스터.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살아온 고양이 한 마리가 주민들이 떠난 아파트 현관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 엣나인필름 제공
1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의 주무대는 1980년 완공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다. 2017년 이주가 시작됐고 2020년 초 철거가 마무리된 곳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는 이 아파트 이야기를 다루며 재건축으로 아파트를 떠나야 했던 또 다른 존재에 렌즈의 초점을 맞춘다. 대를 이어 이 아파트에서 살아온, 아파트 생태계의 일부가 된 고양이들이다. 자신들에게 이름을 붙여 불러주는 주민들과 어우러져 살며 단지 내 생활에 익숙하다. 길고양이와 집고양이 중간쯤에 있는 ‘아파트 고양이’들이다.
정재은 감독은 4일 기자간담회에서 “2016년 아파트를 방문했는데 고양이들이 도시 길고양이들과 달리 나를 굉장히 반갑게 맞이해줬다. 주민들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게 보였다. 재건축이 시작되면 이 고양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질문이 생겨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2001년 갓 스무 살이 된 청춘들의 일상과 고민을 깊이 있게 그려내 호평을 받은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영화에서 고양이는 조연이었지만 이번에는 주연이다. 정 감독은 “20년 전엔 고양이가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먼 존재였지만 지금은 고양이가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재건축으로 인해 이주해야 하는 ‘아파트 고양이’는 250마리 안팎. 밥을 챙겨주던 주민들도, 거처가 돼주던 건물과 수풀도 모두 사라져 황무지가 돼버린 광활한 공간은 더 이상 고양이들이 있을 곳이 못 된다. 캣맘을 비롯한 동네 주민들은 고양이들의 이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모임 ‘둔촌냥이’를 만든다. 고양이들은 사람들 계획대로 아파트 단지를 떠나 새 보금자리에서 안착할 수 있을까.

정 감독은 주민들 이주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7년 5월부터 촬영을 시작해 아파트가 모두 허물어지기까지 2년 반 동안 촬영을 이어갔다. 동물보호 활동가들이 고양이들의 이주 과정과 이주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논의를 이어가는 등 동물과 인간이 공존으로 향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서울 재건축 대장주라 불린 아파트의 재건축 과정을 고양이의 시선으로 담아낸 시도는 참신하다. 정 감독은 “고양이들의 이주를 기록하는 것과 더불어 아파트가 사라지는 과정에 연출의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영화는 특정 아파트에서 촬영했지만 특정 아파트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재개발 재건축되는 도시 안에서 길고양이의 생존 문제는 가장 보편적인 이슈니까요. 영화는 고양이 이야기이지만 우리들 이야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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