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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이슈] ‘5억짜리 작품이었다고?’ 관객이 무심코 그은 녹색 물감

핸드메이커 2021-04-03 09:00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은 누구
[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전시회가 열리는 전시장은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음악과 움직이며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기 마련이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서로 불문율 속에 지키는 에티켓이랄까.

요즘은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도 생겨나면서 그런 인식은 점점 깨지고 있다. 그 자체가 작품의 한 부분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작가의 작품을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STREET NOISE’ 전에 전시된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의 작품 ‘Untitled’. 3월 31일에도 낙서된 그대로 여전히 전시 중이다. 그림 앞에는 형광색 라인과 검은색 철제로 작품임을 알리는 선이 그어져 있다 / 전은지 기자
그런데, 지난 3월 28일 그런 에티켓을 깨는 ‘웃픈’ 사건이 벌어졌다. 롯데월드몰에서 열리고 있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작품 전시회인 ‘STREET NOISE’ 전에서 한 작가의 그래피티 작품에 관람객이 낙서를 한 것이다.


낙서 사건의 전말

여러 언론을 통해 공개된 CCTV 영상을 보면, 당일 오후 1시 40분쯤 연인으로 보이는 20대 남녀 관람객은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의 2016년 작품 ‘Untitled’를 관람하던 중, 작품 앞에 놓여있는 물감과 붓을 보고 망설임 없이 붓칠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남자 관람객이 붓칠을 하고, 여자 관람객이 그 모습 인증샷으로 찍는 등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즐기는 모습이었다. 엄연히 작품 앞에는 넘어가지 말라는 선과 함께 눈으로만 감상하라는 금지 표시가 되어 있었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30분 뒤, 작품이 훼손된 것을 알게 된 전시장 관계자가 관람객 2명을 CCTV로 찾아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경찰 조사에서 관람객들은 “벽에 낙서가 돼 있고, 붓과 페인트가 있어서 해도 되는 줄 알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작품 옆에 붙어있는 작품 설명 / 전은지 기자
2016년 존원이 이 작품을 완성할 당시 사용했던 물감과 붓, 신발 / 전은지 기자
하지만, 작품 설명에는 ‘당일 사용한 물감과 붓, 신발과 각종 퍼포먼스 장비들도 작품과 함께 디스플레이 되었다’고 쓰여있다. 이 작품은 존원이 2016년 전시를 위해 내한한 당시, 관객들과 미디어 앞에서 2시간에 걸쳐 완성한 것이다. 그때 사용했던 물건이 작품 일부가 된 것이다.

전시장 측은 관람객들이 고의성이 없었다고 판단해, 작가인 존원에게 소송이나 보험처리를 하지 않도록 제의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작가가 이를 문제 삼고 조처를 한다면 관람객들은 배상해야 한다.


작품 일부분이 되어버린 낙서, 웃프다

사건이 일어난 나흘 후, 본 기자가 방문했던 3월 31일에도 작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돌아보다 발견한 존원의 작품은 뜨거운 이슈만큼이나 발길을 붙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Untitled’는 세로 240cm, 가로 700cm의 초대형 작품이기 때문이다. 벽면 가득히 자리한 작품은 휴대폰으로 한 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웅장했다.
존원(JONONE), Untitled(2016 The Great Graffiti Exhibition Live performance), 2016, 700×237.5cm, Acrylic on Canvas, Minoa Collection / 전은지 기자
존원의 작품 앞에서 한 컷. 사진에 다 담기지 못한 그림의 크기가 더욱 짐작된다 / 전은지 기자
관람객이 낙서한 부분 / 전은지 기자
훼손된 작품을 전체적으로 감상했을 때는 이전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정말 절묘하게도 낙서했다’고 느껴질 정도.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작품을 감상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 사건을 두고 네티즌들의 평가도 엇갈린다.

“발레리나처럼 보인다”, “그림값을 올려놨다”, “느낌있게 그렸다”, “어디에 낙서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저렇게 붓과 물감을 놔뒀으니 헷갈릴 만하다”며 옹호하는 이들과 “모르고 낙서를 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관리 소홀이다”라며 비판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 전시장에서 느끼는 반응은 어떨까.

31일 전시장 방문 당시 만난 김귀연 매니저는 “사건 이슈로 인해 평일에도 방문객이 조금 늘어난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아직 이틀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사건을 보고 오는지는 체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을 의식한 탓인지, 매니저가 수시로 전시장 내부를 순회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은 누구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이슈로 그래피티라는 예술은 물론, 존원도 이름이 알려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존원이 누군지 몰랐던 이들도 ‘낙서 그림’하면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JonOne) / 존원 공식 홈페이지
1963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존 앤드류 페렐로(John Andrew Perello). 닉네임 ‘존원(JonOne)’으로 활동 중이다. 그가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성장하게 된 이유는 태어난 지역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태어난 지역은 뉴욕 할렘이었으며, 태어날 당시에는 인종차별, 마약, 범죄 등의 문제로 뉴욕이 슬럼화가 되던 시기였다. 거리 벽면과 지하철에 가득했던 그래피티를 보며 자랐던 존원은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거리예술을 접하게 됐던 것이다.
뉴욕 지하철에 그려진 그래피티 작품 / 존원 공식 홈페이지
그가 17살 일 때, 친구 화이트 맨과 함께 이웃집 벽과 기차에 156이라는 번호까지 붙이며, 그래피티에 열정적이었다. 존원의 또 다른 닉네임이 Jon156인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1984년인 22살에는 그래피티 그룹 ‘156 All Starz’를 설립해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 그룹은 마약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이 그래피티를 그리는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존원은 지하철을 두고 ‘도시를 관통하는 박물관’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후 1987년에는 친구 반도의 초대로 프랑스로 이주하면서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나갔다. 파리 제18대 회관에 위치한 병원 건물인 ‘호스피탈 에페메레(Hospital Ephemere)’에 작업실을 갖고 활동하게 됐다.

존원은 1992년 첫 전시회를 시작으로, 2007년 Artcurial 경매에서 대형 캔버스 작품인 ‘Match Point’가 2만4,800유로(4월 1일자 환율기준 한화 3,293억 4,648만원)에 낙찰되었는가 하면, 2015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명예인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 문화/예술 부문 훈장을 받기도 했다.
2016년 출시된 LG 포터블 스피커. 존원의 그래피티가 들어갔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존원 / LG전자 제공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인정받게 된 존원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이번 전시회에서 이슈가 된 작품인 ‘Untitled’를 비롯해, 2016년에는 LG전자와 함께 협업해 포터블 스피커를 출시하기도 했다.

스피커 디자인에 존원의 작품을 입혀 개성 넘치고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당시 출시 보도자료의 설명이다. 그래피티의 자유로운 느낌을 살리기 위해 워터슬라이드 기법까지 적용했다고 한다. 도료를 필름으로 덮어 선명한 색감을 오래 유지하도록 했으며, 물감의 질감까지 느끼도록 했다.


거침없는 붓 터치가 매력적인 존원의 작품

존원은 초기 작품에 ‘태그(tag)’ 방식을 사용했다. 태그는 초기 그래피티에서 주로 사용한 표현방식으로, 서명하듯 자신의 이름이나 닉네임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존원도 자신의 닉네임인 ‘JonOne’을 수백 개 그려서 자유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이 외에도 ‘STREET NOISE’ 전에서 그의 작품을 직접 살펴볼 수 있었다.
존원(JONONE), Untitled, 2016, 214×157.5cm, Acrylic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전은지 기자
존원(JONONE), Sunkist 2, 2016, 194.5×151.5cm, Acrylic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전은지 기자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컬러풀하다. 의미가 담긴 것이기보다는 질서 없이 자유롭게 여러 가지 색이 조화를 이루는 듯하다. 혹은 어지럽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런 화풍은 그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인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Untitled’나 ‘Sunkist 2’는 그의 닉네임 ‘JONONE’이 규칙적이면서도 어지럽게 배열되어 있다. 얼핏 보면 ‘JONONE’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다.
존원(JONONE), Untitled, 2015, 84×113cm, Acrylic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전은지 기자
존원(JONONE), Untitled, 2015, 75×100cm, Acrylic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전은지 기자
위 두 가지 ‘Untitled’가 잭슨 폴록의 화풍과 가장 많이 닮은 듯하다. 물감을 흩뿌리거나 양동이로 부은 듯한 느낌의 채색과 존원의 태그가 어우러진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어떤 그림이 숨어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역시도 별다른 의미를 담지 않은 것인지 작품 제목이 모두 '무제'다.
존원(JONONE), The Left Side Of History, 2015, 130×195cm, Silkscreen on Paper, 1/30 Edition, Artist Signed, Minoa Collection / 전은지 기자
전시된 그림 중 가장 정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어둡고 차분한 그림이다. 다른 그림이 모두 아크릴 물감과 캔버스에 그려진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종이 위에 그려졌다. 그래피티가 스프레이 페인트나 물감 등으로 거칠게 그려졌다는 인식을 깨준다. 예전에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사용해 그려진 그래피티 작품도 많았다고 한다. 역시나 존원의 태그가 여러 차례 그려진 모습이다. 날카로운 펜으로 그은 듯한 느낌은 붓칠로 표현하기 어려운 한계를 실크스크린으로 극복하게 해준 듯하다.

​​​​​​​이번 낙서는 분명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었지만, 존원이라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알리는 데는 큰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피티가 낙서인 줄 알았다면 그건 오산, 분명 예술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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