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만원에 산 운동화 500만 원에 팔아…MZ세대의 재테크 '스니커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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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STREET2020-05-18 16: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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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이라는 말은 어디서나 시선을 끄는 효과가 있습니다. 굳이 살 계획이 없던 물건도 한정판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으면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가는데요. 이런 보편적인 심리 덕에 성장하는 시장이 있습니다. 바로 희소가치 있는 상품을 개인끼리 사고 파는 ‘리셀(re-sell)’ 시장입니다. 

리셀러들은 인기 상품을 구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매장 앞에서 자리를 깔고 버티기도 합니다. 이들이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한정 상품에 매달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되팔았을 때의 수익률이 재테크라고 해도 될 정도로 높기 때문입니다.
나이키 에어포스 1 파라-노이즈 한국 한정판. 사진=피스마이너스원 인스타그램(@peaceminusonedotcom)
‘되팔렘’이냐 ‘투자’냐, 말은 많지만…
(*되팔렘: 실제로 사용할 생각이 없으면서 물건을 구해 웃돈을 받고 파는 사람을 조롱하는 인터넷 은어. 정작 필요한 사람이 제품을 구매할 기회를 빼앗고 시세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비난받곤 한다) 

지난 2019년 10월 발매된 ‘나이키 에어 조던 6 트래비스 스콧’제품의 소비자가는 30만 9000원이었습니다. 현재 이 운동화의 중고 가격은 140~180만 원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가수 지드래곤이 만든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과 나이키가 콜라보해 만든 스니커즈 ‘나이키 에어포스 1 파라-노이즈’는 더 비싸게 팔립니다. 

지드래곤의 생일인 8월 18일을 상징하는 의미로 '빨간색' 나이키 로고가 붙은 신발을 818켤레만 생산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만 한정 발매된 이 신발은 발매가 21만 9000원이지만 리셀 가격은 300~500만 원 대입니다.

이렇게 희소성 있는 신발을 구한 뒤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것을 일컫는 말로 ‘스니커테크’라는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스니커테크에 열성적인 이들은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아우른 말)에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스니커테크가 진짜로 물건을 사서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미국 스트릿의류 브랜드 슈프림 대표 제임스 제비아는 지난 2002년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을 위해 가격을 책정하고 만든 상품이 리셀러들 손에 들어가면 2배 넘게 값이 뛴다. 사람들이 우리 물건을 되팔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직접 착용하기 위해 샀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리셀을 법으로 금지할 근거는 없습니다. 개인이 갖고 있던 소장품을 수요자에게 파는, 합법적인 개인 간 거래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수요가 꾸준히 있기에 스니커테크 열기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투자방식에 익숙한 MZ세대
어릴 적부터 IT·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는 뛰어난 정보습득력을 바탕으로 스니커테크와 핀테크 등 새로운 투자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은행 예금이나 보험 등 전통적인 자산관리 수단보다는 P2P 소액투자나 암호화폐, 리셀마켓 등 모바일 친화적이고 비교적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이 많은 것도 MZ세대의 특징입니다.

MZ세대가 주축을 이루는 리셀마켓이 나날이 성장하자 기업들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리셀러와 구매자 모두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중개하고 수익을 내겠다는 계산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만든 ‘크림(KREAM)’, 서울옥션 관계사 서울옥션블루의 ‘엑스엑스블루(XXBLUE)’, 무신사가 만든 ‘솔드아웃(5월중 출시 예정)’등의 리셀 앱이 있습니다. 이런 리셀 플랫폼은 판매자와 구매자를 중개하고 정품여부 확인에 도움을 주는 등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20억 달러(약 2조 4670억 원) 규모로 추산되는데요. 미국 투자은행 코앤드컴퍼니 전망에 따르면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5년 뒤인 2025년 지금보다 3배 성장한 6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 플랫폼 기업들의 약진도 기대해 볼 수 있는 부분이겠죠.
스니커테크, 이런 점은 조심해야
폭리를 취할 목적으로 한정판 스니커를 막무가내로 사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운동화 마니아로서 실사용이나 소장을 위해 구매한 제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소장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미술품 투자와 다를 바가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투기가 아닌 투자로서 스니커테크를 하려면 세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적은 금액이라도 스니커테크로 이득을 보았다면 국세청에 ‘기타 소득’으로 신고해야 합니다. 올해 1월 뉴스1은 이재경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운영위원의 발언을 인용해 스니커테크 주의점을 알렸는데요. 최근 6개월 간 스니커테크로 벌어들인 소득이 1200만 원 이상이면 부가세를 내야 합니다. 특히 해외에서 면세 받아 구매한 제품은 단 한 개라도 재판매해서는 안 됩니다. 수입업자 신고를 하지 않고 해외에서 직접 구매한 상품을 들여와 파는 것은 불법입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