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일요일 아침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으로 서둘러 갔다. 농부들이 자신이 키운 작물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농부시장 마르쉐’에서 향신채소 ‘고수’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마르쉐에는 농부뿐 아니라 꿀 따는 사람, 치즈나 햄 등을 만드는 사람 등 건강한 식생활과 관련된 여러 판매자가 모인다. 장보는 재미보다 구경하는 재미가 몇 배 크다.
장은 11시부터 시작되나 ‘마르쉐의 수퍼스타’라 불리는 몇몇 인기 판매자 앞에는 사람들이 일찌감치 줄을 선다. 저렇게 앳된 사람도 손수 요리를 하나 싶은 예쁜 청년부터, 머리에 하얗게 눈꽃이 내려앉은 노부부까지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서 있다. 농부들은 하늘거리는 줄기가 달린 어린 당근, 노란 주키니호박, 고수를 비롯한 각종 허브, 초록색 대가 싱싱하게 붙은 마늘, 다양한 색깔 감자 등 여러 가지 작물을 갖고 나온다. 이 시장의 진짜 매력은 얼굴을 아는 농부가 키운 채소를 사면서, 그간의 이야기까지 함께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은 11시부터 시작되나 ‘마르쉐의 수퍼스타’라 불리는 몇몇 인기 판매자 앞에는 사람들이 일찌감치 줄을 선다. 저렇게 앳된 사람도 손수 요리를 하나 싶은 예쁜 청년부터, 머리에 하얗게 눈꽃이 내려앉은 노부부까지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서 있다. 농부들은 하늘거리는 줄기가 달린 어린 당근, 노란 주키니호박, 고수를 비롯한 각종 허브, 초록색 대가 싱싱하게 붙은 마늘, 다양한 색깔 감자 등 여러 가지 작물을 갖고 나온다. 이 시장의 진짜 매력은 얼굴을 아는 농부가 키운 채소를 사면서, 그간의 이야기까지 함께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을 좀 더 성의 있게 대하는 일
공선옥 작가가 28가지 먹을거리에 대해 쓴 에세이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에는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부추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부추가 부추김치가 되기까지 나는 그 부추와 어떤 교감도 나누지 못했다는 것. 내가 부추를 보고 생의 아름다움에 들뜨는 그런 과정 없이 부추김치가 내 밥상 위에 당당한 부추김치로서 턱 놓여 있는 것’이라는 대목이다. ‘마르쉐’에서 사온 노란호박으로 요리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밥상 대화의 주인공은 단연 노란호박이다. 내가 키운 것은 아니지만 ‘아는 채소’니까 훨씬 성의 있게 대할 수 있다.
공 작가는 앞 책에서 말했다. ‘내가 부추를 먹으면, 나는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울음소리와 산밭의 어둠과 바람과 비와 달과 별의 소곤거림까지를 먹게 되는 것임을 촌아이들은 콩 만할 때부터 알게 되는 것이다.’ 그의 부추만큼은 아닐지라도, ‘농부시장 마르쉐’에서 사온 노란호박 한 덩이는 분명 마음에 한 줄 이야기를 긋고 뱃속으로 사라진다.
공 작가는 앞 책에서 말했다. ‘내가 부추를 먹으면, 나는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울음소리와 산밭의 어둠과 바람과 비와 달과 별의 소곤거림까지를 먹게 되는 것임을 촌아이들은 콩 만할 때부터 알게 되는 것이다.’ 그의 부추만큼은 아닐지라도, ‘농부시장 마르쉐’에서 사온 노란호박 한 덩이는 분명 마음에 한 줄 이야기를 긋고 뱃속으로 사라진다.
애틋한 음식 표현이 있는 작품을 꼽자면 백석의 시 ‘선우사(膳友辭)’도 빼놓을 수 없다.
‘흰밥과 가재미(가자미)와 나는/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중략)/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이 같이 있으면/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전문을 읽으면 쓸쓸한 밥상에 놓인 세 존재의 외로움과 다정함이 진하게 느껴진다. 서양화가 서산(西山) 구본웅은 김에 대한 글을 남겼다.
‘나는 김을 즐긴다. (중략) 묵은 김 덕에 생색나고 밥은 향기롭다. (중략) 김이야말로 우리의 조선김이 좋으니 뻣뻣하고 꺼덕차고 맛도 향기도 없는 왜김에다 댈 것이 아니다. (중략) 이 감미, 이 향기가 김이 김다운 본색이다.’
‘흰밥과 가재미(가자미)와 나는/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중략)/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이 같이 있으면/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전문을 읽으면 쓸쓸한 밥상에 놓인 세 존재의 외로움과 다정함이 진하게 느껴진다. 서양화가 서산(西山) 구본웅은 김에 대한 글을 남겼다.
‘나는 김을 즐긴다. (중략) 묵은 김 덕에 생색나고 밥은 향기롭다. (중략) 김이야말로 우리의 조선김이 좋으니 뻣뻣하고 꺼덕차고 맛도 향기도 없는 왜김에다 댈 것이 아니다. (중략) 이 감미, 이 향기가 김이 김다운 본색이다.’
분명 김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어쩐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다. 맛이든 기분이든 마음에 들어오는 음식을 만나면 이 정도의 인사와 감상을 우리도 서슴없이 해보면 좋겠다.
백석의 인생과 맛 이야기는 ‘백석의 맛’이라는 책에 아주 쉽고 상세히 정리돼 있다. ‘100년 전 우리가 먹은 음식’에는 구본웅의 김 이야기를 비롯해 채만식, 이효석, 김유정, 현진건 등 여러 문인과 예술가의 음식 이야기가 실려 있다.
최근 나온 책 ‘음식의 위로’는 음식보다 작가 삶에 대한 고백과 기억이 대부분인 에세이다. 나와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의 고단한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화가 나고, 우습고, 창피하고, 뭉클하다. 책 속에서 음식은 주인공을 수호하는 히어로처럼 짧고 강렬하게 등장해 번쩍번쩍 빛난다. 백 마디 말보다 손수 만든 음식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감정의 물꼬를 트는데 훨씬 쓸모 있는 방법임을 보여준다.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