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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 물러나니… 서울 도심 옥상에 ‘시네마 천국’ 열리네

동아일보 2021-09-01 16:34
옥상을 밝히던 백열등이 꺼지자 200인치 대형 스크린이 빛을 쏟아냈다. 스크린 뒤편에선 경희궁 주위의 키 큰 나무들이 밤바람에 살랑였다. 8월 28일 저녁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의 주택가 언덕에 위치한 에무시네마 옥상. 30여 명이 빈백에 기대거나 의자에 앉아 헤드폰을 끼고 영화 ‘시네마 천국’에 집중하고 있었다. 기승을 부리던 열대야가 물러간 덕에 관객들은 초가을 밤공기를 느끼며 영화에 빠져들었다. 서계원 씨(34·회사원)는 “옥상에서 영화를 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든다”며 “실내 영화관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외에서 영화를 보려면 열대야와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러나 8월 말부터 밤 기온이 20도 안팎(서울 기준)에 머물면서 야외, 특히 옥상에서 영화 보기에 가장 좋은 시기로 접어들었다.
서울 동작구 동작대로의 예술영화관 아트나인 내 옥상 영화관인 ‘시네마 테라스’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모습. 테라스에 난 창을 통해 하늘과 산 등 주변 풍경을 보며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아트나인 제공
복합문화공간 ‘에무’에 있는 에무시네마는 8월 19일 ‘라라랜드’ 상영을 시작으로 매주 목·금·토요일 저녁 옥상에서 ‘별빛영화제 시즌2’를 진행하고 있다. 월요일 오후 8시에 다음 주 티켓 예매가 시작되는데, 보통 5분도 되지 않아 32개 좌석 표가 매진된다. 날씨가 선선해진 데다 팬데믹으로 꽉 막힌 실내에서의 영화 관람을 꺼리는 이들이 늘면서 옥상 관람의 인기가 높아진 것. 양인모 에무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캠핑 의자와 테이블 등을 제공해 관객들이 캠핑장에 온 기분을 느끼며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영화 관람료는 1만2000원, 10월 말까지 옥상 상영을 진행한다.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대한극장도 9월 중순부터 옥상 영화 상영을 시작한다. 대한극장이 젊은 관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2019년 봄부터 시작한 옥상 상영관 ‘시네가든’에서의 영화 상영은 봄과 가을에만 진행된다. 올가을엔 영화 ‘호우시절’ ‘윤희에게’ ‘우리의 20세기’ 등 재개봉작들을 다음 달 말까지 상영할 예정이다. 배도현 대한극장 기획실 팀장은 “유명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의 차별화 전략을 고민하다 옥상 상영을 기획하게 됐다”며 “주로 젊은 연인들이 찾고 있어 로맨스물 위주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고 했다. 관람료는 음료와 영화 관련 굿즈, 영화 티켓을 묶어 1만4000원이다.

서울 동작구 동작대로의 예술영화관 아트나인도 8월 26일 영화 ‘이도공간’을 시작으로 ‘반옥상’ 격인 12층 ‘시네마 테라스’에서 상영을 시작했다. 무더위와 사회적 거리 두기 탓에 테라스 상영을 잠정 중단했다가 재개한 것. 아트나인은 카페를 겸한 레스토랑 중 일부 공간을 테라스 영화 상영에 활용하고 있다. 과거 50석을 운영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20석으로 줄였다. 소규모 인원이 모여 스크린 뒤 큰 창에 그림처럼 펼쳐진 하늘을 보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9월엔 ‘해피 투게더 리마스터링’(9일),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16일) 등 ‘장국영 스페셜’을 진행할 예정이다. 음료를 묶어 1만6000원에 영화 티켓을 판매한다. 박혜진 아트나인 극장사업부 팀장은 “코로나19 탓에 일정을 장담할 순 없지만 난로를 틀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한겨울 직전까지는 테라스 영화 상영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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