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세주의자 환영” 대만의 음침한 가게, 반전은…

29STREET
29STREET2020-03-03 16: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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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며 타인과의 친밀한 접촉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염세주의자라고도 불리는데요. 도가 지나친 염세주의는 남까지 무기력하게 만들지만 적당히 냉소적인 친구 한두 명을 곁에 두는 건 나쁘지 않습니다. 그들의 현실적인 판단과 조언이 때때로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염세사회' 페이스북(@mis.society)
'염세사회' 페이스북(@mis.society)
만약 내 친구가 염세주의적 기질을 보인다면? 혹은 나도 가끔 사람이 싫고 냉소적인 기분이 된다면? 대만에 있는 이 가게를 주목해 볼 만 합니다. 대만 타이페이에 있는 식당 겸 서점 ‘The Misanthrope Society(염세주의자들의 사회)’라는 곳인데요. 입구에서부터 새까만 문과 백골이 음침한 기운을 풍기는 이 곳은 여느 카페들과 달리 ‘다크’한 컨셉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우주에는 무한한 양의 희망이 있다. 하지만 그 희망이 우리를 위한 건 아니다.”(프란츠 카프카)
“타인은 지옥이다.”(장 폴 사르트르)

보기만 해도 기운 빠지는 문구를 걸고 영업하는 이 곳은 음료와 칵테일, 간단한 요리를 판매하는데요. 유령의 섬’, ‘인간탈출’, ‘마지막 말’등 메뉴 이름도 음침하기 짝이 없습니다. 올 블랙 인테리어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음식까지도 온통 새까맣습니다.
'염세사회' 페이스북(@mis.society)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인간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카페에 찾아와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이 카페가 일부러 '사회성 부족 콘셉트'를 고수하는 데는 의외로 훈훈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 첸(Chen Xiaoguai·28)씨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의 어두운 면을 전면에 내세워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불쑥불쑥 사람이 싫어지고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지만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이런 마음을 감추곤 하는데요. 그는 모두들 숨기고 사는 심리를 표면으로 끌어내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타인의 소중함, 나와 남의 공통점을 느끼게끔 유도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염세사회' 페이스북(@mis.society)
'염세사회' 페이스북(@mis.society)
'염세사회' 페이스북(@mis.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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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화가에 가게를 낼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와 가게를 냈다는 점주 첸 씨. 그는 사회적으로 정신건강에 대해 툭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가게에서 책 나눔 모임, 전시회와 같은 이벤트도 자주 열고 있습니다.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골라서 왜 그 책을 좋아하는지 간단한 메모를 덧붙여 가게로 가져오면 그 책을 원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행사입니다.

첸 씨는 “예술가들 중에는 염세적인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승화시켜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며 자기 가게를 찾는 손님들도 스스로의 감정을 돌아보고 편안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