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야구, 타이거즈는 어떻게 인삼주를 받았나

마시즘
마시즘2020-08-10 11: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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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3위. 그 어떤 야구팬도 올해의 타이거즈가 이렇게 높이 있을 줄은 몰랐다. 보릿고개 같았던 지난 시즌을 견딘 팬들은 더더욱 몰랐을 것이다. 2019년의 기아 타이거즈는 뭐랄까. 경기장 직관 승리를 경험하는 것이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할까. 패배로 김장이 된 기아 팬의 심리상태는 비관론으로 무장한 카프카도 행복전도사로 만들어 버릴 듯한 포스를 뿜고 있었다.
(지난 시즌 난 야구장을 간 게 아니다. 응원가를 부르는 코인노래방에 갔을 뿐이지…)
사실 새로운 시즌이 개막되는 게 코로나19의 공포만큼 무서웠다. 야구경기가 이렇게 늦게 열릴 줄도 몰랐지만, 막상 중위권에 있다가 상위권 노크까지 할 줄은 몰랐지. 이 변화의 중심에는 맷동님. 풀네임 ‘맷 윌리엄스’감독이 있었다. 맷동님을 필두로 한 기아 타이거즈는 상대팀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가 타이거즈 최초의 외인 감독이어서? 아니면 메이저리그 홈런왕 출신이라서? 아니다. 맷동님이 들고 오는 와인에 어울릴 선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야구감독이 아닌 2020년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물물교환러 ‘맷 윌리엄스’의 와인투어를 살펴본다.
와인투어
전설의 시작
처음부터 그가 선물을 하고 다니는 산타클로스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방문하는 야구경기장마다 러닝을 하면서 간판깨기를 하기로 유명했다. 이것이 아메리칸 스타일인가?

이런 그에게 류승사자… 아니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이 찾아간다. 한국 프로야구에는 시즌 첫 만남 때 감독들이 만난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자신이 프로 데뷔는 같지만 나이는 2살 많음을 어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의 장유유서인가(아니다).
(이 특별한 와인 케이스에는 상대팀 감독의 이름이 박혀있다)
큰 깨달음을 얻은(?) 맷 윌리엄스는 이후 특별한 와인세트 9개를 주문한다. 경기전에 인사를 나누는 한국의 정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술은 통할 테니까. 빠른 한국화. 인정.
제갈맷동의
답례품을 찾아서
(이쯤되면 팔도 특산품을 모으러 다니는 게 아닐까)
가는 와인이 고우면, 오는 것도 있는 법. 맷 윌리엄스 감독의 와인을 선물 받은 상대 감독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강철 kt 감독은 답례로 지역 특산물인 ‘수원왕갈비’를 선물했다. 한국의 맛있는 정을 느낀 것이다. 그 날은 경기 기사만큼 왕갈비와 와인에 대한 기사로 훈훈함이 넘쳤다. 다음에 맷동님을 만나야 하는 감독들 빼고.

키움 히어로즈의 손혁감독은 다다익선의 미를 보여줬다. ‘한산소곡주’를 필두로 전통문양 와인커버, 안경케이스, 컵 받침대 등을 선물로 건네주었다. 그다음 차례인 야구계의 알파고 허삼영(a.k.a. 허파고) 삼성 감독은 경북지역 전통주인 ‘청도 감와인’을 선물했다. 심지어 택배가 하루 늦어서 첫날 만남을 미루기도 했다고.

항간에는 3만원 안쪽 하는 청도 감와인을 줌으로써 우리의 허파고가 지난 이승엽 선수의 복수(이승엽 선수 은퇴투어에 기아는 무등야구장 의자를 줬다)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술은 값으로만 가치를 매길 수 없다. 그는 눈덩이처럼 커져갈 와인투어의 미래에 견제구를 던지는 한편 아직 야구감독에게 1도 적용되지 않은 김영란법까지 내다보는 신의 한 수를 둔 게 아닐까(아니다).

올해도 역시나 단군매치(기아 타이거즈 VS 두산 베어스)에 강한 김태형 두산 감독은 ‘2019년 우승 기념 소주’를 답례로 줬다. 우리는 전년도 우승팀이라는 사실을 어필하는 동시에, 소주에 박혀있다는 자신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라는(?) 뜻이 아닐까.
왕갈비로 시작해
초대형 인삼주로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요. 인삼주에 있죠)
가장 처음 와인을 받았던 사람은 최원호 한화 감독대행이다. 당시는 팀 관리에도 벅찼던 시기였기에 답례를 챙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만날 때 이자를 많이 붙였다. 2013년도 우수 인삼으로 만든 초대형 인삼주를 건넨 것이다. 이… 이자가 제3금융권인데?

하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경기 중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엄근진의 대명사. 자신의 선수가 역전 홈런을 때려도 박수만 두 번 치고 기쁨을 절제하는 이 남자가 크리스마스 선물 받은 조카처럼 활짝 웃은 것이다. 야구팬 경력은 짧지만, 음료덕력은 긴 마시즘은 깨달았다. 저 남자, 분명 주류덕후다.

이렇게 되다 보니 ‘와인투어’는 야구경기만큼 주목되는 외전이 되었다. 남은 팀의 감독들은 기아를 만날 때 선수 분석은 물론… 선물 분석까지 해야 할지 모른다. 경기는 다음날 이겨서 가릴 수 있지만, 와인투어 때 찍힌 사진은 평생 남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이… 인삼주를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게 함정. 혹시 맷 윌리엄스 감독은 단일 제품으로 어디까지 교환이 가능한지를 실험하는 거상 같은 게 아닐까. 내가 주는 것은 똑같은데, 답례로 오는 술은 점점 커지고 귀해지잖아. 정말 신출귀몰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야구도 와인도
즐거움이 전부다
맷 윌리엄스 감독은 한국야구의 찾아가서 인사하는 문화. 또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퍽 마음에 든 모양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상대방과 음료를 주고받을 때 느껴지는 유대감은 음료의 맛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음료리뷰어의 입장에서 이제 반환점을 돌아온 와인투어의 끝도 기대가 된다. 맷동님은 다음에 무슨 술을 선물 받게 될까? 설마… LG의 전설의 우승…ㅈ
(솔직히 한국야구 팬이라면 한번은 궁금해 했을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