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페트병 시점으로 보는 원더플한 재활용 여행기

마시즘
마시즘2021-09-06 0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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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다니는 조카에게 ‘페트병 분리배출의 필요성’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인슈타인이 문과생에게 특수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는 것만큼 난해한 일이다. 페트병을 함부로 버리면 지구가 아프다고 했더니, “지구가 왜 아파?”라는 말이 나온다. 아니면 동물이 아플 거라고 했더니 “어떤 동물이 아파?”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어떤 동물인지는 모르겠고 일단 내 머리는 아픈 게 확실한데 말이지.

조카의 물음표 공격을 견디지 못한 나는 소파에 쓰러진다. 이걸 가르쳐야 하는데… 조카를 2대 마시즘이자, 원더플 피플*로 키워야 하는데… 동요 소리와 함께 눈을 감는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아니 어린 시절보다 더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하늘은 파랗고, 내 몸은 왜 페트병이지?
눈을 떴다. 정확히는 눈을 뜬 기분이라는 게 맞겠다. 몸속을 채우고 있던 무거운 것들이 스르륵 빠져나가자, 투명한 천장에 하늘이 보인다. 그런데 저 천장은 유리가 아니라 투명 음료 페트병이잖아! 뭐야 나 페트병에 갇힌 거야?

아니었다. 나는 페트병에 갇힌 게 아니라, 페트병이 되어있었다. 문제는 깨어나자마자 다 마셔져서 버려질 신세라는 것. 이거 시작과 동시에 게임오버잖아! 살려줘!
버려지면서 시작되는 페트병의 2막
그동안 수많은 페트병 속 음료를 마셔본 나는 안다. 이 세계는 누가 마시느냐에 따라 버려지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최후(?)가 결정되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 시절의 나는 별자리나 혈액형, MBTI 대신 페트병을 버리는 것을 보고 사람의 성격을 아래와 같이 판단했다.

• 지구 파괴자 : 페트병 안에 쓰레기를 넣고 무단으로 버림
• 동네 파괴범 : 마신 페트병을 아무 데나 버림
• 배운 사람 : 마시고 난 다음에 분리배출함에 버림
• 더 배운 사람 : 마시고 난 후 속을 씻고 라벨 떼고 버림
• 에코 프랜들리 : 마시고 난 다음에 속을 씻고 라벨 떼고 찌그러트려서 뚜껑 닫고 버림

하지만 페트병이 된 지금의 나는 누구를 판단할 수 없다. 나를 잡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때 병뚜껑이 열렸다. 제발, 쓰레기만 넣지 마라!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다시 채우는 건 진짜! 진짜 아니야.

하늘이 도왔다. 페트병 안에는 물이 들어왔다. 음료가 있던 속은 깨끗이 비워졌다. 기분이 나른할 무렵 인간은 페트병인 내 몸체를 구겼다. 스포츠 마사지라도 배운 건가 손이 매운데? 내 몸은 카이로프랙틱이라도 받는 것처럼 구겨졌고 이내 뚜껑이 닫혔다. 그리고 선배 페트병들이 있는 그곳으로 던져졌다.
인간의 손을 떠나서 재활용 업체로
일명 제로 웨이스트 박스. 투명 음료 페트병만 모인 이곳은 출근길 만원 지하철 같은 느낌이다. 안 그래도 페트병으로 가득 찼는데, 몸체까지 꾸깃꾸깃 구겼으니 숨 쉴 공간도 부족하다(페트병은 숨 안 쉰다). 툴툴대는 내게 페트병 선배님들은 세상 좋아졌다며 “나 때는 말이야”를 외친다. 아니 여기 있으면 비슷한 때 태어난 거 아냐?

공동주택에서 투명 음료 페트병 분리배출 의무화가 시작된 것은 지난 크리스마스(2020년 12월 25일)부터다. 예전에는 플라스틱으로 분류되어 여러 제품들과 섞이거나, 색깔을 가진 페트병들과 낯선 동행을 해야 했다. 버리는 사람이야 재활용을 위해 분리배출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재활용되는 비율은 낮았던 시대다.

그러니 투명 음료 페트병만, 심지어 내부를 씻고 라벨을 떼어서 모인 것은 비행기로 치자면 ‘퍼스트 클래스’ 같은 것이라고 한다. 구겨졌으니 많은 양을 수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재활용 선별 작업에서부터 실제 재활용 단계까지 쉽게 프리패스할 수 있다고.
옹기종기 모여 재활용이 되러 이동하는 사이 길가에 떨어진 페트병이 보였다. 날개도 다리도 없는 페트병은 재활용의 기회를 잡을 수 없이 쓰레기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다. 부디 누군가 주워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씻기고, 갈려서 섬유로 다시 태어난다
투명 음료 페트병의 재활용 과정은 마치 영화 <신과 함께>를 직접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여러 단계를 거쳐 투명 음료 페트병은 재활용이 가능한지 선별된다(나의 경우는 이미 선별되어 왔지만). 여기에 세척이 되고 조각조각 갈리면서 형체를 잃는다.

그리고 물에 빠지게 되면 색깔이 있던 병뚜껑과 고리에 사용된 플라스틱들이 각각 분리된다. 순도가 높은 투명 페트병은 물 밑에 가라앉고, 나머지 이물질은 물 위로 뜬다.

다시 건조와 세척을 마치면 투명한 가루가 된다. 이때부터 우리를 ‘페트병’이 아닌 ‘페트 플레이크’라고 부른다. 페트 플레이크는 A, B, C 등급에 맞춰 새롭게 태어난다. A등급은 의류나 가방 등 여러 제품으로 태어나지만, B와 C등급은 솜으로 운명이 결정되어있다. 제발 A등급 가자! 수능 때도, 대학교 학점으로도 못 받아 봤지만 제발 에이!

페트병 선배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이미 씻겨지고 잘 분리배출된 퍼스트 클래스이기에 A등급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잠깐이었지만 잘 챙겨준 인간… 아니 주인녀석 진짜 정말 고맙다!

주인의 건강과 행운과 복권 당첨을 빌며 뜨거운 온도에 몸(페트 플레이크)을 맡겼다. 그리고 나는 길고 긴 실이 되었다. 그렇게 실이 되어 이제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마쳤다. 나는 과연 무엇이 될까? 옷 아니면 신발? 혹은 가방?

내가 된 것은 코카-콜라의 ‘알비백’이다. 예쁘고 실용적인 코카-콜라의 굿즈가 된 것이다! 나(알비백)는 투명 음료 페트병을 올바르게 분리배출 해준 인간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그렇군. 내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아니 하얀 마음 백구가 되는 건가! 잠깐이었지만 좋은 추억을 남긴 인간에게 다시 돌아간다. 너의 고마움은 앞으로 멋진 가방으로서 보답할게!
언젠가 다시 만나자, 원더플이 되어!
간만의 꿀잠이었다. 눈을 떴다. 여전히 동요가 흐르고 있고, 턱을 괴고 있는 조카는 언제라도 나에게 물음표를 날릴 준비다. 그리고 소파 한구석에는 마시다 만 페트병이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남은 음료를 모두 마시고, 라벨을 벗기고 페트병을 씻었다. 조카는 소꿉놀이를 하듯 내가 투명 음료 페트병을 씻는 것을 따라 한다.

‘띵동!’ 문 밖에 택배기사님이 오셨다. “코카-콜라가 보낸 건데요? 음료는 아니네?”

열어보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반가운 마음이 솟아난다. 페트병들, 다시 돌아오느라 고생했어.

※ 원더플(ONETHEPL, 한번 더 사용되는 플라스틱) 캠페인은 사용한 음료 페트병을 모아서 재활용을 하는 코카-콜라의 자원순환 캠페인입니다. ‘마시즘(http://masism.kr)’은 국내 유일 음료 전문 미디어로, 코카-콜라의 원더플 피플로 선정되었습니다. 코카-콜라 저니에서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