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거나 재밌거나, 세계의 마실거리 편집숍 BEST 4

마시즘
마시즘2021-11-1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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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뭐 입지?
옷장은 터질 것 같은데 입을 옷이 없다. 아침마다 옷을 고르느라 헐레벌떡 나가는 풍경은 모든 직장인의 공통점일 것이다.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누군가 나의 취향과 분위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최적의 옷을 대신 골라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곳이 있다. 바로 큐레이션 편집숍이다. 편집숍에 가면 주인장의 취향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큐레이션 된 코디를 만날 수 있다. 단순히 패션을 가격이나 종류로 분류하지 않고, 전체적인 분위기와 느낌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가져다 두는 것이다. 일종의 ‘종합예술’ 이랄까?

각자의 취향이 점점 더 정교해지는 요즘. 편집숍은 의류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하고 있다. 그렇게 정교하게 큐레이션 된 매장을 거닐다 보면 어느샌가 카드를 내밀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편집숍의 매력이 뭔데?
대신 골라드립니다, 편집숍의 매력
우리는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작품, 정보, 콘텐츠…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할지 몰라 패닉에 빠진다. 일명 ‘선택 장애’가 오는 것이다.

이토록 어려운 ‘선택’을 대신해준다는 데 편집숍의 존재 이유가 있다. 편집숍이란 한 매장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상점을 의미한다. 주인장의 관점으로 선별된 제품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정말 알아야 할 것만 큐레이션 해서 쏙쏙 뽑아주는, 일종의 일타강사 선생님 같은 존재랄까? (아니다)

오늘은 재미있고 즐거운 기준으로 선별된 세계의 편집숍을 알아보자.
세상의 모든 커피가 이곳에?
원두 편집숍 ‘커피마메야’
© Koffee Mameya
영화 ‘해리포터’를 보면 해리가 마법학교 상점에 가서 마법 지팡이를 사는 장면이 나온다. 가게 주인은 지팡이에 관하여 모든 것을 꿰뚫고 있어서, 해리에게 딱 어울리는 지팡이를 골라서 꺼내어준다. 현실세계에도 이런 곳이 있다.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 거리에 위치한 커피 원두 편집숍 ‘커피마메야(Koffee Mameya)’다.

마메야는 한국어로 ‘원두집’이라는 의미다. 때문에 ‘카페’라기보다는, 그야말로 원두를 살 수 있는 원두 가게라고 보는 편이 더 맞다. 뒤편의 진열장은 수백 가지의 커피 원두 박스로 가득 차 있다. 바리스타는 이곳에 서서 손님들에게 맞는 원두를 소개해준다. 커피의 생산지와 로스터를 꼼꼼하게 따져서 손님에게 어울리는 원두를 찾아주는 것이다.

이런 원두숍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보다 원두에 대한 성질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의 이름은 구니모토 에이치. 그는 일본에서 힙스터의 성지로 알려진 ‘오모테산도’를 오픈했던 커피업계에서는 슈퍼스타 같은 존재다. 커피계의 약사님인 그에게 찰떡처럼 맞는 원두 처방을 맡겨보면 어떨까?
지구상 모든 매운맛은 여기 있습니다,
 핫소스 편집숍 ‘힛터니스트’
©Heatonist
‘핫소스가 다 같은 핫소스 아니야?’ 한다면 이 분들에게는 실례가 된다. 그야말로 핫소스에 미친 사람들. 미국 뉴욕의 ‘힛터니스트(Heatonist)’다. 국적과 맵기 별로 철저하게 분류된 수백 가지의 핫소스가 브루클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힛터니스트에서는 무려 ‘핫소스 소믈리에’가 엄선한 전 세계 100가지 이상의 핫소스를 한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한국인에게 핫소스는 타격감도 없다고? 모르는 소리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가장 매운 소스는 라스트댑 (The Last Dab)으로, 아폴로 페퍼를 진하게 농축한 소스다. 아폴로 페퍼는 ‘세상에서 가장 사나운 고추’라고 불리는데, 후기를 빌려오자면 한 입 먹는 순간 혀는 타오르고 눈에서는 불타는 눈물이 쏟아질 진다고 한다. 이거 뭐야.. 무서워.

이런 무시무시한(?) 핫소스를 아무거나 살 수는 없겠지. 배스킨라빈스에 가면 맛보기 스푼을 쓸 수 있는 것처럼, 힛터니스트에서도 각종 핫소스를 직접 시음할 수 있는 ‘한입만’ 찬스가 주어진다. 물론 신라면도 못 먹는 맵찔이인 마시즘은 극구 사양할 테다. 하지만 매운맛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생애 한 번쯤 가볼 법한 버킷리스트 같은 장소가 될 것이다.
쿨하고 힙한 피클을 찾나요? 피클 편집숍 ‘피클가이즈’
©Pickle Guys
초록색의 거칠고 울퉁불퉁한 몸통의 악어. 닮은꼴이 떠오른다고? 그렇다. 바로 피클이다. 악어를 캐릭터로 한 ‘피클가이즈(Pickle Guys)’. 이곳은 미국 뉴욕에 위치한 피클 전문 편집숍이다. 새콤달콤한 수박 피클부터 빵과 버터에 발라먹는 피클까지 수십 종류의 피클을 만날 수 있다.

세상에 피클의 종류가 그 정도로 많다고? 그렇다. 물론 피자에 딸려오는 ‘오이피클’만 떠올리는 것은 곤란하다. 서양권에서는 할라피뇨, 올리브, 심지어는 계란까지도 절인 물에 담가서 만든 것이라면 모두 피클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장아찌나 젓갈의 개념을 떠올려보면 쉽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피클 국물만 따로 모은 ‘피클 브라인’을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비밀 레시피로 만든 식초 소금물인데, 마시는 방법으로 위스키 한 잔과 함께 마시거나 운동 후 수분 보충으로 마실 것을 권하고 있다. 언..젠가 마시즘이 리뷰할 수 있겠지?
최고의 녹차를 마시는 곳, 차 편집숍 ‘잇포도’
©IPPODO TEA
일본 교토에 위치한 ‘잇포도(IPPODO TEA)’는 일본의 차 문화를 대표하는 편집숍이다. 1717년에 문을 열어 무려 300년 역사라는 역대급 정통을 자랑한다. 이곳에서는 녹차, 말차, 호지차 등 일본에서 나오는 모든 종류의 녹차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최소 30만 원짜리 차부터 한 봉지에 100만 원에 이르는 차까지 가격대도 다양하다. 자동차도 아니고, 마시는 차..를 이렇게 비싸게 주고 사 마신다고?

그렇다. 특히 잇포도는 엄격한 품질관리로 최상의 녹차를 제공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300년의 세월 동안 단 3번만 문을 닫았는데, 그 이유는 그 해 차나무의 작황이 좋지 않아서 낮은 품질의 녹차를 손님들에게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상품성에 대한 입구 컷이 굉장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설레는 점은 매장에 방문만 하더라도 방문객들에게 30만 원 상당의 차를 시음용으로 한잔씩 내어준다고 한다. 내가 어디 가서 그런 차를 마셔보겠어? 이처럼 전 세계 어디에서나 최고급의 녹차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잇포도를 기대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편집숍으로 점쳐보는 음료의 미래는?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간편 배송이 되는 시대에서 편집숍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빛난다. 온라인에서 사면 더 저렴하게 살 수 있지만, 우리가 굳이 편집숍에 방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메마른 시대에 재미있게 구경하고 만져보며 경험하는 재미는 직접 오감으로 느껴보지 않고는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이 된다.

음료를 단순히 갈증을 채워주는 마실거리로 보는 것을 넘어서, 미각과 후각을 동원해 즐기는 즐길거리라고 바라본다면 우리의 관점이 재미나게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도 유쾌한 마실거리 편집숍을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