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특별한 OOTD] 이번 겨울 ‘꾸안꾸’ 룩? 양털 같은 플리스(후리스)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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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2020-11-18 13: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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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마을버스에 후리스 입은 사람들이 탔다. 양떼목장 같고 너무 좋다”라는 글을 봤다. ‘후리스’가 뭔지 안다면 피식 웃으며 공감할 수 있는데, 정확한 명칭은 ‘플리스’다.

겨울이 되면서 뽀글뽀글한 양털처럼 생긴 플리스 재킷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찬 바람이 불어오면 호빵만큼이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리스 재킷은 하나만 입어도 따뜻한 보온성은 물론 가볍고 부드러운 촉감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아웃도어 의류에 주로 사용

사전에서 찾아본 플리스(fleece)는 양모의 길고 부드러운 털을 곱슬거리게 한 천이나 이와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솜털을 세워 부드럽게 만든 직물이다. 또는 둥그렇게 더미가 쌓인 것처럼 표면에 파일(pile)이 일어나도록 만든 가볍고 따뜻한 폴리에스터 소재의 직물이나 편물을 말한다.
pixabay
플리스가 의류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9년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에 있는 말덴 밀즈 사는 폴리에스터 플리스를 최초로 제조한 업체다. 1906년에 설립돼 경량 원단과 울 의류 전문 업체로 성장하다가, 아웃도어 제조업체인 파타고니아 사와 협업해 스포츠웨어 시장에 제품을 플리스 재킷을 출시했다. 말덴 밀즈 사는 2001년 파산하고 현재 폴라텍 LCC라는 회사로 매입됐다.

플리스는 가볍고 튼튼하며, 공기가 곱슬곱슬한 파일 사이사이에 머물기 때문에 보온성이 높다. 또한, 물에 잘 젖지 않아 아웃도어 의류에 주로 사용되거나, 카디건이나 집업 점퍼의 안감으로, 최근에 유행하는 플리스 재킷처럼 외투로 입을 수 있는 형태로도 만들어지기도 한다.
폴라 플리스 / 위키미디어
가격이 기존 양모보다 저렴하다는 특징도 있다. 대를 이어 말덴 밀즈 사의 CEO가 된 애런 푸어스타인은 가볍고 튼튼한 새로운 소재인 폴리에스터 플리스(폴라 플리스)에 특허를 거부해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고 질 좋은 자재를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
합성 섬유로 만드는 플리스 재킷은 컬러와 디자인이 다양하다 / 위키미디어, pixabay
무엇보다 합성 섬유로 만든 폴라 플리스는 관리가 까다로운 양모의 단점을 극복한 소재다. 천연 양모는 전문 세탁소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겨야 하며, 물세탁을 하더라도 손으로 가볍게 해야 하며, 빗 등으로 빗겨주어야 한다. 반면, 폴라 플리스는 기계 세탁이 가능하고 빠르게 건조된다. 또한 양털 알레르기가 있어도 양털 느낌을 내는 폴라 플리스로 따뜻하게 입을 수 있다.


플리스와 깊은 연결고리, 양털


플리스의 형태는 양털과 매우 비슷해 그에 대한 궁금증도 생긴다. 양털, 양모는 울(wool)이라고도 한다. 동물의 털이기 때문에 사람의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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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털을 처음 사용한 것은 기원전 6000년 경이며, 옷의 형태로 제작된 것은 그로부터 2~3000년 후라고 기록을 통해 추정하고 있다. 양털은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미국, 러시아 등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 많이 생산되는 것처럼, 유럽에서 많이 사용했다. 로마 시대에는 인도의 목화, 중국의 비단과 함께 양털, 리넨, 가죽이 유럽에서 인기를 얻는 사치품이었다고 하며, 유럽 양모 직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1500년경의 것으로 덴마크 늪지에서 보존됐다고 전해진다.
13세기 샹파뉴 박람회 모습. 무역 박람회로 알려진 샹파뉴 박람회를 통해 모직자들이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됐다 / 위키미디어
무역이 확대된 중세 시대에는 프랑스 프로뱅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되던 양털 천이 매년 열리던 샹파뉴 박람회를 통해 프로뱅 모직자들이 이탈리아 나폴리와 시칠리아, 스페인 등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13세기, 14세기 양모 무역은 이탈리아 중부를 경제 엔진으로 만들었으며, 1275년 양털에 수출세를 부과한 영국 왕실의 중요한 수입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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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지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양털 대신 합성 섬유의 사용이 늘어나자, 생산량 또한 줄어들었으며, 1966년 말에는 기존 가격보다 40% 하락했다고 한다. 이후 1970년대 초에는 세탁이 가능한 슈퍼워시 울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슈퍼워시 울은 섬유에서 비늘을 제거하는 산욕제를 넣었으며, 세탁 시 울이 수축하는 성질을 막기 위해 폴리머로 코팅해 내구성이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다.
호주에서 생산되는 메리노 울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 pixabay
양털로 만드는 울에는 어떤 양의 털로 만드는지, 어디서 생산되는지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는데, 생후 1년 미만인 양의 털로 만든 램스 울(Lambs wool), 호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고품질의 양모인 메리노 울(Merino wool), 산양의 털로 만들어 부드럽고 따뜻해 섬유의 보석이라고 부르는 캐시미어 울(Cashmere wool) 등이 있다.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양털 깎기

양은 1년에 한 번 정도 털을 깎게 된다. 동력전모기를 가용해 기계로 깎기도 하지만 전모 가위를 가지고 손으로 깎기도 한다. 양털 깎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셰어러(sheep shearer, 양털 깎는 사람)’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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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털 생산량이 가장 많은 호주에서는 사육 초기 양치기나 하인, 가위를 사용하는 노동자들이 주로 양털을 깎았지만, 양 산업이 점점 확대되면서 더 많은 전문가가 필요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근무조건이 열악했으며, 긴 노동시간과 낮은 임금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에 1888년 호주는 기계로 양털을 깎을 수 있는 전단기를 세계 최초로 가지기도 했다. 1915년 호주 대부분의 셰어링 헛간에는 증기 엔진으로 작동되는 전단기가 공급되기도 했다.
셰어러가 신는 모카신 / 위키미디어
양이 2살이 됐을 때부터 양모를 생산하는데, 전문가라면 기계로 하루에 200마리 이상 깎을 수 있다고 한다. 손으로 깎을 때는 한 마리에 20분 정도가 걸린다. 이들이 착용하는 복장과 신발도 따로 있다. 두께가 보통의 2배 정도 되는 청바지나 거친 무명천 작업복 바지를 착용하며, 양 발바닥이 닿는 팔 부분에 패치가 있는 러닝셔츠, 양털을 깎는 데 쓰는 빗이 걸리지 않도록 플랩이 있는 가죽 부츠나 밑창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코팅된 모카신 등이다.
셰어러의 명예의 전당이자 박물관인 쉬어 아웃백 / 쉬어 아웃백 홈페이지
호주에는 양털 깎는 셰어러들을 명예의 전당에 올릴 정도다. ‘쉬어 아웃백(Shear Outback)’이라는 박물관이 있을 정도다. 이 박물관은 2001년 호주 양모 산업과 아웃백 지역 생산자들을 기리기 위해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개관했다.

2019년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 이들은 5명이며, 경력이 매우 화려하다. ▲호주 오픈 셰어링에서 2회 우승했으며, 1972년 410마리의 메리노 양의 털을 깎은 세계기록이 있는 브라이언 모리슨 ▲65년의 경력을 가지고, 젊은 셰어러들을 가르친 존 윌리엄 해리스 ▲호주와 뉴질랜드를 넘나들며 셰어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Shear master’라는 브랜드를 만든 데니스 라이언 ▲16살 때부터 양털을 깎기 시작해 1994년 메리노 양 625마리를 길러온 데이비드 라이언 ▲6형제가 모두 셰어러로 활동하며, 호주 대표로 6번이나 대회에 출전한 기록이 있는 데이비드 로렌스 등이다.


‘꾸안꾸’ 놈코어룩 아이템으로 제격

‘놈코어(Norm core)’는 ‘평범한’이라는 단어인 ‘노멀(Normal)’과 철저한, 핵심이라는 뜻의 ‘하드코어(Hardcore)’가 합쳐진 말로, 2013년 뉴욕 트렌드 전망 기관인 케이홀과 2014년 뉴욕 매거진에서 패션 트렌드로 소개하면서 알려졌다.
컬럼비아 제공
신조어인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룩과 비슷한 말이기도 하다. 자연스러우면서 편안한 느낌을 주지만, 하나의 포인트 아이템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룩이다. 그래서 놈코어룩에는 누구나 옷장에 하나씩 가지고 있을 법한 아이템이 많다. 맨투맨이라고 말하는 스웨트셔츠나 청바지, 옷깃(카라)이 있는 피케셔츠, 야구모자, 터틀넥 등이다. 모두 입었을 때 편한 디자인이다.
컬럼비아 제공
레드페이스 제공
플리스 재킷이 놈코어룩의 특징에 잘 결합하면서, 필수 아이템으로 손꼽히고 있다. 레드페이스, 노스페이스, 컬럼비아 등 아웃도어 브랜드를 비롯해 유니클로, 스파오, 에잇세컨즈, 탑텐 등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서도 저렴한 가격의 플리스 재킷을 선보이고 있다.
패트병 등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리사이클링 원단으로 만든 플리스 자켓이 등장하고 있다 / 노스페이스 제공
최근에는 패션 업계에서도 환경 보호를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 페트병 등 플라스틱으로 재활용 섬유로 만든 플리스 재킷을 출시하기도 했다. 노스페이스에서 올가을, 겨울 시즌에 출시한 ‘에코 플리스 컬렉션’은 페트병 리사이클링 소재 원단을 적용했다. 재킷 1벌당 최대 66개의 페트병(L 크기 기준)을 재활용했으며, 1차 물량만으로도 전년 대비 약 3배 증가한 약 1082만 개의 페트병을 재활용하는 등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7일 입동이 지나면서, 김장을 하는 등 겨울 준비에 여념이 없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겨울 북반구가 평년보다 추울 것으로 전망했으며, 기상청도 지난해 겨울보다는 추울 거이며, 주기적 또는 장기적으로 한파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추위를 막기 위해 옷장도 점검할 필요성이 있는 겨울, 저렴하면서도 따뜻한 플리스 재킷 하나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