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영원한 공주님 바비인형, 62년간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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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1-03-16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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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최근 여아 인형의 대표 브랜드인 바비(Barbie)가 지난 3월 9일, 62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바비의 생일 축하 이벤트는 마텔 공식 온라인몰 마텔샵과 네이버 마텔 공식 스토어를 통해 진행되었고, 완구 전문기업 손오공은 62년간 아이들의 꿈을 응원한 바비의 생일을 기념해 더 많은 아이들이 바비를 경험할 수 있도록 온라인 할인 프로모션을 실시했다.

바비의 국내 독점 유통을 맞고 있는 손오공 담당자는 "또래 집단과 함께 놀면서 사회적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워 가는 아이들에게 대안으로 바비 인형을 주고 있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토이 스토리에 등장한 바비 /flickr
사실 바비는 6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장난감과 인형완구 시장에서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인형과 그의 생활 방식에 대한 패러디 등 바비는 또한 긴 시간 동안 종종 수많은 논란과 소송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국의 장난감 회사 마텔은 10억개 이상의 바비를 판매했고, 바비는 액세서리, 인형옷, 바비의 친구들 등 다양한 판매 수단으로 바뀌며 장난감 산업의 판도를 바꾸었다. 1987년부터 바비는 애니메이션, 영화, TV스페셜, 비디오 게임, 음악 등을 포함한 미디어 프랜차이즈로도 확대되었다.


바비의 역사적인 탄생

바비의 창시자인 루스 핸들러는 그의 딸 바바라가 어른의 모습을 한 종이 인형을 갖고 노는 것을 보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그 당시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인형들은 대부분 아이 모습의 인형이었기 때문에, 핸들러는 마텔의 공동 창업자인 남편 앨리엇에게 어른의 몸을 한 인형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남편은 반대했고, 1956년 바바라와 유럽 여행을 하던 중 핸들러는 빌트 릴리라 불리는 독일의 장난감 인형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독일의 빌트 릴리 /flickr
마치 어른처럼 생긴 이 인형은 핸들러가 상상하고 있던 인형 그 자체였고, 그는 인형 세 개를 구입하게 된다. 하나는 딸에게 주고 나머지는 마텔로 가져가 엔지니어인 잭 라이언의 도움을 받아 인형을 다시 디자인했다. 이 인형은 딸의 이름을 따 바바라라고 지어졌고, 1959년 3월 9일 뉴욕에서 열린 미국 국제 장난감 박람회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 날짜는 지금도 바비의 공식적인 생일로 쓰인다.
1959년, 첫 선을 보인 바비 /flickr
이 첫번째 바비는 흑백 무늬의 수영복을 입고 있으며 옷도 따로 구매해 입힐 수 있었다. 바비가 생산된 지 그 해에만 약 35만개의 바비 인형이 팔렸다고 한다. 핸들러는 바비가 어른스러운 외모를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초기 시장조사의 결과 일부 부모들은 윤곽이 선명한 가슴이 있는 어른 모습의 인형을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이후 바비의 외모는 계속 바뀌었고, 1971년 바비의 눈은 원래 모델의 점잖은 곁눈질 형태에서 앞을 똑바로 보는 것으로 변했다.

바비는 TV 광고에 기반을 둔 마케팅 전략을 가진 최초의 장난감들 중 하나였다. 대상은 부모가 아닌 어린 아이들로, 광고에는 '나는 너처럼 될 거야!', '아름다운 바비, 너는 바로 나야', '바비는 나의 미래야' 란 문구가 등장했다.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마텔은 1초마다 세 개의 바비가 팔린다고 밝혔고, 150여개국에서 10억개 이상의 바비 인형이 팔린 것으로 추정한다.
다양한 모습의 바비 /flickr
10대 패션 모델로 활동하던 때부터 바비는 우주인, 외과 의사, 올림픽 선수, 스키 선수, 에어로빅 강사, 수의사, 록스타, 의사, 외교관, 야구선수, 소방대원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등장했다.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으로 등장했지만 어른의 모습을 한 바비는 어른스러운 특징을 가짐으로써, 아이들이 되고 싶은 어른의 어떤 모습이든 인형 자체로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바비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만큼 영향력도 컸기 때문에 수많은 논란이 많았다. 이를테면 '금발의 플라스틱 인형은 아이들에게 비현실적인 신체의 이미지를 주입시킨다'라는 비난이라든지, 금발의 백인 미녀만 나오는 바비에게 다른 인종, 다른 문화는 없다는 등의 지적들이다.

전자에 대한 지적은 아이들이 바비를 자신의 롤모델로 여기고, 바비를 본받으려 똑같이 되고 싶어할 것이라는 우려다. 바비에게 있어 가장 일반적인 비판은 바비가 젊은 여성들을 위해 비현실적인 신체 이미지를 홍보하고, 바비를 추종하는 아이들이 바비와 똑같은 몸매를 갖고 싶어 무리한 다이어트 등을 하다 거식증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를 의식했는지 1997년, 바비의 체형 틀은 다시 디자인되었고 이전보다 더 두꺼운 허리를 갖게 되었다.
우리네 모습과 비슷한 바비 /flickr
마텔은 바비의 체형 변화를 두고 인형을 현대 패션의 디자인에 더 적합하게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마텔은 이후로도 바비를 두고 다양한 체형 변화를 시도했으며 이 같은 변화는 언론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키가 크고 귀여운 인형'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던 바비였지만 요즘의 바비는 좀 더 현실적이며, 지금도 현실적으로 변하고 있다.
Cinco de Mayo Barbie /flickr
문화 다양성 부족에 대한 지적도 마텔은 화답했다. 1980년부터 마텔은 히스패닉 계의 인형들을 생산했고, 다문화주의를 받아들여 토속적인 의상과 머리색을 갖춘 채 출시된 'Cinco de Mayo Barbie'는 가장 극적인 발전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후 아프리카계 미국인 바비, 블랙 바비 등이 출시되었고 현재는 마텔에서 22개의 피부톤, 94개의 머리색, 13개의 눈 색, 5개의 바비 체형을 제공하고 있다.

바비의 행보 이것저것
바비와 그의 남자친구 켄 /flickr
바비의 일명 '베프'인 미지 헤들리 /flickr
바비의 62년간의 시간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바비는 존재하는 동안 200개가 넘는 경력을 가졌으며, 그의 남자친구인 켄은 바비가 탄생한 이후 2년만에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참고로 켄은 핸들러의 아들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또한 바비가 단지 섹스 심벌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대응해 1963년 바비의 가장 친한 친구인 미지 헤들리가 소개되었고, 1년 후 바비의 첫번째 여동생인 스키퍼 로버츠가 발매되었다.
바비, 앤디 워홀과 함께 /flickr
앤디 워홀의 모습을 한 바비 /flickr
바비가 앤디 워홀과도 인연이 있다는 걸 아는가? 팝 아티스트들이 바비를 묘사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앤디 워홀과 바비와의 만남은 수만 개의 바비 인형을 갖고 있었던 한 열렬한 바비 수집가와 앤디 워홀과의 오랜 우정도 한몫했다. 앤디 워홀은 바비의 초상화를 그려 보라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후 프랑스에서 시작해 미국의 9개 도시를 돌며 바비 인형을 그린 전시회를 열었다.
캠벨 수프 티셔츠를 입은 바비 /flickr
바비 그림을 기본으로 '앤디 워홀 바비'란 이름의 인형은 앤디 워홀 재단의 협력을 얻어 2015년부터 출시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바비의 머리는 앤디 워홀의 트레이드 마크인 흰 머리칼로 스타일링되었고, 앤디 워홀의 시그니처인 캠벨 수프 티셔츠를 입었다.
바비 'SHERO' 시리즈 /flickr
또한 2018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에 맞춰 마텔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비범한 여성의 예'로 영웅을 뜻하는 'HERO'와 여성의 'SHE'를 합쳐 여성 영웅을 뜻하는 'SHERO' 시리즈를 출시했다.

이 라인업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을 그린 17종의 새 바비 인형들로 구성되었다. 세계 3대 메이저 발레단 중 하나인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최초 흑인 여성 수석 무용수인 미스티 코플랜드, 여성의 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미국의 유명 플러스 사이즈 모델 애슐리 그레이엄, 최초로 뉴질랜드인이자 마오리족인 스포츠 기자 멜로디 로빈슨 등의 여성들을 모델로 해 바비를 출시했다.
왼쪽부터 아멜리아 에어하트, 프리다 칼로, 캐서린 존슨을 형상화한 바비 /flickr
또한 아멜리아 에어하트, 프리다 칼로, 캐서린 존슨 등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여성들이 등장하는 "Inspiring Women" 컬렉션도 발매했다. 에어하트는 혼자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여성이자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까지 단독 비행을 한 최초의 여성이었다. 칼로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뿐만 아니라 널리 사랑받는 화가였으며, 오늘날에도 여성 활동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아티스트였다. 대통령 훈장을 받기도 한 존슨은 나사 랭글리 센터의 물리학자, 우주 과학자이자 수학자이기도 하다.
바비의 영향력, 이 행보가 중요한 이유
바비 /pixabay
바비는 오늘날에도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빛과 부정적인 어둠을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 바비 브랜드 글로벌 본사와 영국 카디프 대학의 신경 과학자들은 공동 연구를 통해 인형 놀이가 실제 아동 정서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했다. 신경 영상 기법을 사용한 이 연구는 2020년 4~8세 아동 4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다양한 종류의 바비 인형과 플레이세트를 가지고 노는 동안 이들의 뇌 활성도를 관찰했다.

결과는 인형 놀이를 하는 동안 공감을 비롯한 사회적 처리 능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이 나타났다. 심지어 아이가 혼자서 인형을 가지고 노는 동안에도 공감을 발달시키는 뇌 영역의 활성화는 동일하게 나타났다. 인형 놀이를 또래 친구와 함께하지 않아도 공감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바비로 인한 연구엔 부정적인 결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들이 마른 몸매를 가진 인형을 가지고 놀면 섭식장애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섭식장애는 생리·정신적 원인으로 인해 음식 섭취량이 비정상적으로 많거나 적은 증상으로 거식증과 폭식증이 해당되는데, 3월 10일 CNN·데일리메일이 영국에서 5~9세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마른 체형의 인형을 가지고 논 소녀들이 마른 몸매를 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여성 아이들의 워너비이기도 한 바비 /flickr
이렇듯 바비는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인형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캠페인을 진행하고 계속되는 변화를 추구하며 여성들의 사회 참여와 자아 실현의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비판과 논란에 휩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바비를 만드는 회사인 마텔은 비판과 논란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비판과 지적을 수용하며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아이들은 바비를 보며 바비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낄 수도 있고,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낄 수도 있다. '넌 뭐든 할 수 있어' 라고 바비가 내건 슬로건의 문구처럼, 바비를 보며 아이들이 되도록이면 선한 영향력을 받아 자라는 세상이 바비가 꿈꾸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이번해 62번째 생일을 맞이한 바비는 코로나19로 오히려 반사이익을 본 케이스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자녀가 스마트폰으로 영상이나 게임에 몰두해 이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부모들이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바비 인형 같은 장난감을 아이들에게 사주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텔의 2020년 3분기 매출은 작년 동기보다 10% 증가했으며, 그 중 바비의 판매액은 29%나 급증해 20여년 만의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인기가 많은 만큼, 아이들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떠한 영향력을 크게 미칠 수 있다는 것을 62살의 바비가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