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와 전통의 만남, 마패 교통카드로 등장

핸드메이커
핸드메이커2022-01-18 13:55:54
공유하기 닫기
마패 교통카드 /텀블벅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최근 서울시는 「제9회 서울상징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최종 선정된 수상작 전시회를 11월 11일부터 2주간 서울관광플라자 1층 여행자 카페에서 개최했다. 공모전은 지난 6월, 서울이 보유하고 있는 역사, 산업, 문화, 생활 기반 시설 등을 표현한 관광기념품을 주제로 접수받아 심사한 결과 총 28선이 선정됐다.

일반제품 부문 영예의 대상은 조선시대 말을 빌리는 수단이었던 마패를 재해석한〈마패 교통카드>에 돌아갔다.〈마패 교통카드>는 과거 한양의 마패의 기능이 오늘날 서울의 교통카드로 계승된 점에 착안, 서울 대중교통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패 교통카드의 인기가 심상치가 않다. 마패 교통카드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에서 1월 중순 공개 예정이라 밝혔는데, 현재 이 텀블벅의 알림 신청을 해 둔 사람만 2만 명이 훌쩍 넘는다.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언급이 많이 되고 있으며, 텀블벅에서 마패 교통카드 관련 페이지가 열리는 즉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양인들의 호패, 관리인의 마패
여러 가지의 호패 /국립중앙박물관
흔히들 개인의 신분에 따라 다른 모양의 호패를 차야 했다면 마패는 국가의 관리들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으로 쓰였다. 16세 이상 남자가 차고 다녔던 호패는 신분증 구실을 하는 작은 패로 고려와 조선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였으며, 신분 계층별로 재질과 기재 내용에 차등을 두었고 갖고 다니는 자가 죽었을 시 국가에 호패를 반납하였다.

호패제의 목적은 호구를 명백히 해 민정의 수를 파악하고, 직업과 계급, 신분 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나 제일 중요했던 건 백성의 유동과 호적 편성상의 누락·허위를 방지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다만 이 제도는 몇 차례 사용되었다가 중단되기를 반복했는데, 양인들은 호패를 받는 순간 호적과 군적에 올려지고 군정으로 뽑혀 군역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양반 노비로 들어가거나 호패를 위조, 교환하는 등 불법이 많아 나라에 혼란이 심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당시 지배층의 백성에 대한 수탈이 엄청났던 때였고 백성들은 끝없는 가난에 빠져들던 때였다. 양인들은 호패를 받으면 여러 국역을 맡아야 한다는 부담에 호패 받기를 기피했고, 심지어 위탁함으로써 양인들의 수는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급기야 조정에서는 호패를 위조하는 사람은 극형, 호패를 차지 않는 사람은 엄벌을 내리는 등 조치를 취했다.

세조 때는 호패청을 두어 사무를 전담하게 했고, 숙종 때에는 호패 대신 종이로 '지패'를 만들어 갖고 다니기도 쉬우면서 위조를 방지하는 등의 방법을 썼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별로 효과도 얻지 못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밖에 되지 않았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호패를 받은 사람은 전체 인구의 1~2할뿐이라고 나와 있다.
윤병렬 씨의 호패 /국립중앙박물관
호패 폐지론자들과 호패 실시론자들의 의견 또한 팽팽했다. 폐지론자들은 호패법을 위반한 자들의 죄로 감옥에 가두는 것이 번거롭고 민심도 좋지 않아 국가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놨다. 반대로 실시론자들은 모든 백성의 신분을 밝힐 수 있고 호구를 장악해 군정을 확보할 수 있어 국가에 유익하다고 복구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결국 호패제가 처음 실시된 1413년부터 1675년까지 불과 18년 정도밖에 실시되지 못했고, 호패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실제로 국역을 담당한 양인은 별로 되지 않아 효과가 별로 없었던 셈이다. 개인의 신분을 증명하는 문서와 동시에 지배층이 백성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통치 정책으로도 쓰인 것이다.

1677년에 편찬된 '호패사목'에 의하면 호패의 재질은 2품 이상이면 상아로 만든 아패, 3품 이하이면 뿔로 만든 각패, 생원이나 진사면 황양목이라는 나무로 만든 황양목패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치종 호패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 중인 김치종의 호패는 상아로 만들었으며 윗부분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상단 중앙에 구멍이 있고 술이 달린 끈이 연결되어 있다. 장식술은 보라색이고 호패의 전면을 덮을 수 있도록 풍성하다. 장식술은 물소뿔로 만든 장식 사이에 맞물려 있으며 여기에 끈이 연결되어 있다. 사이에는 상아 재질의 장식 두 개가 달려 있다. 호패의 앞면에는 '金致鐘 甲申生 乙酉嘉善'가 붉은색으로 음각되어 있는데 '嘉善'은 종2품의 가선대부의 품계를 말한다. 뒷면에는 '乙酉'이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인장부분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다.
여러 말이 새겨진 마패 /국립중앙박물관
양인들이 호패를 차고 다녔다면, 관리들은 공무로 지방에 갈 때 나라에서 운영하는 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증표로 마패를 썼다. 동그란 모양의 구리패에 말 그림이 한마리에서 최대 열마리까지 새겨져 있다. 마패가 처음 사용된 건 고려 후기로, 원나라의 간섭이 심해 말의 사용 또한 제한되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허락을 받은 관리만이 말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나라에서는 전국 주요 지역에 말을 빌릴 수 있는 역을 설치했고, 관리들은 이 역에서 잠도 자고 말도 바꿔 탈 수 있었다. 이것을 역참제라 불렀는데, 역참은 국가의 명령이나 공문서를 전달하는 일을 포함해 외국 사신을 맞이하고 접대하는 교통·통신 기관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수도를 중심으로 말이 달릴 수 있게 도로를 닦고 곳곳에 역을 두었다. 보통 30리(약 11km)마다 하나씩 역을 설치하고 관리에게 말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다.

마패는 이 역마의 지급을 규정하는 패로 '내용발마패'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는 출장 가는 관리들은 주로 말을 타고 이동했는데 이때 상서원에서 발급하는 마패가 일종의 신분증 역할을 했다. 고려 원종 때 구체적으로 변하면서 조선시대 때 '포마기발법( 역마를 징발하거나 지급할 때 관등 품위에 따라 마패를 사용하도록 정한 법)'을 실시한다. 이후 규정은 '경국대전'에서 법제화되었고 상서원을 설치해 마패를 발급하는 일을 맡았다.
목각 마패 /국립중앙박물관
마패는 처음 나무로 만들었다가 쉽게 부러지고 파손이 심해 1434년 철로 만들어 썼고 이후 구리로도 만들었다. 발급 규정은 1410년 4월 기록에 의하면 출장을 가는 관원이 승정원으로 가서 마패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경국대전'에서는 왕명을 받은 관리는 병조에서 그 등수에 따라 증서를 발급하면 상서원에서 왕에게 보고, 마패를 발급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지방에서는 감사·병사 등이 마패를 지급받아 필요한 때 말을 사용했다.

또 군사 관련으로 긴급할 시 쌍마를 이용해 '긴급사'라는 글자를 새기고 말을 달리게 했다. 마패를 파손했을 시, 2년의 형벌이나 사형까지 할 정도로 엄격했다. 그러나 서리로 근무하던 관리가 마패를 도둑질해 식량을 바꿔 먹거나 하는 등 폐단도 많았다고. 영조 대에는 명나라 연호가 새겨진 마패를 쓰다가 청나라에서 항의를 하는 일도 있었다.

영조 6년 제주 사람이 표류해 청나라에 도달했는데 그가 가진 마패에 명나라의 연호인 ‘천계’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예전부터 쓰던 마패를 미처 다 교환하지 못한 것이라 둘러대며 어찌저찌 해결을 했지만 '영조실록'에서 당시 한 달간의 급박한 상황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마패 /국립중앙박물관
암행어사의 상징인 마패인(馬牌印)이 세 개 찍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암행어사 같은 경우는 마패가 자신의 신분증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역졸에게 마패를 보이며 '암행어사출두'라 했다. 마패는 관리인의 신분증이면서도 비밀리의 왕의 명령을 받아 민정을 살폈던 암행어사의 상징이기도 했다. 임무를 마친 암행어사는 관리의 폐단이나 백성들의 어려움 등을 문서로 작성해 보고했는데 여기에도 암행어사를 상징하는 마패가 찍혀 있었다고 한다. 암행어사에게 발급하는 마패는 왕과 시대에 따라 달랐는데, 숙종과 영조는 3마패를 주고 고종은 주로 2마패를 주었다고 한다. 마패는 최대 10마리까지 새겨져 있을 수 있다고 했지만 암행어사의 마패는 대개 2마리의 말이 새겨진 마패가 많았다.

이유는 지방에 몰래 순찰을 가는 입장에서 말을 많이 끌고 가면 아무래도 노출되기 쉬워 들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3마리 이상의 마패를 쓰는 건 거의 무리였고, 암행어사들은 보통 수행하는 인원만 10명 정도였기 때문에 한 마리는 자신이 타고 나머지 하나는 서리 등이 탔던 것으로 보인다. 마패 양면에는 각각 다른 내용을 새겼는데, 한 면에 관리가 이용할 수 있는 말의 수를 새겼고 다른 면에는 주조 일시인 '연호와 연월일', 상서원에서 이 마패를 발급했음을 증명하는 '상서원인'이란 글자를 새겼다.
마패 교통카드 /서울시
이번 마패 교통카드를 포함한 서울 상징 관광기념품 공모전 수상작은 서울시장상 수여와 함께 총 8천만원 상당의 제품을 서울시가 매입, 서울시정 업무 추진을 위한 홍보용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또한 수상업체에게는 기념품 판매 확대를 위한 실무교육 및 전문가 멘토링, 온·오프라인 매장 입점 및 도록 제작·배포 등의 후속 지원 또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타던 말은 버스와 택시로, 관리인들이 쓰던 마패는 교통카드로 현대에 등장했다. 암행어사들만 들고 다니는 줄 알았던 마패를 주머니에서 꺼내 실제로 쓸 수 있다니, 옛 시대에 머물러 막연하게 생각했던 물건들이 현대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만나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앞으로 전통과 현대의  '신박한' 콜라보를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