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즈도 오마주 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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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1-05-2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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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고독과 공허를 그리다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고독을 그린 작가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작가다. 그는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로 유명하며 그의 그림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도시인의 삶을 화폭 위에 표현하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현대의 화가, 영화감독 등에게 수많은 영감을 줬다. 그의 그림은 도시인의 고독과 공허함을 담고 있는데 미국 도시의 일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정적인 느낌을 주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1960년대, 1970년대 팝 아트와 신사실주의 미술이 그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경향을 보이며 국내에서도 CF나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영상에서 이를 오마주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Hotel window, Edward Hopper,1955, via Wikimedia Commons
당시의 지극히 미국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그의 그림이 현대에도 많은 공감을 이끌고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찌 보면 도시의 고독과 공허함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동일한 기조인지도 모른다. 사실적인지만 어딘지 서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당시 도시인의 모습을 그렸으나 우리는 그 안에서 지금의 모습을 돌아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드워드 호퍼의 삶과 작품의 시대적 모습

에드워드 호퍼는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그의 작품은 양차대전 사이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에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현대까지 많은 예술인이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그의 활동 당시 실험적인 작품이 큰 유행을 끌었으나, 이에 영향을 받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작품 세계를 더욱 확고히 했다는 점에서 그의 그림에는 특별함이 느껴진다.

그는 처음 그림을 접하며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웠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화가라는 장래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래 남자아이들과 다르게 스포츠 같은 활동보다 그림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뉴욕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미국의 화가인 로버트 헨리에게 그림을 배웠고 로버트 헨리 역시 마네 등에 영향을 받아 도시의 정경이나 인물을 그리곤 했는데 자연스럽게 그를 통해 미술을 배웠던 호퍼 역시 자신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도시인의 이미지를 화폭 위에 담게 됐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뉴욕의 모습을 가장 잘 아는 화가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평생 뉴욕에서 살았던 작가로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자신의 눈에 비치는 뉴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왔으며 뉴욕이 대도시로 변모해가는 과정이 그의 작품의 핵심적인 주제가 됐다.

호퍼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도 유명하게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의 시작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다. 자신의 본거지인 뉴욕에서 1913년 아모리 쇼를 통해 그림을 전시하고 자신의 첫 작품을 팔기는 했지만, 그 이후 10년에 걸친 시간 동안 또 다른 작품을 팔지는 못했다고 전해진다.
에드워드 호퍼의 초기작품, House by the railroad, Edward Hopper, 1925, via Wikimedia Commons
집안 환경이 부유하지 않았던 그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1924년까지 광고 미술 제작 등 상업 화가로서 활동하며 오랜 기간 무명작가의 삶을 살아갔다. 유화 작품으로 유명하게 알려진 것과는 달리 수채화나 에칭에도 소질을 갖고 있어 삽화용 에칭 판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에드워드 호퍼가 작업한 삽화 작품, Smash The Hun, Dry Dock Dial cover, Edward Hopper, via Wikimedia Commons
사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경제적 호황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양차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경제 공황을 겪기도 하지만 뉴욕은 점차 대도시로 접어드는 과정을 겪고 호퍼는 그 과정에서 활기를 느끼는 것이 아닌, 고독과 공허, 외로움 등의 감정을 포착한다. 어쩌면 호퍼는 미술 작업을 하는 동시에 주목을 받은 것이 아닌 오랜 무명작가 생활 이후에 자신의 작품이 공감을 얻었기에 대도시에서 사는 도시인의 일상적인 모습을 직접 경험하고 세밀하게 관찰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무명 기간 비록 수입을 얻기 위해 상업적인 그림인 삽화를 그렸으나 삽화가로서 삶을 행복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호퍼의 화가 인생을 언급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그의 아내 ‘조세핀 버스틸 니비슨’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로맨틱하면서도 평생을 함께한 부부의 모습으로 미국인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이 전혀 싸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아내인 조세핀 역시 화가로서 활동했으며 호퍼와는 같은 학교에서 함께 미술을 공부했던 사이다. 조세핀도 예술가로서 자아를 가진 화가였기에 성향적으로 두드러지는 면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결혼 이후 화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던 호퍼를 뒷받침하며 대립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두 사람의 성격은 전혀 달랐으며 이러한 문제는 두 사람이 결혼 생활 내내 잦은 싸움을 하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호퍼와 조세핀이 눈을 감는 날까지 지속했다.
Automat, Edward Hopper, 1927, via Wikimedia Commons
High Noon, Edward Hopper, 1949, via Wikimedia Commons
호퍼의 삶에서 조세핀의 등장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싫어했던 삽화가로서 삶을 끝내고 본격적인 화가의 작업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왔던 이가 바로 그의 아내였다. 두 사람이 결혼 전 조세핀이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할 수 있었는데 그때 호퍼의 그림도 함께 전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계기로 호퍼의 작품이 주목을 받을 수 있었고 이후에 열렸던 개인전을 통해서는 출품작을 모두 판매하는 등 화가로서 그의 작품이 대중에게 공감을 얻는 것에 성공하게 된다.

그녀는 평생을 호퍼와 함께했으며 죽는 그 순간까지도 두 사람은 같은 병원에 있었다고 알려진다. 조세핀은 호퍼의 인생에서 대부분 작품의 여성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으며 그가 작품의 방향을 고민하고 괴로워할 때는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함께 찾기도 했다. 실제 ‘아침의 해’, ‘여름날’ 등 그의 작품에 등장한 여성 모델은 대부분 아내 조세핀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호퍼에게 있어서 조세핀은 자신의 인생에서 혹은 화가로서의 삶에서 분리될 수 없었던 존재로 여겨진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앞서 여러 번 언급했듯 호퍼의 그림은 고독과 외로움의 정서를 담고 있다. 새벽녘 잔잔하게 고여있는 호수 같은 서정적인 감성이 느껴지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도시의 일상을 그린 만큼 바로 우리 삶 자체를 화폭에 담아 사실주의의 리얼한 감정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호퍼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이 가장 큰 애정을 보인 화가인 만큼 당연히 대표작이 넘쳐나지만, 그중에서도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호퍼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도시의 밤을 표현한 이 그림은 큰 창문을 통해 술집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으며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다지 밝은 느낌은 아니다. 한 사람은 홀로 고독하게 술을 마시고 있고 세 사람은 모여 있지만 그들의 분위기 역시 밝게 느껴지진 않는다.
Nighthawks, Edward Hopper, 1942, via Wikimedia Commons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그림이 전시되는 것과 동시에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며 그 관심은 이내 높은 호응으로 이어졌다. 1942년 그려졌던 이 그림의 시대적 배경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던 후인데 호퍼의 작품 활동 전반에 기인한 세계대전 이후 도시인이 느끼는 고독과 공허, 대공황의 모습을 화폭에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뉴욕의 한 술집으로 예상하게 되는 그림 속 장소는 맨해튼 근처에 있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한 식당이라고 한다. 맨해튼은 뉴욕 보헤미안의 집결지라고 볼 수 있는데 당시 그리니치 빌리지는 자유를 추구하는 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곳이었다. 하지만 호퍼의 그림 속 그리니치 빌리지의 모습은 인적이 끊긴 어두운 밤을 보여준다. 큰 유리창은 외부와 내부의 단절을 상기하게 되는데 대도시의 고립이라는 소재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한국일보의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E.호퍼의 그림 속에서 보는 사회적 거리 두기’, 김선지 작가의 기사에서는 실제 호퍼가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현대 사회의 소외나 외로움을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이는 과장된 해석이라고 언급했음을 전한다. 하지만 본 기사에 따르면 후에 그는 스스로 ‘아마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도시의 외로움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라고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호퍼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 굳이 현대인의 공허와 대도시의 우울함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호퍼는 몇 번의 여행을 제외하면 한평생을 뉴욕에서 살았으며 단지 자기 삶의 무대이자 눈에 비친 도시의 정경을 사실적으로 담고자 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전반적인 공허함의 기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호퍼의 본래 목적은 자신 주변의 모습을 담는 것에서 기인하며 어쩌면 자연스럽게 그 시기 뉴욕이 겪고 있던 대도시의 침체적인 분위기가 본격적인 주제가 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호퍼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표정을 짓거나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어딘지 부자연스럽고 멈춰 있는 듯한 이미지를 준다. 마치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마네킹같이 묘사하였는데 그래서인지 호퍼의 그림은 삶과 주변의 모습을 그렸지만 어딘지 새로운 환경에 와 있는 듯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Hotel lobby, Edward Hopper, 1943, via Wikimedia Commons
Hotel by a Railroad, Edward Hopper, 1952, via Wikimedia Commons
Office at night, Edward Hopper, 1940, via Wikimedia Commons
그의 그림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빛’과 ‘공간’이다. 자연광과 인공적인 빛의 대조도 느껴지지만 가장 큰 차이는 빛이 닿는 곳과 닿지 않는 곳이다. 또 전반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을 연출하듯 그림 구성을 나눴는데 텅 빈 커다란 공간의 표현 역시 공허하고 고독한 인간의 내면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Early sunday morning, Edward Hopper,1930
Newyork movie, Edward Hopper, 1939, via Wikimedia Commons
사실주의로 자신의 눈에 비치는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한 호퍼의 그림은 독특하게도 세밀한 표현법을 지향하지 않는다. 흔히 사실주의 예술가들은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사실적인 묘사를 선보일 때도 있으나 호퍼의 그림은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평면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호퍼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화풍은 그의 작품 활동 전반에 깔린 고독과 공허의 느낌을 더욱 강조해주는데, 희미한 음영을 통해서 그림 속 분위기를 더욱 극대화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헤이즈도 오마주한 그의 작품들

그의 작품은 어딘지 정적이고 고독하나 그러한 특성 덕분에 현대에도 많은 예술인이 이를 오마주하고 있다. 호퍼의 작품은 빛의 사용, 공간을 통한 구성 등이 돋보이며 이는 예술적으로 재해석할 여지가 충분한 것도 한몫한다. 하지만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호퍼가 보여주는 대도시의 이미지에 공감하는 현대인이 많다는 것이다.

2013년 오스트리아에서 개봉한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감독 구스타프 도이치의 작품이다. 그는 영화 전반에 걸쳐 호퍼의 그림 13점을 조명한다. 본 영화와 호퍼의 그림이 연결되는 지점은 아무래도 같은 시대의 모습을 표현한다는 점에 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셜리를 중심으로 화면이 전개되는데 그녀의 취미 활동인 라디오 청취를 통해 세계대전, 그로 인한 경제 대공황 등 다양한 시대적 사건을 예술을 통해 기록한다. 영화는 나레이터의 해설을 통해 전개되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중 극 중 연기자의 대화는 극소수에 해당한다. 주인공인 셜리조차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영화는 한층 더 정적이고 호퍼의 그림 속 무드가 더 깊게 느껴진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 한국 공개 포스터
호퍼의 그림이 등장하거나 이를 오마주한 예술 작품은 매우 많다. 국내에서 이를 찾아보자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SSG 광고를 꼽을 수 있다. 배우 공유와 공효진이 나와 호퍼의 그림 속 명장면을 재현하곤 했는데 단조로운 움직임, 빛의 사용, 화면의 구성면에서 여러모로 호퍼의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유튜브 영상 SSG.COM 쓱광고 캡쳐 (https://youtu.be/P--oQ59Lwrk)
최근 호퍼의 그림을 오마주한 예술에서는 가수 헤이즈의 신곡 ‘헤픈 우연’의 뮤직비디오를 꼽을 수 있다. 헤이즈는 타이틀곡을 통해 우연과 연관을 가지는 사람의 인연에 관해 이야기하며 뮤직비디오 내용을 전개해 간다. 거듭되는 우연 속에서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인연을 마치 호퍼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으로 연결 지어 표현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뮤직비디오는 가수 헤이즈 본인과 함께 배우 송중기가 출연해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명장면을 재현한다.
헤이즈 '헤픈 우연' 뮤직비디오 캡쳐 (https://youtu.be/AJPLgrfBiBo)
헤이즈 '헤픈 우연' 뮤직비디오 캡쳐 (https://youtu.be/AJPLgrfBiBo)
사실 호퍼는 다른 유명 예술 작가에 비해서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화가로서 작업이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는 것 외에 그는 잔잔한 일생 속에서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며 아내 조세핀과 부부싸움을 하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여행도 다니는 등 비교적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다른 화가들처럼 극적인 인생을 살아간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호퍼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대중의 큰 공감을 얻고 가장 많은 오마주를 받았던 작가로 기억되는 것은, 화가 본인의 시선에 포착된 현대인 모두의 고독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기 때문은 아닐까. 호퍼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 속에서 도시를 살아가는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을 완성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